달리다 굼- 일어나라 (막5: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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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다 굼- 일어나라 (막5: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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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다 굼- 일어나라

20171112

 

본문 5:35-43 -

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


- 아멘

 

 

지난주 이만수 감독이 와서 간증을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선수시절 믿음이 좋다는 소문이 난 분이었기에 얼굴만 보아도 정말 좋았습니다

특히 자기가 존경하는 타격의 달인 장효조 선수를 전도하다가 뺨을 양쪽으로 맞았다는 이야기를 할 때 감동스러웠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렇게 거부한 장효조선수가 나중에 아들이 목사님이 되어서 전화를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도 일어나는 것임을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성도여러분! 한 사람의 기도가 , 한 사람의 전도가 발효가 되어서 믿음없는 사람, 아픈 사람,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기적이 따른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 사건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한 회당장의 믿음이 죽은 자녀를 살리고 초자연적인 기적을 가져 온다는 의미심장하고 상징적인 사건이 오늘 사건입니다

본문에 보면 환자 자신이 예수님께 간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어린 딸을 살려달라고 예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실 때 보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실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기적은 본인의 믿음을 보시고 행하신 사건이 아닙니다.

아버지인 야이로의 믿음을 보시고 죽은 아이를 살리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도 보면 예수님께서는 죽어 장사된 나사로를 향해서 "나사로야 나오라" 하셨습니다. 죽은 자에게 믿음이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보통 '네 믿음이 너를 고쳤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들이는 그릇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본인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건은, 하나님의 기적은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면 어떤 상황에서든 이루어집니다. 그의 믿음이 온전하든 온전하지 못하든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계시적 사건은 조금의 주저도 없이, 한치의 가감도 없이 그대로 나타나고 사건화되는 것입니다

 

그 통로는 누구입니까?

아버지 야이로를 통해서입니다

울고 있는 누이 마르다와 마르아를 통해서인 것입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하는 모습이 오늘 그 점입니다

그 하나님의 기적과 부활의 사건이 일어나는 통로가 있습니다

바로 야이로라는 아버지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이 충일하고 대단하고 위대한 사도같은 믿음은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가 나타나는 기적의 통로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부활의 사건의 문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본문을 구체적으로 보면

첫째로 본문에 보면 야이로는 회당장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 앞에 엎드립니다

회당장은 그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회당이 단순한 종교적 기능을 발휘하는 곳이라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이 회당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한복판에, 중심에 있었던 그런 기관입니다.

이것은 물론 종교적 기능도 수행되었지만 더 많은 사회적 기능들이 수행됩니다. 회당은 학교역할도 했고, 심지어 재판소 역할도 했습니다.

문제를 가지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판결을 내리는 재판관과 비슷한 역할까지 회당장은 겸하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사회적 명예가 있었고, 사회적 존경이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회당마다 적어도 10명쯤의 관리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큰 회당의 경우에는 회당장이 3사람씩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정도의 신분을 누리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찾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 당시 예수님님은 젊은 예언자, 아직 사회적으로 공인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 앞에 와서 회당장이 엎드립니다.

그냥 나와서 예수님을 만났다고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오늘22절에 보시면

5: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그렇습니다 발 아래에 엎드렸다.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정도의 사회적 신분을 가진 사람이 예수님 앞에 엎드리는 것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절박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별별 노력을 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살릴 길이 없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희망, 마지막 소망을 예수님께 걸고 그는 예수님 앞에 엎드립니다

한마디로 불행한 사건이 이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찾게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의 불행은 정말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질병으로 옵니다 실패로 옵니다 관계 파괴로 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때 인간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불행한 사건은 우리로 간절하게 만들고, 진실하게 만들고, 겸손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리스도를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우리 자신을 가만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자세히 보면 고난당할 때에 더 진실합니다. 같은 기도를 해도 고난당할 때의 기도가 더 간절합니다. 사람이 간사해서 그런것이지만, 어려운 지경이 되면 간절히 기도하다가도 사정이 조금 풀리면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바뀌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너무 자주 바뀌어서 우리는 사람에게도 실망하지만 본인에게도 실망스러울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하기에 우리 중에서도 고통이 없었더라면, 인생의 역경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비바람과 폭풍우가 없었더라면 예수님 앞에 나올 수 없었던 사람들이 참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선조들은 말합니다

고통이나 역경을 가리켜서 변장 된 축복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고통이, 이 역경이 이 회당장을 겸손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자기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신분과 체면에도 불구하고 그는 겸허하게 나사렛 예수님 앞에 엎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엎드릴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자고 게으르면 궁핍이 도적같이 임한다고 했습니다

주님 앞에 부지런히 나오고 엎드려 매달려야합니다

사람들은 체면과 게으름과 영적인 무지때문에 오늘도 인생의 절박한 문제를 안고 있어도.. 그리고 해결될 수 없는 인생의 딜레마를 안고 있어도 주 앞에 나오지를 못합니다.

여러분의 절망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딜레마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갈등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고통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내 인생 속에 주님의 부활의 능력, 그리고 부활의 소망을 체험하기를 원하십니까?

새로운 길에 대한 갈구가 있으십니까

 

오늘 문제를 가지고 나사렛 예수님 앞에 나와 주 앞에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에 마지막 희망, 최후의 희망을 걸고 주 앞에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예수 이름 기도법 주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3000번씩..)

그때 죽은 아이가 살아나고 주변의 환경이 회복되는 기적은 시작될 것입니다

새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힘들다 어렵다 괴롭다 죽고 싶다 하는 그 순간에 예수님 앞에 오셔서 엎드리시길 기도드립니다

 

둘째로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최악의 절망속에서도 예수님을 믿으셔야 합니다.

35절 같이 읽겠습니다.

5: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집에서 사람들이 왔습니다. 가족들하고 하인들도 왔습니다

당신의 딸은 죽었습니다. 상황은 끝났습니다. 희망은 사라진 것입니다. 이것은 철저한 절망의 보고였습니다.

회당장 집에서는 이미 장례식 준비가 한창이었을 것입니다.

원래 더운 지방이라 부패하기전 12시간이내에 장례를 치르는 것이 관례입니다

 

38절을 보시면 그 장면이 환하게 그려집니다

5: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눈물이 있습니다 장송곡을 부릅니다 식구들은 통곡하고 우는 것입니다 .

그러나 이 절망의 한 복판 속에서 예수님은 이 회당장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계십니까. 다같이 36절 읽겠습니다. 5: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이 절망의 상황 한복판 속에서 주님은 어떻게 말씀하세요?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한번 따라하겠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이것은 현재 시제로 기록되어있습니다. 현재 명령형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두려워 말고 믿어라. 계속해서 믿어라 이 말입니다.

상황 끝입니다 절망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아직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계속해서 믿어라. 이 순간 속에서도 계속해서 믿음을 져버리지 않는다면, 상상할 수 없었던 위대한 기적이 일어날 수가 있다.

 

나치 독일의 처참한 유대인 수용소에 대한 관찰기록인 빅터 프랭클 박사 (Victor Frankl) 의 저서 "의미를 찾는 인간의 탐색"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수용소에 있는 인간상을 이렇게 구분해 볼 수 있었다.

1)마음으로 포기한 사람은 곧 쇠약해졌다.

2)소망을 끝까지 가진 사람이 끝까지 살아 남았다.

3)자기 혼자서 소망을 가질 뿐만 아니라 절망 속에 있는 이웃들을 도와주고 소망을 계속 갖도록 격려하던 사람들이 몸도 마음도 가장 건강한 상태에 있었다."

그렇습니다 끝까지 믿고 의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경험하는 최후의 절망, 마지막 절망은 무엇일까요?

죽음입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을 삼킵니다. 어린이도 삼킵니다. 노인도 삼킵니다. 우리의 죽은 확률은 100%입니다 그리고 죽음을 통한 절망확률은 100%입니다.

아무도 죽지 않을 사람이 없어요.

그러나 이 최악의 절망 속에서도 주님은 우리들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 주님은 무덤 앞에 오십니다. 그리고 누이 마르다에게 놀라운 메시지를 선포하십니다.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렇습니다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 물으십니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네가 나를 믿느냐.

 

주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우리가 이 최악의 절망 속에서도 주님을 믿으면 나의 그 믿음을 통해서 나의 딸이 살아나고 나의 오빠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기억해야 할 것은

살리시는 단어는 달리다 굼입니다 즉 소녀야 일어나라!

그렇습니다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소녀에게 나타나는 기적은 딱 한가지입니다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땅에 살면서의 새 생명의 역사이고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의 암시이십니다

이 땅에 살면서 죽은 딸이 살아나고 죽은 오빠가 살아나는 것은 축복이고 행운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육체는 한계가 있어서 병이 고쳐지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도 다시 병들기도 하고 다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히 살아나는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영혼의 부활입니다

 

영적으로 사망에 처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다시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력이 있는 관계가 회복되고 살아남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지시고 나의 검은 죄악을 씻겨주심을 믿고 고백하는 순간,

그 예수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나는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가 연결됩니다.

이때 나는 영적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새로운 세계가 영안이 열려서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육체적인 죽음 건너편에 부활의 소망을 약속하여주십니다

이제 우리는 하늘 나라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장막이 허물어지면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끝이 나고 흙으로 막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일어나라고 하시는 말씀은 2가지 차원이 사건으로 나타납니다

1) 이 땅에서의 일어남입니다

2) 저 나라에서의 일어남입니다

1)당연히 천국에 이르기 전에, 이 땅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도상에서 우리가 무력함에 시달리고 좌절하고 주저앉아 울 때 우리 곁에 부활의 주님은 어김없이 다가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달리다 굼.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내 딸아 일어나라.

주의 말씀을 듣는 순간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무력감에 시달리고 세월에 시달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절망감으로 시달리시는 성도 분들이 계시다면 이 음성을 들으시길 축원드립니다

달리다 굼 - 일어나라 ...

또한 내 자식이 내 부모가 고통가운데 있다면 주님 앞에 나오셔서 엎드리십시오 달리다 굼 일어나라고 주님의 음성이 나를 통해 나타날 수 있도록 ..

 

2) 그리고 소망하십시오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의 장막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영광의 부활의 시간에 우리는 듣게 될 것입니다 달리다 굼... 일어나라 나의 자녀야 ....

 

407장 찬송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1.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구주와 함께 나 살았도다

영광의 기약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후렴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 생명 주시나니

영광의 기약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2. 맘 속에 시험을 받을 때와 무거운 근심이 있을 때에

주께서 그 때도 같이 하사 언제나 나를 도와주시네

 

3. 뼈아픈 눈물을 흘릴 때와 쓰라린 맘으로 탄식할 때

주께서 그 때도 같이 하사 언제나 나를 생각하시네

 

4. 내 몸의 약함을 아시는 주 못 고칠 질병이 아주 없네

괴로운 날이나 기쁜 때나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네

 

시를 읽겠습니다

 

하늘 아버지

내 인생

()이 되어 나리게 하소서

녹아도 좋사오니

하이얀 순결이게 하소서

 

 

하늘 아버지

내 인생

()가 되어 나리게 하소서

짓밟혀도 좋사오니

빛나는 양심이게 하소서

 

 

하늘 아버지

내 인생

사랑되어 나리게 하소서

버려져도 좋사오니

한 송이 꽃이게 하소서

 

그러다가, 그러다가

어느 날

하늘 아버지 부르시면

즐거이 가게 하소서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17-12-17 21:12:31 SERMON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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