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22 설교말씀: 경배를 받으러 오신 예수님(마2:9-12)
경배를 받으러 오신 예수님
2024년 12월 22일
본문 : 마태복음 2장 9 ~ 12절
세상 사람들은 웬만하면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보면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를 굽히거나 복종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잘못을 인정하거나 자신의 죄를 깨달을 때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릎꿇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특히 현대인들은 진심으로 자신을 돌이켜 보거나 상대방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만사에 있어서 내가 옳고 내가 맞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만일 잘못이 있다면 저 사람때문이고 사회때문이고 환경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화는 견고한 현대인의 삶의 기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언젠가 통곡하며 후회할 때가 있습니다
내 죄가 바다보다 넒고 히말라야 산보다 높이 쌓였구나
아~ 살아온 과정이 모두 죄투성이였구나
언제 그렇게 느낍니까? 늙고 초라할때입니다 인생의 큰 실패를 경험했을 때입니다 관계가 깨져서 홀로 고독하게 남았을 때입니다 큰 질병에 노출되어 반복되어 깊은 한숨이 나올때입니다 그 때 비로서 삶의 허상의 안개가 걷히고 인생이 보이고 허무가 보이고 인간의 연약함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인정하게 됩니다 무릎을 꿇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이렇게 무릎을 꿇기 전까지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고 신입니다 전쟁을 일으키고 다툼의 선봉이 되고 분쟁의 원인이 되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비난과 공격으로 주변을 망가뜨려도 나는 떳떳합니다 왜요 내가 하는 것은 다 옳으니까?
제가 잊지 못하는 일이 있습니다 문화교회의 교육전도사 시절 무서운 호랑이 같은 목사님밑에 있었습니다 부서보고를 하는 년초에 제가 잘하는 것을 강조하느라고 전에 하던 교육 방향에 문제가 있어서 이렇게 수정하였노라고 강조를 하였는데 바로 옆에 전임전도사님이 얼굴이 검어지는 것입니다 아차! 지난해 담당했던 전도사이고 저를 문화교회로 올수 있게 이끄신 형님 전도사인데 그 앞에서 잘못해서 내가 고쳤노라고 강조를 하였던 것입니다 ... 이런 미련하게 .. 돌이켜 보면 내가 나를 드러내고 강조할때마다 남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죄가 쌓인 것이지요
불교계의 거장 성철 스님도 1993년 81세에 운명하기 전에 이렇게 딸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필히야! 내 인생을 잘못 선택했다 나는 지옥에 간다
내 죄가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데 어찌 감당할수 있으랴 내가 80년 동안 포교한 것은 헛것이로다 딸 필히와 54년을 단절하고 살았는데 죽음 임종시에 찾게 되었구나 “ 필히야 ! 내가 잘못했다 내 인생을 잘못 선택했다 나는 지옥에 간다...
(성철 스님을 이야기하는 것은 비하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죄덩어리라는 깊은 성찰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
여러분! 특히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많은 상처가 남겨집니다
어떻게 보면 관계하며 살아가는 것이 걸림돌이 되고 서로의 찌름이 되고 상처를 깊이 남기는 연속적인 삶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한번 마음을 접는다면 .. 한번 마음을 열고 크게 받아들인다면
살길이 열리건만 옹졸하고 완악하여 무릎꿇기 싫어서 화해의 기회에서도 버티고 내 것을 이루기 위하여 버티고 서있는 것이 현대인들이 초상인 것입니다
오늘은 대림절 4번째 촛불이 켜졌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손수 오셨을까요?
주님이 우리에게 오신 이유는 우리에게 무릎꿇리려고 오신 것입니다
버티고 교만하고 자신만을 숭배하며 사는 가엽고 초라한 인생들에게 존귀와 영광을 받으려고 오신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한 평생을 살면서 가장 축복받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그것은 바로 인생의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고자 발걸음을 옮겼을 때입니다
낙심과 허무와 죽음의 공포가 반복되어지는 인생의 고리를 끊고 나와서 구원을 바라고 영생을 추구하는 순간인 것입니다
그때가 바로 나를 꺾는 순간이고 무릎을 꿇는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가장 존귀하고 가장 영원한 분이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그리고 인생을 구원하신 예수님께 존귀와 영광을 드리는 경배의 순간이 바로 인생의 가장 촉복된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나를 채우는 삶이 아니고 나를 완성시키는 삶이 아니고 오직 주님께 엎드려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삶인 것입니다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나를 만족시키는 삶이 아닙니다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습관적인 기쁨을 찾는 순간도 아닌 것입니다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내가 꺾어지는 순간이고 내가 낮아지는 순간이고 내가 무릎을 꿇고 엎드리는 순간이 바로 예배를 드리는 순간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이 별을 보고 베들레헴까지 따라왔습니다 목적은 왕에게 경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마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여기서 쓰인 경배라는 단어는 부복하다 존경하다 라는 의미입니다
무릎을 꿇고 부복하여 존귀와 영광을 돌린다는 뜻입니다
이들은 동방의 박사들입니다 주석에 보면 이들은 바빌로니아 메디아 페르시아 제국 땅의 현자들이라고 합니다
그 지역의 제갈공명 같은 사람들입니다 공자같은 사상가들이고 철학자들이고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자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탁월한 점은 별을 따라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별이 멈춘 그 곳에서 아기예수님께 엎드려 절을 하였던 것입니다 존귀와 영광을 아기 예수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동방박사들처럼 예수님께 무릎을 꿇는 시간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첫째는 구원주로 오신 예수님께 인정과 존귀로 무릎을 꿇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마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엎드리고 경배하였다는 것은 아기 예수님이 인류의 구원자시라는 인정을 하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찬송과 영광을 돌렸다는 의미입니다
당시에 로마는 계속 제국이 확장되어져 갔습니다 즉 수많은 전쟁을 일으키며 이겨나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의 입장에서보면 환호성이지만 점령당하는 나라에 있어서는 고통과 바침함과 죽임의 소식들이었습니다 당연히 로마도 수많은 희생과 젊은이들의 죽음을 바탕으로 제국을 건설해나갔던 것입니다
구세주는 로마에 있어서 신의 대접을 받는 황제였습니다 그러나 로마황제의 승리는 모든 이들에게 동시에 슬픔과 고통을 주는 소식이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동방의 박사들은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사람들을 구원할 구세주를 고대하였습니다
그 고대는 밤이 깊을수록 더 간절해집니다
그렇습니다 소요와 혼란과 분노속에서 우리는 선택할수 있습니다 로마 황제를 택할 것인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대의 헤롯왕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밤하늘에 더욱 빛나는 영원한 구원자 예수님을 선택할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인 것입니다
저는 이번 한 주간 이상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매일 저녁마다 나라사랑 별빛 기도회에 나와 성전에서 엎드렸습니다
첫날도 좋았습니다 고요하고 안정이 되고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목요일 밤 저녁시간에 홀로 기도하는 시간에 갑자기 통곡이 나왔습니다 지난 날의 영상이 쫙 펼쳐졌습니다
내 자신의 가장 위험한 순간,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가장 걷기 힘든 시간마다 나에게 말씀을 주시고 함께 걸으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그렇치 함께 하셨지 .. 지금까지 함께 걸어주셨구나 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
그러자 온 세상이 고요해졌습니다 성전에 주님과 나만 있었습니다
살아 있던 내가 주님께 무릎을 꿇자 예수님이 내 마음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얘야 내가 그때도 함께 하였노라 내가 그 순간에도 너를 도왔단다
성도여러분~ 예배를 드리는 순간은 요구를 하는 순간이 아닙니다 찬양을 즐기는 순간이 아닙니다
주님을 인정하는 순간입니다 인생의 모든 존귀를 올리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큰 사랑에 감사하고 독생자를 주신 그 한량없는 사랑앞에 무너지는 순간이 예배를 드리는 순간이고 경배를 드리는 순간인 것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이 시간 아기예수님으로 오신 구세주께 무릎을 꿇고 존귀와 영광을 돌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둘째는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께 황금과 유과 몰약을 드리며 무릎을 꿇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마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저마다 보배합을 열였다고 합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황금, 유향, 몰약이라는 선물을 드렸는데,
금은 세상의 부귀영화입니다 유향은 성전을 거룩하고 신성하게 만드는 좋은 냄새, 향기입니다 몰약은 세상을 썩는 것을 방지하는 희생과 섬김을 의미합니다
이 선물을 드렸다는 것은 각각 그분의 왕권, 신성함, 그리고 희생을 인정하는 상징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경배는 보배합을 여는 순간입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여는 순간인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생명처럼 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 어느 분은 물질일수 있습니다 물질이 생명이고 물질이 왕이고 물질이 신일수도 있습니다
- 어느 분은 삶의 좋은 냄새일수도 있습니다 선하게 사는 것, 좋은 일하는 것,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박수받는 것일 수 있습니다
- 어느 분은 희생과 수고일 수 있습니다 평생에 자식을 키우고 남을 위해 봉사도 하고 희생을 하면서 사람도 세우고 교회도 세우고 공동체도 세운 희생일 수도 있습니다 나의 가장 소중하고 놓칠수 없는 보배합입니다
교회에도 보면 지난 일년동안 수년동안 눈물과 희생을 감내하며 교회를 세우신 분들로 있습니다 아직 내 마음에 꼭꼭 담아두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동방의 박사들은 그 보배합을 엽니다 그리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립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엎드려 예물을 드리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1) 가장 소중한 것을 예수님께 드린다는 것은 가장 순수한 시간입니다 왜냐하면 내 보배가 하나님의 나를 향한 그 큰 사랑에 녹아버리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2) 가장 소중한 것은 예수님께 드리는 순간은 바로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순간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어느속에서도 영원한 하늘의 상급을 바라고 섬기고 희생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세상에 남기기 위해, 세상의 이익을 위해, 세상의 보상을 위해 소비합니다 계산하고 보상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처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린다는 것은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사랑의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하기까지 우리에게 주목하셨고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 큰 사랑에, 그 한량없는 사랑에 녹아내릴 때 우리는 무릎을 꿇게 되고 엎드려 경배하게 됩니다 그리고 소중한 보배합을 열어 예물로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어떤 보물도 아깝지가 않은 것입니다 그 순전함이 영원함에 닿고 그 온전함이 주님께 이르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영원하고 가치있는 일은 바로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일입니다
오늘 주님 앞에 엎드려 이렇게 고백하십시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18: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성탄절의 기쁨은 세상의 낙과 즐거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하며 동방박사들처럼 다른 길로 걸어가는 변화에 그 감격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