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목자로 오신 예수님_마2:4-6_12월19일
내 인생의 목자로 오신 예수님
2021년 12월 19일
본문 : 마태복음 2: 4-6절
대림절의 4번째 촛불이 켰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여 오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빛이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 동서남북 사방에 스며드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카톨릭의 교황중에 취임한지 33일만에 돌아가신 분이 계십니다. 미소짓는 교황이라는 별명을 가진 온화한 성품의 263대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1세입니다.
1978년 9월 28일에 서거했을때에 임종직전에 남긴 일기문이 공개되었습니다..
"부자들이여, 가난한 자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직장인들이여, 무직자들을 기억해주십시오. 건강한 자들이여, 병든 자를 기억해주십시오. 남을 위해서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라고 하는 간단한 기록입니다..
이 일기문이 온 세계에 공개되게 될 때에 충격을 받은 것은 노벨평화상 위원회였습니다.. 그들은 노벨 평화상 수상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도의 빈민굴에서 한평생을 바친 테레사 수녀에게 평화상을 수여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중동문제의 해결을 위해 수고한 카터 대통령에게 주기로 내정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생각을 돌려서 테레사 수녀에게 평화상을 수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가장 큰 질병은 결핵이나 문둥병이 아닙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아무도 위로하지 않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이것이 가장 무서운 질병입니다.. 세상에는 빵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도 많지만 작은 사랑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 감염병의 매일 발표되는 수치에 붙잡혀 있습니다.
특히 위증증으로 죽는 것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 상황을 조금 평면으로 펼쳐서 보면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이 지난 2년간 지금까지 4,518명(17일 현재)인데 반해 매일 자살자 수는 지난 5월 1,124명 6월 1,181명 7월 1,070 8월 1,023명으로 지난 4개월합계가 4,398명으로 훨씬 많은 사람들이 더 죽어가고 있고 2020년에는 13.195명으로 하루 평균 36명의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까지 합치면 엄청난 사람들이 죽음을 택하고 있다는 통계입니다.
그럼 어떤 분들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가 2020년 통계를 살펴보니 학생 가사 무직이 4,965명(50.9%)이고 서비스 판매종사자가 1,258명(12.9%) 사무종사자가1,165명(11.9%) 전문가도 590명이고 관리자도 91명으로 다양한 직업군이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사실은 코로나 감염병보다 더 무서운 것이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여 극단의 선택을 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인 것입니다.
저는 지역의 희망복지 일을 하면서 정부의 지원 구청의 지원등을 자세히 볼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정말 우리 사회에 많은 복지가 다양한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우선 주민센터 직원의 절반이 복지 담당으로 채워졌습니다. 동마다 방문간호사도 배정되어 있습니다.
- 매월 돈으로 지급을 받는 수급자, 법적인 수혜를 못받는 차상위계층까지 다양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김장김치, 명절 선물, 냉난방용품, 이불, 등등
- 여기에 더하여 구청에서는 긴급복지 금액 38억이 책정되어 긴급한 지원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사회 복지지원망이 촘촘해져서 손만 벌리면 다양한 도움을 받을수 있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질문이 생깁니다. 사회는 갈수록 좋아지고 다양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복지 국가인데 왜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입니까?
연령별로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이 전체를 한가지로 요약을 한다면 테리사 수녀의 글처럼 작은 사랑을 못받아서 라고 생각을 해볼수 있습니다.
작은 사랑을 못받아서는 표현은 다양한 용어로 풀이될 수 있습니다.
희망의 빛이 없어서, 인도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따듯한 눈길 한번 주는 사람이 없어서 ...
손가락질만 했지 그 손으로 안아주는 사람이 없어서라고 풀이해볼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생활여건이 좋아지고 사회복지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케어가 필요하고 인도가 필요하고 나를 인정해주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왜 예수님을 믿는지 그리고 왜 세상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지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케어하고 푸른 초장으로 인도한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그 작은 사랑 때문에 극한 상황속에서도 살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구체적으로 그 사랑의 모습이 나오는데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목자가 되시어 우리를 이끄시기 위해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마2: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을 다스리는 목자가 사랑의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이 목자가 되셔서 우리 인생을 이끄시는 모습은 시편 23편에 자세히 나옵니다.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1) 푸른 풀밭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내 영혼이 소생되고 의의 길로 다니게 하시는 것입니다.
2)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나를 안전하고 마음편하게 이끄십니다.
그래서 원수앞에 있을 때에도 음식이 넘어가고 마음을 윤택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3) 평생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 앞길에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히 여호와의 집에 안식을 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인생을 이끄시고 보호하시는 목자로 오신 예수님을 다시 한번 새기시는 시간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중요한 한가지 진리를 오늘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목자로 우리의 미래를 알고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신다는 진리입니다.
양들은 모릅니다.
언제 지금의 푸른 풀이 없어지는지 ...
현재의 풀을 다 먹으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양들의 특징을 7가지로 요약한 글을 보니 이렇습니다.
1) 양은 시력이 나쁘답니다.
양은 시력이 나쁩니다..그래서 눈앞에서 뭔가 보이고 그게 눈앞에서 움직이면
그걸 졸졸 따라다닙니다..
2) 잘 속는답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늑대나 하이에나들은 야생의 양 떼를 교묘히 유도하여 좁은 골짜기로 몰아넣은 뒤 잡아먹곤 했다는데요.
3) 잘 넘어진답니다.
4) 넘어지면 못 일어난답니다.
뒤집힌 양은 아무리 용을 써도 스스로 못 일어납니다.. 그래서 목자가 와서 일으켜 세워 줄 때까지 그 상태로 누워 있는다고 합니다..
5) 이기적이고 멋대로랍니다.
새끼 양들이 배가 고파 어미로 보이는 양들에게 다가가서 우유를 얻으려 다가가면 양들은 매정히 뿌리치고 가버립니다.. 양이 그저 온순한 것 같지만 실은 상당히 이기적이고 멋대로인 면도 있다고 합니다.. 목자가 없으면 양은 각자 자기 먹이 찾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멋대로 가버린다고 합니다..
6) 방향 감각이 없다고 합니다.
양들은 방향 감각이 없습니다.. 시력이 너무 나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에 숲에 낭떠러지가 있는지조차도 구분 못하고 무조건 걸어 들어갑니다..
그래서 양은 반드시 목자 또는 양치기가 옆에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습니다..
7) 죽을 때가 되면 온순해진다는 것입니다..
염소나 돼지 등의 동물들은 죽음 직전 발버둥을 치는 반면, 양은 죽음 앞에서만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온순해 진다고 합니다..
연약한 인간하고도 비슷합니다.
우리는 목자의 세심한 사랑이 없다면 한 치 앞도 나아갈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미래 학자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점쟁이나 미신에 몰두하는 이유도 다 앞을 내다 볼수 없기에 보려고하기 때문입니다.
또 부동산에 투자하고 연금을 들고 하는 이유도 미래를 대비해 놓으려고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세의 급격한 변화와 개인의 질병 그리고 인간관계의 실패는 모든 미래를 절망으로 몰아가버리는 것을 자주 경험합니다.
현재의 푸른 풀밭은 곧 사라집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곧 다른 초장으로 가야합니다.
중요한 것은 양같은 우리가 미래의 푸른 초장을 만들어 내지도 못하고 미리 알아내기도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미래는 하나님의 권한입니다. 장래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미래의 푸른 초장은 2가지입니다.
첫째로 영생의 축복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사랑으로 오신 예수님을 인생의 구주로 영접한다면
아무도 멸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허무하게 인생을 마치지 않습니다.
한 사람도 수미산보다 죄업이 깊은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영생이란 영원한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영원히 그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우리의 영생을 소멸시킬 그 어떤 환란도, 질고도, 더 나아가 죽음도 없습니다.
롬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우리가 이 고된 인생길 마친 후에 갈 곳은 하나님 아버지의 품입니다.
수고와 슬픔뿐인 인생을 접고 가는 푸른 초장은 보좌의 우편에서 우리를 맞이하러 달려오시는 예수님의 품인 것입니다.
우리의 마지막 미래는 푸른 초장입니다.
영원히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생을 누리는 미래가 약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너무 어두워하지 마십시오 너무 눌려 있지 마십시오
미래는 보장되어 있습니다.
내일 이 땅에서의 소풍을 끝내고 가는 길은 영생의 복을 누리는 축복의 길이 약속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생수가 터지는 성령충만입니다.
요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중요한 표현은 명절 끝날입니다. 축제의 끝입니다. 잘나가는 시간이 종료된 때를 말합니다. 이때 사람들은 두려움과 불안, 허무함으로 어쩔줄 모르고 다른 낙을 추구하며 방황하는 시기입니다.
그러한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좋은 꼴을 먹이십니다.
요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우리에게 오시는 방법으로 성령님을 보내주십니다.
요7: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그렇습니다. 성령의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세상줄 끊어질 때 우리는 하늘의 양식을 공급받습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죽어가는 영혼이 새 힘을 얻습니다. 새 소망이 생겨납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불안한 삶이 평강으로 가득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나의 삶에 가득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갈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내가 바뀌면 주변이 바뀝니다. 내가 바뀌면 모두가 바뀝니다.
내가 은혜 받으면 주변은 은혜의 바다가 되는 것입니다.
2021년 대림절은 예수님의 오심은 남들이 못보는 이 작은 사랑, 그러나 한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이끄시고 인도하시러 오심을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나의 미래는 푸른 초장으로 예비되어있음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마음문을 열고 지금 베들레헴의 초라한 말구유와 같은 우리의 마음중심에 작은 사랑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우리 예수님은 나를 이끄시고 나를 보호하시는 우리 인생의 목자이십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라는 찬양을 같이 하시겠습니다.
1.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나의 힘을 의지할 수 없으니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은 주께서 참 소망이 되심이라
2. 주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세상의 것 의지할 수 없으니
감사하고 낙심하지 말 것은 주께서 참 기쁨이 되심이라
후렴 하나님의 꿈이 나의 비젼이 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인격이 되고
성령님의 권능이 나의 능력이 되길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