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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모음

주께서 세우시고 다스리시는 나라_출15:16-18_8월 15일

성문Shalom 0 172 0

임무는 단 하나! 달리고 달려, 일본군을 죽음의 골짜기로 유인하라!

19193·1운동 이후 봉오동 일대에서 독립군의 무장 항쟁이 활발하게 벌어집니다. 봉오동은 두만강 하구 도문시에서 약간 떨어진 만주지역 마을입니다. 일본군은 신식 무기로 무장한 월강추격대를 필두로 독립군 토벌작전을 시작하고, 독립군은 불리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봉오동 지형을 활용해 유인책을 펼치기로 합니다.

계곡과 능선을 넘나들며 귀신같은 움직임과 예측할 수 없는 지략을 펼치는 독립군의 활약에 일본군은 당황하기 시작하는데 결국 19206, 역사에 기록된 독립군의 첫 승리를 이루게 됩니다. 이것을 그린 영화가 바로 2019년 개봉한 원신연 감독의 봉오동 전투이고, 이때 승리를 이끈 장군이 홍범도 장군입니다.

 

구한말 1868년 평양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사냥꾼으로 활동하던 홍 장군은 대한제국이 을사조약, 정미조약 등으로 일본의 속국으로 전락하자 1907년 포수들을 모아 의병부대를 결성했고 이후 일본군 30여명을 살상한 후치령 전투 등 수십 차례 일본군과 격전을 치렀습니다. 친일 관리와 부호 등을 처단하고 일본인 금광을 습격해 금괴를 빼앗아 군자금으로 활용하는 등 대담무쌍한 활동을 벌여 날으는 홍범도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19108월 경술국치로 국권을 빼앗긴 뒤 홍 장군은 간도와 연해주로 옮겨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홍 장군은 3·1만세운동 이듬해인 1920년 독립 무장투쟁사에서 가장 빛나는 승리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지는 봉오동 전투를 이끌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독립 세력의 거점이던 만주와 연해주 지역에 대한 일본의 군사적 압박이 강해지자 홍 장군은 독립군 세를 키우기 위해 러시아 영토로 이동했다가 한인 무장세력 간 분쟁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자유시 참변을 겪었습니다. 소련 공산당은 이 사태 이후 한인 무장 세력을 강력하게 통제했고, 1937년에는 스탈린 정권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홍 장군 등 96천여 명의 고려인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로 이주 당했습니다. 홍범도 장군은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는 움막집에서 살며 고려극장 경비로 생계를 이을 만큼 힘든 말년을 보내다 75살에 숨을 거두게 됩니다.

(영상)

정부는 올해 광복절 76돌을 맞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안장되어 있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모셔올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15일 저녁 고국에 도착하는 홍 장군의 유해는 16~17일 국민추모기간을 거친 뒤 대전현충원에 18일 안장하게 될 예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자유가 무엇일까요? 자유가 무엇이길래 36년간 독립 운동을 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고난의 길을 걸었을까요? 이번에 미얀마에서 남녀 5명의 젊은이들이 군경의 급습을 피하려다 양곤의 한 아파트위에서 뛰어내려 숨을 거두었습니다. 자유를 위해서입니다.

 

위키백과에 자유란 자유(自由, freedom) 또는 해방(解放, liberty)은 일반적으로 내·외부로부터의 구속이나 지배를 받지 않고 존재하는 그대로의 상태와 스스로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 되어 있습니다.

자유가 사용되는 용법이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있다고 봅니다.

행동이나 생각을 제약받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음: 출입의 자유, 자유로운 영혼, 자유롭게 날다 등.

나쁜 것이나 싫은 것으로부터 벗어남 : 빈곤으로부터의 자유, 무지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 등.

개인의 당연한 사회적 권리(기본인권)로서의 자유 : 언론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재산 처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거주지선택의 자유 등.

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주 옛날부터 있던 단어(개념)입니다. 는 서양에서는 고대부터 사용되었으나 동양에서는 사용되지 않았으므로 우리에게는 서양으로부터 도입된 근대적 용법입니다. 그러나 는 자유를 단지 상태를 서술하는 용어로 사용되며 사회적 권리로 파악하고 있지 않는다는 점에서 과 다릅니다. 자유를 개인의 사회적 권리로 인식하는 은 서양에서 근대 종교개혁과 시민혁명과정에서 등장한 근대적 개념이며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유의 개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론적으로는 소중한 자유개념인데 자유를 잘못 이해하고 사용하여 고통스러운 상태를 만드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사회적 조직과 환경은 나아졌는데 뒤따르는 방종이 갈등과 긴장을 유발하는 것이지요.

 

36년간 일제강점에서 벗어나자 해방이다 이제 자유다 하면서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인간의 탐욕과 추악한 이기심이 작용을 합니다. “이젠 자유다!” 하면서 관공서 건물을 부수었고, 자기가 다니던 학교에 돌을 던져서 유리창을 부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본사람들이 남기고 떠난 적산가옥을 제 것으로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곧바로 좌익과 우익으로 사상논쟁에 휩싸이며, 해방과 함께 생긴 이 사상적 공백 속에서 피를 뿌리는 테러가 자행되었고, 그 자유란 이름 아래서 오히려 일반 백성들은 웅크리고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누구를 위한 자유의 외침입니까?

 

예수님은 자유에 대하여 분명하게 정의 하십니다.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자유는 진리를 알 때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가 우리를 다스리실 때 자유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모세의 찬양입니다.

홍해바다가 갈라져서 건너는 중 뒤쫓아와 다시 노예의 삶으로 이끌려던 애굽의 군사들이 수장되고 무사히 건너고 난 후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흔히 이렇게 일이 마무리 되면 편이 갈라지게 됩니다. 홍해바다 앞에서 두려워하고 불평하던 사람들을 단죄하자는 파가 생기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8·15 해방이후가 그랬습니다. 친일파들을 색출하고 일제에 우호적인 사람들을 정죄하였습니다. 76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이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겉으로는 정의와 역사의 보존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상당히 많은 경우가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고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입니다. 무사히 건넜으니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생할 때 너희들은 뭐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곳곳에서 보기 싫고 갑갑한 일들이 자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모세는 홍해를 건너자 비방하고 도전하던 사람들을 색출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찬양하였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노래를 하였던 것입니다. 설명하자면 모세는 진리를 알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이시라는 진리를 붙잡고 감정의 굴곡에서 자유를 경험하였던 것입니다. 모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15:16 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임하매 주의 팔이 크므로 그들이 돌 같이 침묵하였사오니 여 호와여 주의 백성이 통과하기까지 곧 주께서 사신 백성이 통과하기까지였나이다

 

사실 홍해바다를 가르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물이 넘쳐흐르고 애굽의 군사들이 휩쓸린 것도 하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우리나라 8·15 해방도 마찬가지입니다. 하필 더 강한 독일 나치군에게 미국이 원자폭탄을 사용하지 않고 일본에게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떨어진 폭탄은 너무 큰 파괴였고 놀람이었고 두려움이었습니다. 순식간에 일본이 항복을 하고 우리민족은 갑자기 해방을 맞이한 것입니다. 우리가 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의 독립운동과 거센 저항운동이 있었지만 사실 1940년대에는 모든 면에서 무너져서 독립은 망연자실 포기하고 상상도 못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것을 모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15: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 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시고 심으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여호와께서 영원히 다스려 주시옵소서.

15:18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

그렇습니다. 진리를 통해 얻는 자유는 이것입니다. 바로 은혜로 살았고 은혜로 살고 은혜로 살게 될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어떤 환경이 닥쳐도, 그 어떤 상황이 펼쳐져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된다는 확신이 바로 진리를 통해 얻게 되는 자유인 것입니다.

 

모세는 이 은혜를 고백하면서 이렇게 자유를 얻었습니다.

 

첫째, 모세는 자신이 통치하지 않고 하나님의 통치를 기대하였습니다.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시니.

우리들의 삶의 많은 경우 내 주장대로, 내 생각대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가정도 직장도 심지어는 내 자식도 내 생각대로 움직여지길 바랍니다. 이것을 선악과를 먹는 심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완전하고 전능한 신이 아닌데 하나님처럼 평가하고 주장하고 다스리고 싶어 합니다.

함께 가면 좋지만 막히면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인도하시게 맡기셔야 합니다. 그것을 이루어보겠다고 투쟁하고 싸우고 자녀들을 망치고 가정이 파괴되고 주변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줄수록 초라하고 비참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막히고 부딪히게 될 때 자유하게 되는 방법은 바로 하나님의 통치에 저들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영적인 훈련을 하면 견디고 바라는 영적인 근력을 키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둘째, 모세는 소망의 거룩한 나라를 꿈꾸었습니다.

현대어) 15:17 주님은 이 겨레 이끄시어 주께서 차지하신 산 그곳에 심으소서. 여호와시여, 이곳은 주께서 몸소 머무르시려고 마련하신 자리가 아닌가요? 주님, 이곳은 주께서 손수 세우신 성소가 아닌가요?

홍해바다를 건넌 기쁨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를 꿈꾸며 자유함을 얻었던 것입니다. 일시적인 기쁨, 환경적인 만족이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나라, 거룩한 가정을 꿈꾸는 삶이 자유 하는 삶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의 지독한 위협 속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환경만 보면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어려운 때에 심령의 훈련을 하여서 믿음으로 주변을 보며 견디고 챙기고 돌보는 훈련을 하여서 결국은 이 고난의 시기를 통과하여서 거룩한 나라에 도달하려는 꿈을 꾸셔야 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거룩한 백성으로 택하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 한국기독교는 일제 강점기 때에 평양대부흥운동으로 백성들의 나라를 위한 기대와 소망을 지켜나갔고 새벽기도 주일학교운동으로 세계교회의 모범을 이루어 왔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여러 가지 난제들이 한국 기독교 앞에 놓여 있지만 이 민족을 향한 우리의 기도는 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우리 교회들의 눈물로 영원히 이어져 갈 것입니다.

 

우리 성문교회도 오늘 1시에 새 성전 증축을 위한 기공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그동안 63년간 헌신과 눈물로 교회를 세워왔던 선배 신앙인들의 기초위에 또 다시 성전을 세움으로 예수님의 꿈을 이루어 드리고 세계선교의 장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이 모든 것이 은혜였고 전적인 주님의 은혜입니다. 이제 소망의 거룩한 나라를 꿈꿀 때 우리나라도 그리고 우리 성문교회도 그동안의 모든 시련과 속박에서 자유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15:18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

 

은혜라는 찬양을 모세처럼 같이 하시겠습니다.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아침 해가 뜨고 저녁의 노을 봄의 꽃향기와 가을의 열매

변하는 계절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내가 이 땅에 태어나 사는 것 어린 아이 시절과 지금까지

숨을 쉬며 살며 꿈을 꾸는 삶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며 오늘 찬양하고 예배하는 삶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축복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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