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주를 보다 - 하나님의 자랑인 욥 (욥기서 42; 1- 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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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주를 보다 - 하나님의 자랑인 욥 (욥기서 42; 1- 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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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주를 보다 - 하나님의 자랑인 욥

2018923

본문 : 욥기서 42; 1- 6

 

오늘은 2018년 추석연휴 기간중의 주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만나고 함께 시간을 갖고 음식을 나누면서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이 연휴기간에 잊지못할 장면들을 더 많이 담아두시기 바랍니다

요새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서사 즉 구체적인 사건, 행동등을 자세히 그리는 줄거리에 더 많은 정성을 담기보다는 한 장면 장면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듣는 이야기보다는 보는 한 장면 한 장면이 가슴에 추억으로 남고 기억으로 남기 때문이랍니다

이번 명절에도 주변의 사람들과 좋은 장면들을 눈으로 확인하시면서 가슴에 담아내시는 축복된 시간들이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이번 주에 읽으실 말씀은 욥기서입니다

욥기는 1- 42장까지의 말씀입니다 욥은 많은 분들이 아시는 대로 고난과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변하는 말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욥기에 대하여 많은 작가들이 찬사를 보냅니다

빅토르 위고는 욥기야말로 인간 지성의 가장 위대한 걸작품이다

토마스 카알라일은 성경안이든 밖이든 욥기같은 문학적 업적을 남긴 작품은 지금가지 없었다 라고 했습니다

알프리드 로드 테니슨이란 사람은 욥기는 고대와 현대문학을 막론하고 가장 위대한 시이다라고 했고 유명한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성경의 어떤 다른 책들보다 웅장하고 숭고하다고 할 정도로 많은 찬사가 나오는 책인 것입니다

 

욥은 족장 시대 초기의 인물로 추축이 됩니다 그는 우스땅에서 가장 부유한 족장이었습니다 우스란 에돔지역을 말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의인이었습니다

사단의 시험으로 재물과 자식을 모두 잃고 질병까지 걸렸음에도 끝까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10남매가 하루아침에 몰사 당하는 비극을 겪고 본인은 온 몸에 창질이 나고, 그래도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잿더미에 앉아 깨진 기왓장으로 몸을 박박 긁는 모습 속에서 보다못해 아내마저 남편 욥에게 "당신이 그래도 순전을 굳게 지키겠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시오" 라고 할 정도로 극한 고난을 견디는 장면으로 욥기서는 욥을 그립니다

 

그러한 가운데 그는 자신을 찾아온 세 명의 친구들, 즉 엘리바스, 빌닷, 소발과 논쟁을 하고 엘리후와 대화를 하는 가운데 자신의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을 갈구하였는데 하나님의 영광과 주님의 주권을 깨닫고 자신의 부족함을 회개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복을 주시어서 큰 재물과 자녀를 다시 주시는 것으로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내용을 끝을 냅니다 해피엔딩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랑이었던 욥은 인간사의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마침내 인생의 답을 찾게 된 것입니다

 

세 친구들의 논쟁은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원인이 있고 원인없는 결과는 없으니 네가 반드시 하나님앞에서 잘못한 것이 있기에 이렇게 고난이 온것이니까 죄를 회개하라고 권고와 충고를 합니다

 

이런 일들이 종종있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교통사고를 당하여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래서 위로하러 심방을 목사님하고 구역장하고 갔는데 병실에 들어서서 구역장이 선듯하다는 말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게 뭐라고 했어 주일날 빠지지말라고 했지 .... 위로하러 갔다가 아픈사람 질책하고 오는 경우가 되고 만 것입니다

 

물론 인간의 잘못으로 사건과 사고 그리고 고난이 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창조된 세계안에서 일어나는 인과율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지혜는 더 크고 넓습니다 창조전에 하나님의 섭리가 존재합니다

인류의 역사전에 하나님의 지혜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명의 친구처럼 인간의 역사 문화 사회 과학으로 모든 것을 풀어보려고 노력하지만 맞는 이야기이긴 하나 완전한 이야기는 아닌 것입니다

 

고난과 환란은 죄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또 어느 때는 열매를 맺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씨가 죽고 꽃이 떨어지는 그 자리에 열매가 자리하듯이 그렇게 고난이 승화되는 단계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1) 죄와 잘못으로 인한 스스로의 고난

2) 잘못은 없지만 생기는 애매한 고난

3) 연단을 위한 고난등으로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이성적으로 가늠해보는 것이지 모든 일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은 인간인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시중에 가을의 기도란 시가 있습니다.

시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아는 시인데... 이 시는 김현승이라는 분의 시입니다 그분은 아버님이 목사님이셨습니다

기독교적인 정취가 나오는 시들이 많습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이어집니다

 

김현승 시인의 시는 차분하고 서정적인 감흥이 느껴지지만 삶은 치열하였습니다

한일합방 사건이 있은 후 얼마 안된 1913년 출생하였습니다

신사참배 문제로 그 자신과 누이동생과 아버지 목사님이 함께 감옥에서 고생하다가 결국 누이동생은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해방이 되고 나서는 숨 좀 돌리는가 했더니 그만 본인의 아들이 죽는 어려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때.. 그렇게 아들을 먼저 하나님 나라로 보내고 나서 슬픔을 딛고 시를 한편쓰는데 그 시제목은 눈물이라는 시입니다.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중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이 시의 구성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1연 순결한 생명의 기원 2연 순수 결정으로서의 눈물

3,4연 절대적 존재로서의 눈물 5,6연 순결한 생명으로의 부활

 

그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후 극심한 슬픔과 고통의 나날을 보냈지만 기도하며 말씀 읽으며 그 슬픔과 고통을 신앙으로 극복하면서 결국은 아름다운 시()를 지었던 것입니다. 욥처럼 말입니다

 

오늘 욥은 이러한 결론을 5-6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42: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즉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축복을 얻게 된 것입니다

들어서 알고 글로 알고 말로 나누어서 아는 신앙을 넘어서서 욥은 하나님을 눈으로 목도하는 은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이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들이 방안에서 문잠그고 있으면 어떨지 훤하게 알 때 얘 엄마가 너 뭐하는지 다 보여.....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가 안봐도 다 알아 다 보여.....

이 말은 아이의 행동 생각 모습이 익숙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이의 말 행동 모습이 익숙하다보니 이제는 안봐도 장면으로 그려진다는 것입니다

 

사실 시각으로 본다는 것은 너무 불완전하고 불확실합니다

시각으로는 너무 작아도 안보이고 너무 커도 안보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안보이고 눈에 병이 들어도 안보이는 것이 시각입니다 염증이 생기면 뿌였게 보이고 강한 빛이 들어오면 일시적으로 먹먹해 지는 것이 바로 시각입니다

 

그럼으로 오늘 욥이 이제는 눈으로 주님을 본다고 고백하는 것은 시각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욥이 말한 주님을 눈으로 보았다는 것은 다음의 두가지 의미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섭리하심과 인생을 인도하심을 익숙하게 깨달았다는 의미입니다

둘째는 자신의 인간됨과 교만한 마음을 보게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회개하였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생들을 인도하시는 것을 익숙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42: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1)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종종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셔서 자유의지를 주님에게로의 순종으로 바꾸기도 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유의지보다 하나님의 주권이 더 선하시고 완전하시기 때문입니다

2)하나님은 우리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가셔서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높은 차원의 인도하심을 행하시기도 하십니다

예를 들어,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힌 것은 그들이 갇히려고 의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간수와 그의 가족이 구원을 얻는 상황으로 인도되었습니다(사도행전 16:24-34). 이것은 바울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애매한 고난을 당하였지만 하나님은 감옥의 간수의 가정을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정말 우리 살아계신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일들을 주님의 선하신 계획으로 이끄실수 있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고린도 전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전15: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고전15: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고전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 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존 파이퍼 신학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4가지로 정의합니다

1)천명으로 이끄십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으로 이끄십니다

2)지시로 이끄십니다 성경의 명령과 규례와 가르침으로 이끄십니다

3)분별로 이끌어 가십니다 우리들이 분별을 요구하십니다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4)직접 말씀하심으로 이끄십니다 흔하지 않은 경우이지만 환경과 여건속에서 꿈과 환상속에서 성령께서 말씀하심으로 이끌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주권으로 섭리하심 안에서 안식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욥은 분명한 하나님의 섭리하심의 지도가 장면으로 다가 온 것입니다

그리고 욥은 이제 고난의 긴장에서 쉼이 오고 고통가운데 나오는 질문에서 주님의 선하심의 인도를 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이제 명절기간동안에 가족들이 모이면 여러 가지 좋은 소식과 안좋은 소식들을 들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대로 안이루어진 친척도 있을 것입니다 아직 기도제목의 응답이 늦어지는 식구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안타깝게 볼 필요가 없습니다 위로한답시고 말해서 상처 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SNS에 올라온 글을 보니까 이런 메뉴판이 있습디다

추석 명절에 아무말 대잔치 메뉴판 ...

반에서 몇등하니 50,000 원 대학은 갈수 있니? 80, 000

대학은 어디갔니? 100,000 원 너 어릴땐 예뻤는데 ... 50,000

살 엄청 쪘구나 100,000원 그거해서 먹고 살수 있겠니 ? 100,000

너희 엄마 고생하는 거 생각해서 잘 해 .. 200, 000원 이랍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넉넉하게 기도해주셔야 합니다

안식을 선물하시고 하나님의 선하심의 지도를 그려주시기 바랍니다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하는 자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가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자녀 삼으셨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귀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둘째는 자신의 연약한 인간됨과 교만한 마음을 보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42: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42:6 이렇게 내가 꿇어 엎드립니다. 먼지바닥 위에 앉아 재를 뒤집어 쓰고 회개합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교만하게 말했던 언어, 표정, 그리고 행동들.... 이 모든 것을 이제 돌아보게 됩니다 전에는 안보였는데 전에는 당연한 것이었는데 ...

이제 주님 앞에 서니 그 모든 것들이 검은 재와 같고 먼지 바닥에 앉아서 한 행동같습니다 주님 저를 용서해주세요 돌이키오니 저를 긍휼히 여겨주세요 ...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욥은 당대의 굉장한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일순간에 다 사라지고 마는 극한 체험을 합니다 세상에서 귀하게 여기는 이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바람을 잡으려는 인간의 노력은 어느 날 한줌의 흙으로 남게 됩니다

인간의 살고 죽음, 쥠과 내려놓음, 높음과 낮아짐, 길고 짧은 것 .. 이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전능하심 앞에서 점과 같고 선과 같은 것을 장면으로 본 것입니다

 

마치 명절에 사랑을 다 쏟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그 크신 사랑앞에 해드린 것이 없는 불효한 모습을 문득문득 떠올리며 눈물을 자아내듯이 그렇게 우리는 이 교만한 죄인됨을 깨닫고 돌이키고 예수님을 보내셔서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 큰 사랑에 겨워서 돌이키게 되는 그런 장면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시게 하시기까지 사랑하신 바다보다 넓고 우주보다 큰 그 사랑앞에서 우리의 교만은 부질없고 우리의 자랑은 소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까지 사랑하신 그 간절하신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안식을 누리시고 풍성함을 바라보시면서 다시 겸허하게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용납하고 안아주시는 회복의 절기, 안식의 명절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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