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의 때에 신앙을 지킨다면.. (요한계시록 3: 7- 13절) 12월 29일
시험의 때에 신앙을 지킨다면..
2019년 12월 29일
본문 : 요한계시록 3: 7- 13절
오늘은 일상적으로 말할 때 2019년 마지막 주일이 됩니다
마지막이란 단어가 무엇인가 우리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생명이 붙어 있는 한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그다지 절망적인 단어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2020년을 살 것을 전제로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것은 2020년 1월 1일은 맞이하기 위한 시간의 통과점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쓸 때 시간의 개념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환경과 여건의 개념으로도 쓰이기도 합니다
절망적일 때 고통스러울 때 우리는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 절망이 깊어지면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생명에 적용시키기도 합니다
질병이나 실패나 시험의 자리에서 우리는 자주 마지막이란 생각을 자주하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이 붙어 있는 한 마지막이라는 것은 있을수 없습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딱 한가지입니다
알파요 오메가 요 처음과 마지막이 되시는 주님 앞에 서는 날이 마지막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이 땅에 살면서 마지막이라는 것은 통과하는 자리일 뿐 완전 끝은 아닙니다 우리는 오히려 시험과 고통의 순간에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가 당한 시험과 고통을 잘 분석해서 새로운 창조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당하는 시험이나 고통은 몇 가지 형식속에 기초할 수 있습니다
1)나의 잘못에 기초한 결과로서의 시험이나 절망일 때가 있습니다
이때의 절망은 훈계 채찍 징계의 차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어떤 목적에 의해서 거치는 과정으로서의 고통과 절망이 있을수 있습니다
군인이 훈련을 받는다든지 학생이 시험준비를 한다든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려고 연단하시든지 힘들고 어렵지만 통과해야할 시험의 과정으로 고통을 받고 절망을 느낄때가 있는 것입니다
3)내가 자원해서 당하는 시험이나 고통이 있습니다
수도사들이 자원하여 금식을 하고 고행을 한다든지 남을 돕다가 어려운 일에 처한다든지 우리 스스로 고통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명품연단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해결 방법은 이렇습니다
만일 1)나의 잘못에 기초한 결과로서의 시험이나 절망이 찾아온다면 빨리 회개하고 나를 돌이켜 삶의 방식을 고쳐야 해결이 되고 새로운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만일 2)어떤 목적에 의해 거치는 과정으로서의 고통과 절망이 찾아온 것이 확실하다면 견뎌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때가 지나야 하고 시간이 채워져야 합니다 훈련이 되고 연단이 되고 나서야 새로운 길들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힘들다고 고통스럽다고 도망치거나 회피하면 안됩니다 인내하고 견뎌야 하는 시간입니다
만일 3) 내가 자원해서 받게 되는 시험과 고통의 시간이라면 반드시 기쁨으로 선한 역사를 믿고 전진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1)그 길이 바로 복된 길이고 하늘의 축복을 얻게 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2)그리고 중요한 축복인 것은 기쁨으로 견디면 거룩해지기 때문입니다
(3)그리고 하나님의 사역이 부족한 나를 통해 이루어 지기 때문인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교회일을 하다가 그리고 선한 일을 하다가 고되기도 하고 낙심도 되고 시험에 들때도 있습니다 주저앉지 마시고 기뻐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눅10:20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그럼으로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마지막이란 단어는 없는 것입니다
오직 처음과 마지막이신 예수님 앞에 서는 것만이 마지막인 것입니다
계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우리는 영원히 살 것이고 마지막 순간이란 우리의 모든 삶이 판단되는 때일 뿐인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2장부터 보면 마지막 주님앞에 서는 날에 예수님의 칭찬과 책망을 받을 7교회의 모습이 나옵니다 에베소 교회 서머나교회 버가모 교회 두아디라 교회 사데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 라오디아 교회입니다 이 교회들은 당시에 터키의 서남부쪽에 있던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들은 성도들로도 상징이 됩니다
칭찬받는 교회 책망받는 교회 모습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칭찬만 받은 교회가 2교회가 나옵니다 바로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서모나 교회입니다
빌라델비아는 ‘작은 아덴(아테네)’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문화의 꽃을 피웠던 도시였습니다. 포도생산지로도 유명했습니다. 빌라델비아는 교통중심의 도시로서 상공업이 발달하여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도시였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믿음의 시련 중에서도 복음과 사도들의 가르침에 충실한 탓에 서머나 교회와 함께 칭찬만을 들었습니다.
실제로 주변 도시가 모두 회교화된 상황에서도 빌라델비아 교회는 1392년까지 기독교 도시로 남아 있었습니다.
우리는 2019년의 끝의 주일을 보내면서 정말 마지막이 다가오기 전까지 빌라델비아교회처럼 칭찬받는 성도로 꿈을 꾸며 보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빌라델비아 교회는 어떤 교회였습니까?
첫째,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던 교회였습니다
계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렇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능력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큰 교회, 크고 높은 자리, 큰 사람을 선호하고 좋아합니다
외적인 조건과 모습에 더 많은 점수를 줍니다
많은 능력을 가진 사람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은 화려할수록 속이 비인 사람을 많이 보고 높은 사람일수록 진실하지 못한 사람을 자주보며 대단한 사람일수록 나쁜일을 많이 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스타들의 삶이 다 그렇치는 않치만 상당수 겉만 추구하는 사람들일수록 방황하고 타락하고 악한 일들을 많이 하는 것을 자주 듣습니다
반면에 작지만 진실하고 담백하게 사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진실하게 살려고 애를 쓰고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분들을 자주 봅니다 무명의 사람이고 대단한 평가를 받지는 못하더라도 주변사람들을 소중하게 대하고 아름다운 가치를 가지고 사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신앙생활은 어떻게 보면 그런 것입니다
세상의 화려함을 추구하고 세속의 모든 파워를 쟁취하면서 한번 뿐인 인생을 더럽고 추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진리인 말씀붙잡고 사는 것이 진실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작은 자에 관하여 스토리로 가득차 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 무력한 청년일 뿐이었습니다
사사 기도온은 미디안이라는 강국 앞에서 자주 머뭇거리는 두려움 많은 적은 능력을 가진 자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 면면을 보면 하나같은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부이고 세리였고 무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일하심에 시용되어 인간의 역사에 큰 획을 그었습니다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미디안을 300명만 데리고 나가서 싸워 대승을 거두고 전세계에 복음을 전하여 세계 역사를 AD와 BC로 나뉘게 한 역사적인 일들을 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적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에 동행하게 된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고 , 자신의 환경을 보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지키려고 몸부림쳤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누가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다윗이 이룬 것이 아닙니다 기드온이 물리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지키려고 하는 이 사람들을 붙잡고 하나님의 역사를 쓰신 것입니다
사실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현실생활에서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1)수치 때문에 어렵습니다 10만 대 300명 이길수 없는 게임입니다
2)사람 때문입니다 고저가 분명하고 장단이 분명합니다 많고 적음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물질이 많은 사람이 못붙잡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부터 합니다
3)환경 때문입니다 풍랑이 일고 파도가 칠 때 바다에 빠져 들어갔던 베드로처럼 소리지르고 두려움에 휩싸이게 됩니다 조금만 어려워도 금방 모든 것을 놓아버립니다 믿음이 소리보다는 원망의 소리가 먼저 나오는 것이지요
믿음은 지키는 것입니다 믿음은 말씀을 붙잡고 견디는 것입니다 몸부림 치는 것입니다
이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고백하고 주님의 일하심을 믿고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고백하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켜내는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말씀을 지키고 예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교회는 작은 능력을 가진 교회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지키는 분들이 많이 나오시길 축원드립니다 환경과 여건이 열악하지만 믿음으로.. 말씀으로 몸부림치면서 사시는 분들이 많은 줄로 믿습니다
2020년 수치, 사회환경, 여건 모두 평가 점수가 낮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일하실수 있도록 믿음을 지키시고 말씀을 믿고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역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둘째로 시련과 연단의 시간에 순종함으로 오히려 명품연단으로 응답한 교회였습니다
현대어) 계3:10 너는 박해당하면서도 인내로 내게 순종하였다
그렇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박해를 당할 때 피하거나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인내로 버티면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루스드라에서 유대인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숨이 멈쳐지고 성문밖에 던져지고 말았습니다 죽었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그러나 교인들이 와서 간호하여 살려냈습니다 몸이 회복이 되자 사도 바울은 또 다시 복음을 전하러 더베로 내려갑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또 전하였던 것입니다
주의 제자 베드로는 로마가 대 화재로 불타고 기독교인들을 잡아들여 죽일때에 많은 성도들이 대 사도 베드로보고 로마를 떠나라고 했습니다 간곡하게 부탁함으로 떠나는데 돌로로사 길에서 로마로 들어가시는 예수님을 환상으로 만납니다 쿠오바디스 도미니 ...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나는 내 양을 지키러 불타는 로마로 들어간다 ... 그때 베드로는 통곡을 합니다 예수님 십자가 지실때에 3번이나 부인한 때를 떠 올립니다 닭이 울던 그때가 떠오릅니다
다시 베드로는 길을 돌이킵니다 불타는 로마로 들어가서 교인들을 격려하다가 집혀서 십자가형에서 죽게 됩니다 그때 집행관에게 부탁합니다 나는 예수님처럼 바로 박혀서 죽을 자격이 안되니 거꾸로 매달려 죽겠노라고 .... 그리고 거꾸로 매달려 죽은 것입니다
2019년 한국의 많은 분들이 교회가 타락했다 지도자들이 문제 있다 교회를 비방하고 떠났다고 합니다 사회는 더욱 신앙인에 대하여 조롱하고 멸시합니다
아직 심한 박해까지는 없지만 박해를 받는 날도 올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떠날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체험이 없는 사람은 베드로처럼 부인 할 것입니다 배반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내 인생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고백한 사람들은 오히려 고난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고 그 은혜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갚을 길이 없어서 목숨이라도 생명이라도 드릴 것입니다
주님의 자녀들은 명품 연단에 동참하기를 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시험의 때에 신앙을 지키자 5가지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1.장래가 열린 문을 받게 됩니다 천대에 이르는 하늘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계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2.시험의 때를 지켜주셔서 지나가게 해주십니다 상상할수 없는 보호하심에 따를 것입니다
계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3.하늘의 면류관을 받았습니다 메추라기 만나 뿐만 아니라 천사도 흠모하는 축복의 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계3: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4.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셨습니다 기독교 명문가문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계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5.하나님의 성, 즉 새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때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권을 받아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계3:12 ...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9년 끝 주일은 마지막이 아니고 신앙 점검하는 주일이고 주님만 바라보는 주일임을 기억하시고 2020년 믿음으로 새역사를 쓰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주님 다시오실때까지 ... 같이 부르시겠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좁은 문 좁은 길 나의 십자가지고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주시리
주님 다시 오실때까지 나는 일어나 달려가리라
주의 영광 온 땅 덮을때 나는 일어나 노래하리
내 사모하는 주님 온 세상 구주시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왕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