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함을 느낄 때 예수님이 보입니다._고후12:7-10_11월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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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함을 느낄 때 예수님이 보입니다._고후12:7-10_11월28일

성문Shalom 0 4640 0

무력함을 느낄 때 예수님이 보입니다.

본문 : 고린도 후서 12: 7-10 

 

사람들은 크고 화려하고 좋은 것을 선호합니다.

정상적이고 평탄하며 승승장구하는 인생을 그리며 살아갑니다.

본능적으로 사람은 강하고 완전한 삶을 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육신뿐만 아니고 마음(정신)과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육체는 쇠퇴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우주보다 넓고 세월이 흐를수록 더 커집니다.

영혼 또한 그 크기를 가늠할 수가 없을 정도로 깊습니다.

물론 갈수록 마음이 좁아지는 사람, 인색해지는 사람, 추한 마음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세월이 쌓여갈수록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생각하기에 하고 싶은 말도 많고 가르치고 싶은 생각도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잔소리도 하고 젊은 사람은 이해안되는 인생 훈수도 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다 안다고 생각해여도 1950~60년대의 경험으로는 2021년의 세상을 이해할 수도 없고 덮을 수도 없는 것임에 분명합니다. 농경문화와 산업화시대의 문화가 지식경제 시대, 4차 산업혁명시대를 논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인간의 마음의 크기 영혼의 크기는 한이 없고 세상의 모든 지식과 철학과 경험을 담고 다 들어가고도 부족할 정도로 어마무시합니다.

 

그러면 묻습니다. 얼마나 살아야 이 모든 세상의 경험과 지식을 다 담을수 있을까요? 쳔년이요 만년이요?

얼만큼 배워야 우리 마음과 영혼을 만족시킬수 있을까요? 박사학위가 한 열 개쯤 있으면 만족할까요?

얼만큼 돈이 있으면 이정도면 충분하다고 말 할수 있을까요? 10001조 정도요

 

그런데 대부분은 돈이 많으면 건강이 안좋고 건강이 좋으면 인간관계가 안좋고 인간관계는 좋은데 돈이 없는 삶을 사니 인간은 얼만큼 담아야 마음과 영이 만족하는 것입니까?

 

또 세상의 좋은 모든 것을 소유했는데 누리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이 가져가는 일도 많으니 얼마나 곤고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까?

6:2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온 우주의 모든 보배를 다 쓸어담아도 그리고 온 세상의 귀한 것을 다 소유한다고 해도 인간의 심령은 채워지지 않고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함이고 의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완전할수도 없고 온전할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의 본 모습이고 실존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내가 다 맞다고 내가 다 옳다고 남을 비난하고 공격하고 교만하게 완악하게 살아가고들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악된 인간들이 사는 고통이며 인간사의 전쟁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에서는 이렇게 자세히 이 현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3: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3: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롬3: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3:15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롬3: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3: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롬3: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이것이 나의 본 모습이며 모든 사람들의 현실인 것입니다.

 

그럼 반대로 우리 인생은 언제 만족할수 있을까요?

우리의 마음은 언제 충족이 되고 감격스러울 수 있을까요?

정답은 이렇습니다.

온 우주를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를 빚으신 후에 온 세상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 ,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시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비로서 채워지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큰 존재이고 경이로운 존재인 것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에 들어오시기 위해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의 죄사함을 선물하시고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채우시기 위해 기다리시고 계십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영혼의 문 밖에서 ...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중요한 것은 사람은 무조건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내가 신인데 내가 왕인데 내가 옳은데 내가 강한데 스스로 문을 열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가지 길을 만드셨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즉 무력감을 느끼는 자리인 것입니다.

어느 사람은 질병으로 어느 사람은 사업과 과제의 실패로 어느 사람은 사람관계로 어느 사람은 잘못된 행위로 스스로 무력감을 느끼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 길을 따라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 들어오시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마음을 더 닫으면 영원히 진리와 멀어지는 것이고 이때 겸손히 마음의 문을 열면 하늘의 능력과 사건이 우리 인생의 그 심령속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요 우리 인생의 축복인 것입니다.

신앙의 혜택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신앙생활의 유익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고백하는 사도바울의 간증입니다.

 

사도바울은 사실 사울이었을때에도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 바리새인중에 바리새인이요 즉, 부모의 영향으로 사회리더자 그룹에 들어간 사람이고

- 가말리엘 문하생이었고 즉 서울대 하버드 출신이었고

- 로마 시민권을 가진 특권층이었습니다. 즉 요새 말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사는데 불편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된후에는 이 모든 것을 배설물정도로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고 고백합니다.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또한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후에도

- 큰 그림을 그려서 세계선교를 계획하고 실천하는 탁월한 사람이었고

- 주님의 환상과 계시를 자주 경험하였고 천국에 올라가는 체험을 한 특별한 사도였습니다.

- 3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시리아 터키 그리스 로마까지 종횡무진 복음을 전파한 능력자였습니다.

 

그런데 능력자 사도바울이 무력감을 느낄때가 자주 있었습니다.

그것을 사도바울은 7절에서 육체의 가시라고 고백합니다.

고후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바울이 가진 육체의 연약함은 무엇이었을까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어왔습니다.

- 터툴리안(155~240)은 바울의 두통이 그의 가시라고 해석합니다.. 바울은 두통이 얼마나 심했던지 견디기 힘들어했는데 그것이 그의 가시라는 것입니다..

- 어거스틴( 3541113~ 430828)이나 토마스 아켐피스(1380~ 1471725) 같은 신학자는 바울이 정욕을 컨트롤하지 못해 아파했는데 그것이 그의 가시라고 해석합니다.. 바울은 혼자 사니 때때로 불타오르는 성욕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전하며 사는 내가 정욕 때문에 이렇게 괴로워하다니…….’하며 자신의 초라하고 비참한 모습을 보고 한탄하며 아파했다는 것입니다..

- 마틴 루터( 14831110~ 1546218)는 마귀의 공격이라 해석합니다..

마귀가 바울의 주위를 돌면서 바울을 공격하여 바울이 일생 고통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 깔뱅(1509710~ 1564527)이나 크리스소톰(349년경 407) 같은 사람은, 사도 바울을 끝까지 따라다니며 돌을 던지고 죽이려 한 유대주의자들과 이단자들이 그의 가시였다고 해석합니다..

- 그러나 대다수의 많은 학자들은 바울의 심한 안질과 간질이 가시였다고 해석합니다..

사도 바울은 설교하다가 쓰러지기도 하는 간질환자였고 또 안질이 심해서 시력도 좋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도바울에게는 항상 가시가 박혀 있다는 사실입니다.

 

현재 우리도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항상 조심해야 하는 질병, 계속 아픔으로 남아야 하는 사람, 수시로 고통스러운 감정을 유발하는 가난과 나의 못된 성격등이 우리에게 가시가 되어 늘 아픔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몇일전에는 의정부에 있는 병원의 한 20대 간호사가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귀가 안들리자 극단의 선택을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이 육체의 가시를 없애달라고 기도하기를 3번이나 했다고 합니다.

40일 금식기도 같은 결단의 기도를 3번이나 한 것이지요

그런데 고쳐지지가 않았습니다. 얼마나 과롭고 힘들었을까요?

 

그런데 그속에서 2가지의 진실을 깨닫고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첫째는 사도 바울은 자만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고후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아프고 고통스러우니까 자기 자랑을 멈추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도해도 안들어주시니 무력감을 느끼면서 자기 자신의 의를 내 세우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틈만 나면 자기 자랑, 자기 의를 드러내기 마련인데 가시가 박혀 있으니 입을 열수가 없는 자신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사도바울은 무력감을 느끼고 수치스러웠는데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후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저는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울고 말았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 나의 모든 원망, 자조함, 한탄을 일순간에 잠재우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

내가 아무것도 아닌 인생인데 ......

지금까지의 모든 은혜를 헤아리지 못하고 다른 은혜를 살피지도 못하고 가시에만 집중하다보니 원망과 신세 한탄만 나오는 것이 우리의 사는 모습인데 이 모든 것이 은혜였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혹시 오늘 육체의 가시, 삶의 가시 때문에 무력감으로 눌려 계십니까? 절망스러우십니까?

오늘 이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며 다시 위로받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둘째로 무력감을 느낄 때가 바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무는 때라는 사실입니다.

고후12:9 .....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사도바울은 고백합니다. 무력감을 느낄 때 능욕과 박해와 곤고함을 느낄 때 하나님을 더 찾게 되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게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때가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이고 그때가 하늘의 능력으로 나를 붙잡고 계시는 때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물론 계속 가시는 찔려 있습니다. 이 가슴에 박혀 있습니다.

그래서 더 간절히 주님을 손길을 구하고 그래서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세심하게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 광야에서 울고 걸을 때 매일의 만나와 메추라기로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 10년의 사울왕의 추격의 긴장속에서 하나님은 매번 피할 길을 주셨습니다.

도망의 달인이어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피할 길이 열린 것입니다.

- 그리고 청천병력같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과 충신이었던 아히도벨의 배신속에서도 , 큰 가시가 심장을 뚫고 나온 자리에서도 이렇게 다윗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삼하16:11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삼하16:12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그렇습니다. 힘들 때 막혔을 때 그리고 가시가 박혀서 피가나고 죽고 싶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내 안에 머물러 있다는 오늘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내 능력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사망권세를 이기신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는 강하게 버틸수 있고 이겨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누리는 축복이고 은혜이고 삶의 신비한 기적입니다.

 

오늘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다시 주님 손 붙잡고 일어서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찬송가 300 같이 부르시겠습니다.

1. 내 맘이 낙심되고 근심에 눌릴 때 주께서 내게 오사 위로해주시네

가는 길 캄캄하고 괴로움 많으나 주께서 함께 하며 내 짐을 지시네

 

2. 희망이 사라지고 친구 날 버릴 때 주께서 속삭이며 새 희망주시네

싸움이 맹렬하여 두려워떨때에 승리의 왕이 되신 주 음성들이네

 

3. 번민이 가득차고 눈물이 흐를 때 주 나의 곁에 오사 위로해 주시네

환난이 닥쳐와서 어려움당할 때 주님의 능력입어 원수를 이기네

 

후렴 그 은혜가 내게 족하네 그 은혜가 내게 족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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