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다_삼하 6:12-19_5월 9일
인생의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다
저는 오늘 말씀을 읽다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제 생에 춤이 저절로 나올만큼 기뻐했던 적인 언제였을까?
몇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고등학교가 청와대 옆으로 배정이 되었을 때 너무 좋았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또 첫 아기를 품이 안았을 때 너무 좋아 신이 났었습니다.
둘째 아이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손녀를 품에 안을때도 참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성문교회의 청빙을 받아 올때도 마음이 즐거웠습니다.
많은 기쁨의 시간들이 있었지만 가장 흥분이 되고 감격스럽고 행복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바로 고3 시작하는 해 당시 고등부 선생으로 있었던 자금은 모교회 목사님과 상담을 하면서 예수님을 영접한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외할머니로 이어지는 기독교집안이었지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그리고 내 인생의 주인으로 고백하고 영접하는 순간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너무 감격스러웠고 행복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 예수님과 주고 받는 대화가 시작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꿀송이보다 더 달고 눈에 쏙 쏙 들어오고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이 바로 나에게 하시는 주시는 말씀으로 들려왔고 마음의 확신과 자신감이 충만하게 됨을 몇 달동안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나무잎들이 바람에 스칠 때 노래하는 소리로 들렸고 새들의 지저귐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을 찬양하는 멜로디로 들렸습니다. 기쁘고 흥이나고 춤을 추다시피 몇 개월을 보낸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리고 그 체험은 제가 지금까지 사는 동안 여전히 유효하고 자주 엄습하는 슬픔의 삶을 다시 기쁘게 생각하게 만들고 고된 인생의 발걸음을 가볍게 춤추게 하는 사건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주님을 영접하는 것은 중생의 체험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3단계로 영접하는 상황을 분류해볼 수 있습니다.
1)순식간의 영접입니다. 성경적인 기초가 갖추어지지 못하였지만 너무 절박하여 예수님을 고백하며 회심의 순간을 경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2)점진적인 영접입니다. 말씀과 성경적인 훈련속에 인생의 주인으로 결단하고 고백하면서 회심의 순간을 경험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3)전반적인 영접입니다. 삶을 돌이켜 전체적으로 언제 특별히 예수님을 고백한 기억은 없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을 인생의 진리로, 그리고 삶의 반석으로 의지하며 붙잡고 살면서 주 은혜를 경험하는 경우입니다.
저는 두 번째에 해당되는 중생의 체험을 한 것입니다.
중생의 체험은 영원합니다. 중생의 체험은 사람을 춤추게 만듭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세상의 때가 벗겨지고 순전해지는 마음의 중심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그렇게 과거의 모든 슬픔을 춤으로 바꾼 왕이 있습니다. 다윗왕입니다.
이번 주에 읽으실 말씀은 사무엘하 6장부터 10장까지의 말씀입니다.
6장은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다윗성으로 옮기는 내용입니다.
7장은 나단선지자가 다윗을 축복하고 다윗이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7장에 나오는 다윗의 기도도 정말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주는 기도입니다.
8장은 다윗의 형통하는 삶
9장은 다윗왕이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을 챙기는 장면
10장은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그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궤를 다윗성으로 옮기는 내용입니다.
이때 다윗의 기뻐하는 모습, 춤을 추는 모습이 나오는 장면입니다.
배경은 이렇습니다.
사무엘상 7장에 보면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언약궤가 두 암소에 실려 벧세메스로 왔다가 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에 옮겨져 방치되었습니다. 20년 동안 아비나답의 아들 엘리아살이 법궤를 지켰습니다..
그러나 이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이 살아났습니다..
하지만 누구 하나 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에 방치된 하나님의 법궤를 성막에 안치하고 예루살렘으로 모시고 올 생각을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약 45여년이 지난 뒤 사울 왕을 이어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된 다윗(B.C 1005)은 기럇여아림에 방치되어 있는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시고 올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5년 후( B.C 1005) 다윗이 그토록 사모하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시고 오게 되었습니다.. 이날 다윗은 너무나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법궤를 수레에 싣고 나곤의 타작 마당을 지날때에 갑자기 소가 놀라 뛰자 웃사가 급히 손으로 법궤를 붙들었다가 그 자리에서 죽는 불상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가드 사람 오벳에돔의 집에 법궤를 3개월간 모셔 두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오벳에돔과 온 집에 큰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벳에돔의 집이 복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다윗은 다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기로 하였습니다..
바로 그날 다윗왕은 모든 체통을 벗어버리고 너무 기뻐서 춤을 춘 것입니다.
삼하 6:14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이 얼마나 기뻤으면 속이 다비치는 옷을 입은 상태인것도 모르고 춤을 추며 기뻐하였을까요?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도 못할 정도로 왕의 체통도 잊고서 그렇게 기뻐하였을까요?
오늘 두 가지로 다윗의 춤추는 기쁨을 헤아려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 모두가 이러한 은혜를 경험하시길 축원드립니다.
첫째로 다윗의 춤을 추는 모습은 하나님의 대한 다윗의 깊은 사랑때문입니다.
깊은 사랑이 있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이겨낼 것입니다.
깊은 사랑이 있다면 우리는 다시 슬픔이 변하여 춤을 추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깊은 사랑이라고 하면 부모님의 사랑을 들 수 있습니다.
보통 맹목적인 부모님의 사랑을 받은 자식은 더 부모를 챙기는 것을 봅니다.
요새 문제가 많은 부모들도 많은데 대부분이 부모의 깊은 사랑을 못받은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부모의 깊은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부모님에게도 그리고 자식들에게도 그리고 주변 사람에게도 그 사랑을 쏟아놓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더 깊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한량이 없고 깊고 넓습니다. 우리 인생의 전체적으로 깔려 있습니다.
그 사랑을 경험한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오자 달려나가 제사를 드리고 춤을 추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보자 지난세월 주마간산처럼 생각이 스칩니다.
골리앗을 이기고 사울왕의 사위가 될 정도로 높아지는가 싶었는데 느닷없이 장인 어른이 권력을 위해 죽이려고 달려 들었습니다.
도망다니면서 얼마나 서럽고 외로웠을까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그런데 지난 세월동안 산속을 헤메고 광야를 헤매고 심지어는 적국인 블레셋으로 망명하여 목숨을 부지할때도 지키시고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자신의 지혜로 그리고 자신의 꾀로 버틴 것이 아니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도망다닐때는 상상도 못했던 온 이스라엘의 왕의 되어 다윗성에 거주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보자 너무 감사했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그 은혜를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며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까지 내가 잘해서 살아온 것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사 여기까지 인도하신 것입니다.
보호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구원의 은혜를 주셔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내 힘, 내 자랑, 내 교만을 조금만 버려도 눈에 선하게 보입니다.
주님 없었으면 살수 없었던 지난 시간이었고 지난 세월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시 말씀앞에 그리고 하나님의 법궤앞에서 지난 세월을 지키시고 우리들 삶의 장소인 이 성에 머물게 하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기쁨을 되찾으시길 축원드립니다.
둘째로 다윗의 춤추는 모습은 미래를 확신하는 감격과 기쁨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의 보좌이며 스스로를 나타내시는 장소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보일때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더불어 하나님의 권능과 통치가 이루어질 때 다윗은 승리와 번성을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그 확신은 기쁨으로 감격으로 그리고 춤을 바뀌었던 것입니다.
삼하 7장에도 보면 나단 선지자가 이렇게 다윗왕에게 말합니다.
삼하 7:3 나단이 왕께 아뢰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하니라
그리고 삼하 7: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면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자녀손들은 영원히 견고하게 될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인생의 구름이 하늘에 머물러 있지만 하나님의 영광과 은총은 저 구름 너머의 높은 해와 같이 영원히 우리에게 임하실 것입니다.
- 여호수아는 지도자로 설 때에 미래에 대한 확신의 음성을 듣습니다.
수 1: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 다윗은 어린 나이에 골리앗 장군을 상대할 때 이러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삼상 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 사도바울도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낙심하고 두려워 떤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행 18: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행 18: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그리고 사도바울은 다시 복음전도의 춤을 추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과 삶의 축복을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모든 어두움과 사망의 권세를 깨고 살아나셔서 부활의 은총을 선물하셨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하나님의 임재로 날마다 감격스럽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옷 입혀 주실 것입니다.
혹시 지금 초라하다고 생각하시다거나 커다란 담장 밑에서 망연자실 무너져 있으십니까?
하나님의 법궤를 가슴의 보좌에 모시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심령 깊은 곳에 새기십시오 그리고 주의 보좌앞에 나아오십시오
신명기에 하나님의 약속의 땅은 이렇다고 말씀하십니다.
신 11: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존전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모든 두려움과 슬픔을 기쁨과 춤으로 바꾸십시오
어린 아이가 춤을 출때는 부모앞에서입니다. 오늘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인생의 슬픔을 기쁨의 춤으로 바꾸시길 기도드립니다.
나니아 연대기 등의 유명한 영화의 원 저자인 C.S 루이스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인간의 만족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남으로써만 얻게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써 참된 기쁨을 얻습니다..”
주께 가까이 날 이끄소서
간절히 주님만을 원합니다.
채워주소서 주의 사랑을
진정한 찬양 드릴 수 있도록
목마른 나의 영혼 주를 부르니
나의 맘 만져 주소서
주님만을 원합니다. 더 원합니다..
나의 맘 만져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