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오실 때까지 판단하지 마세요_고전4:1-5_12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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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오실 때까지 판단하지 마세요_고전4:1-5_12월27일

성문Shalom 0 5505 0

올해 마지막 주일도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의 확산은 사회의 모든 활력을 앗아가 버렸습니다. 전염병의 공포는 한 해 동안 모든 사람들에게 죽음, 질고, 실직, 휴직, 휴교, 파산 등의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고독, 우울증, 삶의 회의, 자살충동 등 내면적인 어두움이 짙게 깔린 시간이었습니다. 인간의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습니다. 사람관계에 있어서 서로 비난과 편견으로 인한 오해, 매도 등으로 마음의 평안이 깨지고 항상 전쟁의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 사회가 성숙하였다는 것은 편견과 비난이 상식과 이해 그리고 배려로 상쇄되고 평안한 정서가 근저에 흐르고 있는 사회입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삶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세속의 물결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이해와 사랑으로 주변을 능히 평안하게 이끌 수 있는 사명의 사람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돌이켜보면 올해는 유난히도 힘든 시간들이었는데 정치 경제적으로 소용돌이치고 있고 지금도 내가 맞다 니가 틀리다고들 강변하는 사회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역시 힘들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일 년 동안 한국교회가 잘못한 것에 비해 모든 교회가 많은 부분 매도당하고 제약의 대상이 되고 비난의 화살이 맞을 때, 변명도 하고 분노의 마음이 일어 행동도 하고 싶은 충동도 느꼈지만 모든 판단을 중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실 이러한 고통의 시간들이 길어지니까 하나님에게 따지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렇게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죽어나가는데 보고만 있느냐고 하나님은 지금 뭐하고 계시느냐고.

이렇게 오래 교회본당에서 예배를 못 드리고 성탄절마저도 온라인으로 드리게 되었으니 하나님이 적극 관여해서 멈추어 주시면 좋겠다는 것이지요.

 

저는 마지막 주일 이러한 모든 일련의 판단을 잠깐 멈추었으면 하고 제안을 드립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판단은

세속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고

단기적인 판단은 장기적인 판단에 묻히고 근시안적으로 낮은 수준의 판단이 되고

잘못된 판단을 하고 나면 큰 낭패를 보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판단으로 오해를 낳은 예화를 한번 드린 적이 있는데 어떤 목사님이 각색을 다시해서 올렸습니다. 그 스토리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미국 회사에 다니는 한 여자 집사님은 업무적으로 비행기를 많이 타는 분입니다. 어느 날 출장을 가는데 비행기가 연착되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흔하게 있는 일이라 느긋하게 마음먹고 다리를 쭉 뻗고 핸드백에서 책을 꺼내는데 마침 핸드백 안에 치즈크래커가 들어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보면서 치즈크래커를 먹으려고 하는데 한 신사가 옆에 와서 앉더랍니다. 앉자마자 그 신사는 여성의 치즈크래커 하나를 집어 먹더랍니다.

이상한 사람 다 있다.’ 그 다음부터는 신경이 책으로 안가고 자꾸만 옆의 신사에게 가는 것이었지요.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생각하고 여성은 두 번째 것을 먹었답니다. 그랬더니 신사는 세 번째 것을 먹더래요.

또 양해도 구하지 않고 먹어버린 것이지요. 그래서 여성도 네 번째 것을 먹었습니다. 이제 하나밖에 안 남았습니다. 여성은 자꾸 신경이 쓰여서 책은 읽지 않고 신사만 힐끗 힐끗 보게 되었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섯 번째 것을 낼름 신사가 집더랍니다. 그러더니 반을 잘라 반쪽은 그대로 두고 나머지 반쪽을 먹더래요. 여성은 속으로 열 받았지요.

너무나 괘씸한 생각이 들었지만 신사에게 싸움을 걸 순 없으니 불쾌한 마음을 전하기위해서 과자 반쪽을 바닥에다가 탁 팽개쳐 버렸답니다.

얼마 후, 출발한다는 방송을 했고 여성은 비행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비행기에 타고나서도 화가 가라앉지 않더랍니다. ‘무례한 사람 같으니라고.’ 시간이 조금 흐르고 진정이 되고나서 여성은 핸드백을 열었답니다. 그런데 아뿔싸! 자기 치즈크래커가 핸드백 안에 그대로 들어있었던 것이지요,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그러자 모든 상황이 복기가 되면서 그 신사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열 받아서 그 인간, 나쁜 놈 하다가 ! 멋있는 신사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미안해서 어쩔줄 몰랐다고 합니다. 오히려 자기가 그 신사에게 큰 결례를 범한 것을 나중에야 깨달은 것이지요.

 

실제로 우리의 판단은 살면서 이러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성급한 판단, 편견으로 보는 판단, 남의 눈으로 보는 판단 등 살면서 많은 실수와 황당함을 경험하고 삽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다른데, 자세히 들어보면 다른데, 방송에서 하는 이야기, 남에게 주워들은 이야기로 상대방을 판단해서 미안하고 실수를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코로나19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잘못 생각하고 판단할 수도 있기에 이제 우리는 사도바울의 고백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현대어 성경으로 다시 한 번 3-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고전4:3 그런데 나는 어땠습니까? 충실한 일꾼답게 일해왔다고 여러분은 보십니까? 그러나 여러 분이 어떻게 생각하든 또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습니다. 나 자신의 판단도 믿지 않습니다.

고전4:4 내 양심에 조금도 거리끼는 일이 없다고 해서 내가 죄 없는 사람이라고 내세울 생각도 없습니다. 나를 판단하시는 분은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고전4:5 그러므로 주께서 오시기 전에 어떤 사람이 좋은 일꾼이냐 하는 것을 성급하게 결론짓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주께서 오시면 모든 것을 밝히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의 마음 깊은 곳까지 있는 그대로 속속들이 드러나 비로소 모든 사람이 왜 우리가 주님 의 일을 해왔는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각자 한 일에 따 라 칭찬을 하실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사람들의 판단도 그리고 내 자신의 판단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깊은 인생의 지혜를 가지게 된 신앙의 사람입니까?

세상 사람들과 이러한 깨달음을 나누면서 판단의 오류에서 벗어나도록 돕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화위복이란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변수가 너무 많아서 살다보면 복이 화로 바뀔 수 있고 불행이 복으로 바뀔 수도 있으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너무 자만하지도 말고 살라고 교훈하는 인생의 격언이지요.

또 새옹지마라는 말도 있습니다. 키우던 말이 도망을 가고 어느 날 준마가 되어서 돌아오고 그 말을 타던 아들이 낙마하여 발을 다치고 그런데 발을 크게 다친 일로 인하여 자식이 전쟁에 안 나가게 되어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너무 세상사에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정말 살면서 너무 극단적인 판단이나 주장이나 선택을 조심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며 교훈을 줍니다.

복을 따지고 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까지, 주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판단하지 말고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복을 기다리고 좋은 상황으로 바뀔 것을 기대하는 삶이 아니라 판단하지 말고 남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고 사랑과 배려와 격려로 삶의 사명을 잘 감당하며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는 세속의 사람과 같은 가치관으로 삶의 방식으로 살지 말고 주님의 일꾼으로 이 한 많은 세상에 빛을 비추고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살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전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고전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어려운 시대를 살면서 마음을 쏟아야 할 것은 세태의 흐름과 시대 정신에 마음을 빼앗길 것이 아니라 더욱 마음을 다하여 주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하고 충성 하는 데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내 생각, 내 판단, 코로나19로 야기된 모든 상황들을 평가하는 내 생각을 멈추시고 한 해를 마무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주님의 말씀이 온전히 들릴 때까지 우리는 더욱 주님의 일꾼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에 더욱 충성해야 할까요?

 

첫째는 남을 격려하고 칭찬하십시오.

이 어려운 시대에 남을 높이고 인정하는 삶이 예수님께 충성하는 삶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가 다 장점이 있습니다. 단점이 가릴 때도 장점은 늘 있기 마련입니다. 좋은 점, 잘한 점을 생각하면서 판단하지 말고 칭찬하고 격려하며 사는 것이 이 어려운 시대를 함께 이기는 비결입니다. 격려만큼 우리의 삶에서 에너지를 창출하는 원동력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존 맥스웰이라는 리더십의 대가인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격려는 인재 개발에 있어서 꼭 필요하다"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았지만 어머니에게 격려 받고 칭찬 받으며 노래 부르던 젊은이가 어느 날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가 되었는데, 그의 이름이 바로 엔리코 카루소입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학교에서는 도저히 정규 교육을 못 받을 정도였는데 그의 어머니는 남들이 갖지 못한 에디슨만의 특별한 면을 발견하여 그것을 날마다 격려해주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의 천재성이 드러나고 인정받기 전까지 어머니의 격려와 칭찬과 인정이 없었다면 오늘 날의 그의 이름은 회자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를 지적하는데만 관심을 쓰는 이때에 우리 주변과 사람들에게 만큼은 문제를 지적하지 마시고 격려하며 칭찬하시면서 세워주시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삶에 충성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둘째로 남을 용납하시고 용서하는 삶에 충성을 다하는 삶입니다.

남을 용서하고 용납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내 마음이 망가지고 내 심령이 바닥을 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강조하시지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베드로가 묻습니다.

18: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 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18: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 라

 

이것은 연습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결국은 용서하기까지 가라는 말씀입니다.

1) 내가 살기 위해서이고

2) 기적이 나타나서 상대방이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기 위함이고

3) 상대방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은총을 얻기 위함입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판단하는 일에 집중하는 마음을 멈추고 주님의 일꾼으로 원하시는 일에 충성해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 때 여러 가지 판단을 할 수 있고 여러 감정이 교차되는 순간이었지만 모든 인간의 판단을 멈추고 아침 일찍 일어나 모리아 산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믿음의 역사를 믿음의 조상으로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리아도 천사의 수태고지를 듣고 앞으로 전개될 여러 가지 판단을 멈추고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1: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그리고 마리아는 결국 인류 구원의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통로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올 한해 우리는 정말 많은 생각을 하며 살았습니다. 수많은 감정의 교차가 생겼었습니다. 모든 판단과 편견을 접고 주님오실 때까지 주님의 판단을 기다리십시다. 그리고 새해에는 칭찬과 격려로 용서와 용납으로 한해를 시작하게 되시길 진심으로 축원 드립니다.

 

우리 같이 주님 말씀하시면 찬양하시겠습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 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다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뜻하신 그곳에 나 있기 원합니다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리니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주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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