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순교자 스데반 - 한 알의 밀알_행7:54-60_9월 12일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 - 한 알의 밀알
본문 : 사도행전 7: 54 – 60절
기억될 것인가 잊혀질 것인가?
우리의 시간은 정말 화살과 같이 지나갑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양궁선수들의 장면을 보니 화살 시위를 당기면 순식간에 과녁에 꽂히는데 그 속도는 무려 시속 240km/h입니다.
얼마나 빠른지요 .....
우리의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새 가을이 되고 어느새 코로나 시대가 두 해에 이르고 있습니다.
금방 1년, 2년이 지나가버리고 있습니다.
시90:10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시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이렇게 빠르게 지나가는데 동시에 우리들의 수고와 눈물은 겹겹히 싸여가고들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의 우리의 삶도 중요한 인생의 흔적입니다.
빨리 지나가기를 학수고대하지만 지금의 우리의 삶도 소중한 미래의 자산이 되는 것임을 동시에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버거운 짐과 불안한 미래를 안고 통제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삶은 기억될 것인가 아니면 잊혀질 것인가?
짜증과 분노로 지낼 것인가 아니면 선한 영향력을 향기로 품어낼 것인가 ?
환란속에 믿음이 더 견고해질 것인가 아니면 무너져 버릴 것인가 ?
가끔씩은 주님 앞에 서서 자신에게 물어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4차 말씀상고대행진 2번째 주일입니다.
이번 주에 읽으실 말씀은 사도행전 7장부터 12장까지의 말씀입니다.
- 7장은 최초의 평신도 사역자 스데반 집사의 설교와 순교의 내용입니다.
- 8장은 사울의 교회박해와 사마리아까지 복음이 확장되는 내용입니다.
- 9장은 사울이 회심하여 기독교인이 되고 배드로가 예수님처럼 기적을 행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 10장은 베드로가 관념을 깨고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 고넬료집에 가서 설교하고 세례를 베푸는 장면입니다.
- 11장은 사마리아를 넘어 북쪽에 안디옥교회가 세워지고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는 장면입니다.
- 12장은 사도로서는 최초로 순교를 당하는 야고보의 이야기와 감옥에 갇힌 베드로가 천사의 인도로 빠져 나오는 장면이 나옵니다.
오늘 말씀은 기독교 최초의 평신도 지도자 스데반 집사의 순교내용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말씀을 가르치는데 서기관들과 유대인들이 거짓증언하며 성전모독죄와 율법을 범한 죄로 스데반을 공의회에 세웁니다.
그러나 스데반집사는 판결자에 해당되는 대제사장에게 복음을 설명합니다.
스데반은 살기가 등등한 공회원들 앞에서 자신을 변론하여 살길을 찾아야 하는데 구약이야기와 예수님 이야기를 일목요연하게 7장 2절부터 53절까지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핵심 내용은 이렇습니다.
1)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며 족장시대, 애굽시대 그리고 모세를 통한 출애굽시대가 열린 과정을 설명합니다.
2)광야40년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시작되었고 다윗으로부터 시작된 예루살렘 성전 1000년 시기를 전합니다. 특히 왕정 500년 동안 우상 숭배와 성전숭배라는 잘못된 신앙의 모습을 지적합니다.
3)이 모든 것을 바로세우시고 새 시대를 여실 구약에 예고된 대로 오실 의인, 메시야 누구인가?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그리스도다
그러자 사람들은 분노하였고 이를 갈았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결국은 스데반 집사를 성밖으로 내치고 돌로쳐서 죽이는 잔인한 장면이 기록되어져 나오는데 그 장면이 오늘 읽으신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때 스데반의 순교의 죽음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순간이 됩니다.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죽자 본격적인 핍박이 시작되고 예루살렘교회에서 성도들이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유다의 온 지역으로 그리고 북쪽 사마리아로 더 나아가서 수리아 안디옥으로 흩어져 교회가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그야말로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명령인 복음전파의 1장 8절의 말씀이 시작되는 단초가 되는 것입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지난 역사를 보면 기독교의 시작은 순교의 역사가 동반되어 이어지는 것을 봅니다.
- 로마의 카타콤베에 가면 순교자 세바스티안의 기념비가 있습니다. 군인이 예수님을 믿었다는 이유로 수없는 화살을 맞고 몽둥이로 때려서 하수구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은 큰 영향을 미칩니다.
- 우리나라의 최초순교자도 그렇게 기억됩니다. 1866년 27살의 토마스 선교사가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올라오다가 대동강변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그때 쪽복음을 전하며 고요히 순교합니다. 이때 토마스선교사의 목을 베었던 박춘권은 그 마지막 모습에 충격을 받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고 안주교회 영수가 되었고 장사포에서 성경을 받은 소년 홍신길, 석정호에서 성경을 받은 김영섭과 김종권, 만경대에서 성서를 받은 최치량등이 후에 강서와 평양 판동교회 창설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스데반 선교사는 한 알의 밀알처럼 그렇게 삶의 영향력을 뿜어내었기에 비록 빨리 순교하였지만 복음은 확장되고 많은 교회가 온 세계에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어려운 시대에 스데반 집사의 진정한 신앙적인 삶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온 세상을 퍼져 나갔던 평신도 지도자 스데반집사의 영향은 죽었기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닙니다. 그가 분노하는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보여주었던 그 믿음의 내용이 복음의 역사를 이루어가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 믿음의 내용이 순교의 모습으로 이어졌고 결국 복음의 진리가 전세계로 전파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전염병의 확산의 시기에 우리가 간직하고 보여주어야 할 믿음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스데반 집사의 순교의 장면을 통해 2가지의 영향력을 품으시길 축원드립니다.
그래야 우리의 믿음생활의 미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늘을 바라보는 천국의 소망이 분명했습니다.
행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이때 상황을 보십시오
스데반은 모든 것이 평안할 때 하늘을 쳐다본 것이 아닙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 서기관들이 분노하고 이를 가는 험악한 상황에서 스데반은 사람들을 보지 않았습니다. 극단적인 환경을 보지 않았습니다.
기가 눌리거나 의기 소침하지도 않았습니다.
스데반은 이때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영원한 하늘나라에 대한 확신과 소망이 분명하였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힘들면 대부분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십니다.
주변사람들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립니다. 옆과 앞과 아래를 쳐다봅니다. 사방팔방 두리번 거리고 낙심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내용이 분명한 사람은 머리를 듭니다. 하늘을 쳐다 보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쳐다보는 것입니다.
독일의 마틴 루터는 보름스 제국의회의 소환장을 받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도망하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얀후스는 종교개혁가들이 붙잡힌 즉시 처형되곤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이렇게 말합니다. “보름스 도시의 지붕 기왓장만큼이나 많은 마귀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해도 나는 그곳에 가겠다”
그리고 갑니다. 트리에르 대주교가 신문을 합니다. 이 모든 주장과 책을 철회하라고 할때에 다음날인 1521년 4월 18일 루터는 황제앞에서 담대히 대답합니다.
교황과 교회의 권위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얻는다는 사실을 철회하지 않겠습니다.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주여 내가 여기있나이다 나를 도우소서 ....
절박하고 가장 공포스러운 시간에 루터는 하늘을 우러러 예수님을 본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삶을 살면서 사람들은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독일의 문학가 괴테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에 의해 모양과 형태가 만들어진다”
우리가 사모하는 것에 따라 롯처럼 비옥하고 물좋은 소돔과 고모라를 택할수 있고 아무것도 없지만 하나님의 인도를 믿고 광야를 택한 아브라함처럼 우리는 믿고 보는대로 택하기 마련입니다.
땅만 본다면 땅의 선택을 하게 되고 하늘을 본다면 하늘의 선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스데반이 말합니다.
행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그리고 얼마나 주님을 사모하고 바랬는데 예수님처럼 순교하였습니다.
행7: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이러한 은혜가 경험되시길 기도합니다. 이때 우리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이 변하고 선한 영향력이 나타나게 되실 것입니다.
둘째로 용서하고 용납하는 내용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행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우리는 흔히 채우기 위한 기도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카지노나 복권을 사는 줄에서 제일 기도가 세게 나오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기도의 많은 부분을 이루어 주옵소서 이루어 주옵소서 간절히 기도할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용납의 기도, 용서의 기도는 참으로 적습니다. 잘 못합니다.
요즘은 더욱 감정의 상처가 많은 것을 봅니다.
예민해지고 자기 감정을 스스로 다지지 못하고들 살아갑니다. 눈과 귀에 조금만 거슬려도 싸우려고 덤벼들고 보복하려고 밤을 샙니다.
용서와 용납은 생각할 마음의 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아이부터 시작해서 연세드신 분들까지 망가지고 헝클어지는 것을 자주 봅니다.
미움과 원망과 증오로 밤잠을 못이루고 사는 것을 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미워하고 보복한다고 감정이 풀릴 것 같습니까?
더 완악해지고 더 고집스러워지고 더 마음의 상처가 깊어지는 것을 봅니다.
해결하려면 용서하는 마음, 용서가 안되면 용납하는 마음, 그것도 안되면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심령이 평안해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평안해져야 죽을때도 자는 것처럼 죽는 것입니다.
- 토마스 선교사는 대동강변에서 죽을 때 눈을 감더니 고요히 뭐라 중얼중얼거렸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스데반의 이 기도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여기에 충격을 입고 망나니 박춘권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것입니다.
- 오늘 스데반이 용서의 기도를 하면 순교할때에 옆에 있던 사울은 충격을 받습니다. 돌을 던지는 우리를 용서해달라니 ...
그리고 변하여 사도바울이 되고 로마까지 복음을 전하는 대 사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모습보다 믿음의 내용이 중요합니다.
이 답답한 시대에 내용있는 믿음생활을 하면 미래가 열리고 하늘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 견고히 지킨 우리의 믿음을 통해 많은 열매가 우리의 인생위에 맺어지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삶이란 찬양을 같이 드리시겠습니다.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나의 말엔 주가 주신 진리로
나의 눈에 주의 눈물 채워 주소서
내 입술에 찬양의 향기가 두 손에는 주를 닮은 섬김이
나의 삶에 주의 흔적 남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 하리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에게 순교자의 삶을 사는 이에게
조롱하는 소리와 세상 유혹 속에도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