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향-가정, 영혼의 고향–교회_엡3:8-13_1월30일
삶의 고향-가정, 영혼의 고향–교회
본문: 에베소서 3: 8-13절
이제 3일간 2022년 설 명절을 맞이합니다
각 가정에서 자녀들과 친척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 편안한 담소의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지난 세월을 보면 코로나가 우리의 삶의 일상적인 변화를 급격하게 가져왔습니다
지난 2년간 명절때마다 자제와 조심을 당부받아왔습니다 이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풍성한 설명절의 대이동 모습은 차분해졌고 가족 모임도 축소되어 만나게끔되었습니다 그래서 대가족 개념의 가족 개념은 약해지고 소규모 가족의 중요성은 더욱 켜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남자들도 집에 있는 시간이 더 늘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여성들이 가정을 챙겨야하는 피로감은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합니다
저는 자주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계획하시고 조직하신 곳은 가정과 교회입니다
다른 인간이 만든 조직과 기관보다 더 소중한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이 2곳을 통하여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시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땅을 사는 동안 천국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곳은 가정이고 교회뿐입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위로받을 수 없을 때에 가정과 교회가 건강하다면 위로받고 용서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살다가 무너지고 어두움에 갇혀 있을 때에 눈을 들 수 있는 곳, 찾아가고 싶은 곳 또한 가정이고 교회뿐인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마귀가 가장 파괴하고 싶은 곳이 가정과 교회이고 그 이유때문이라도 더욱 소중히 우리는 가정과 교회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가정은 무엇입니까? 가정의 핵심은 사람이기보다는 엄마의 품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슬프지만 경우에 따라서 그냥 마음 깊은 곳에서 터지는 슬픔은 못느낀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막상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진짜 고아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잔소리, 어머니하고의 안좋은 추억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작 삶이 고달프고 외로울때 안기고 싶은 곳이 있다면 어릴 때 안겼던 어머니의 품인 것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을 보면 10개월간의 임신 , 해산의 고통, 산후 우울증 , 육아의 헌신 ... 정말 한 아이의 전체를 덮는 희생과 진액을 뽑는 엄마의 땀과 수고가 한 사람을 다 덮고 마는 것입니다
물론 남자들은 밖에 나가서 가정을 지키느라 자존심, 긴장, 눈물을 그리고 심지어는 비굴함을 느끼면서까지도 감당하지만 한 아이의 세계는 보통은 옆에 있는 엄마를 통해 펼쳐지고 발전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상한 부모도 많지만 그럼에도 모든 사람은 여전히 엄마의 품을 그리고 엄마의 따듯함을 그리워하며 사는 것입니다
엄마의 품은 나의 삶의 시작이었고 엄마의 태는 나의 생명줄이였기에 지금 현재 살아계시는 어머니가 있든지 없든지 우리는 늘 그리움과 애틋함을 가정, 즉 엄마의 품에서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번 명절에도 가족들이 모이든 안모이든 홀로 살든지 같이 모이든지간에 엄마의 품으로 들어가셔서 삶의 고단함을 내려놓으시고 그 따뜻한 온기로 몸을 덥히시는 시간들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또 다른 천국 경험을 선물하셨는데 그곳이 바로 가정 다음으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우리 영혼의 고향이고 하나님의 품이고 예수님께서 핏값을 치르시고 사신 홈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고유의 영혼이 있습니다
이 영혼은 육신의 노력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우주보다 넓은 공간입니다
세상의 많은 부귀영화와 산해 진미도 우리의 영혼을 채울수 없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만일 부귀영화가 내 영혼을 만족시킨다면 왜 사람들이 중독에 빠지고 마약과 약물을 붙잡고 살아가게 될까요?
그것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붙잡을수록 영혼은 더 파리해지고 텅 비어가기 때문인 것입니다 외로움과 고독함 그리고 쓸쓸함이 깃들면 영혼이 텅비어져서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어지고 사람이 옆에 있어도 , 많은 음식을 앞에 두고도 가치를 못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살면서 왜 이렇게 허무할까? 왜 이렇게 채워도 채워도 허전할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 영혼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배고프면 사람으로도 안되고 맛있는 음식으로도 안되고 여행으로도 해결이 안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의 영혼을 영과 혼으로도 구분하는데
- 혼적인 영역은 1)지식, 2)감정,3)의지 라고 한다면
- 영적인 영역은 한단계 위로
직관 - 알아버리는 지성,
소통 – 교류되는 감정,
양심 – 평가하고 진단하는 기능입니다
영적인 영역은 시간을 사용할 때 카이로스를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지식은 배우고 단계를 올라서고 하는 크로로스의 시간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직관 통찰 같은 영의 기능은 그냥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이다 직관이 발달된 사람은 더 빨리 알수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안다는 것도 바로 이러한 영의 기능으로 우리는 주님을 알게 되고 만나게 되고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 설명드릴수 없지만 사람은 영이 만족해야하고 발달해야 하고 성숙해야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그럼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보혈의 피를 흘리시고 사신 성도들의 모임 에클레시아이지요
그럼으로 교회는 바로 우리 영혼의 고향이고 하나님 아버지의 품이 됩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다투기도 하고 모임을 하면서 상처도 받고 심지어는 절망스러운 상태도 되는 교회가 있긴 하지만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한 사람들의 공동체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덮는 희생과 진액을 뽑는 땀과 수고로 세워진 곳이기에 우리는 교회에서 고독함을 극복하게 되고 갈 바를 알지 못할 때에 방향을 잡고 영혼의 만족함으로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에베소서는 사도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때에 기록한 서신입니다
옥중서신이라고 해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그리고 빌레몬서입니다
특히 에베소는 지금의 터키 서쪽 아래 지방에 있는 에페소스 라는 도시입니다
당시에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고 여기 저기로 흩어져서 교회를 세우면서 복음은 확산되어져 갔는데 그 어려움과 고난속에서 세상의 소망인 교회를 설명하고 교회에서의 삶에 관하여 자세히 기록한 책이 바로 에베소서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가르치시는 우리 영혼의 고향인 주님의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첫째는 우리 모두 주님안에서 굳게 연합된 함께 하는 공동체입니다
현대어)엡3:10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늘에 있는 지배자들에게 하나님의 모든 가족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가릴 것없이 하나가 되어 교회 안에서 굳게 연합된 것을 보이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완전한 지혜를 나타내려 하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가족이 된 것입니다 영적인 가족말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모임도 조직도 이렇게 전 세대를 아울러 함께 하는 모임은 없습니다 그 어떤 그릅도 이렇게 다양한 계층을 반영하여 모인 곳도 없습니다
도저히 하나가 될수 없는 사람들인데 배움도 틀리고 사는 모습도 다르고 고향도 다 다른데 하나되어 모이는 것이지요 매주 말입니다 봉사하면서 말입니다 서로를 격려하면서 말입니다
왜일까요? 왜냐하면 주님께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믿고자 모였기 때문입니다
골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오 죽은 자들 가운에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다시 말하면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시고 인간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성문교회 이영익목사도 머리가 아닙니다 장로님들도 머리가 아니고요 권사님들도 머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머리행세를 하면 그때부터 하나님의 완전한 지혜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끄시고 주님이 만들어 가시기에 우리는 교회안에서 하나님의 품을 느끼고 교회를 영혼의 고향으로 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이 지칠 때, 즉 잘되도 지치고 고되도 지치는 것이 우리의 삶인데 주님의 품안인 교회에 와서 안식을 얻고 휴식을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영혼의 안식처가 되시는 주님의 품에 안기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둘째로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담대함과 확신을 영혼에 채우는 공동체입니다
엡3: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담대함이 연료통이라면 확신이란 연료가 됩니다
차가 움직이려면 가솔린이 필요하듯이 인생의 여행과 영혼의 발걸음을 위해서는 반드시 확신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길을 걸을 때에 항상 그 대열 중심에서 함께 움직였던 것은 성막이었고 법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과 율례를 중심에 두고 소망의 나라, 가나안 땅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언제끝날지 모르는 이 고난의 여정, 그속에서 그들에게 축복은 환경이 아니었고 사람이 아니었고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고 하나님의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반드시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 반드시 치유하시는 하나님, 반드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담대하게 전진하여 나갔던 것입니다
확신을 심령에 담아서 움직이는 모습! 이것이 바로 믿음의 담대함입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이 안된다고 할 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가자고 외치는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골리앗 장군 앞에서 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나아갔던 다윗처럼 전진하는 담대함이 필요한 것입니다
대적하는 유대권력자들의 협박앞에서 하나님을 위하랴 사람을 위하랴 담대하게 외치는 확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행4: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미국의 시카고에 있는 어떤 목사님이 백인과 흑인이 정말 하나가 되는 교회를 만들고 싶어서 이상적인 교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흑인과 백인들이 잘 어울릴 수 있는 교회문화를 위해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근데 어른들은 어느정도 되기 시작했는데, 아이들이 안섞이는 겁니다.
교회 버스가 주일날 올 때마다 버스를 타면 백인아이, 흑인아이, 쫙 갈라서 앉는 거에요. 주일학교 교사였던 존 리드라는 분이 마음이 속상해서 한번은 버스에 탄 아이들을 보고, 쪽 갈라져서 앉은 아이들을 보고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자, 너희들 백인아이들 너희들 피부색깔이 뭐냐?" 그러니까 "하얀 색깔이요(White)!" 그러자 이렇게 애기했대요. "뭘 하예? 자세히 보라고, 너희들도 까만 것이 많아! 자세히 보라고, 더 자세히! 그러니까 너희들은 하얀 것이 아니라 회색이야 회색! 알았니? 다시 묻는다 너희들 색깔이 뭐냐?" 그러니까 "회색이요"라고 대답하더래요.
선생님은 또 흑인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들 피부색깔이 뭐니?" "검은색이요(Black)!" 그래요. "가만히 봐, 너희들 실제로 그렇게 까만 것만은 아니야, 자세히 봐! 너희들도 회색이야 회색! 자, 너희들 색깔 뭐냐?" "회색이요"
"자, 그러면 우리 색깔 이제부터 하나다, 너희들 다 무슨 색깔이야?" 그러니까 다같이 "회색이요!" 라고 애들이 대답했어요.
그 다음 주일교회 버스를 타게 되었을 때 보니까, 백인 일진쯤 되는 아이 하나가 갑자기 들어오더니 교통정리를 하더랍니다.
뭐라고 말하는고 하니 "야! 밝은 회색 이쪽으로!, 어두운 회색 이쪽으로!"
인간의 편견을 극복한다는 것이 쉽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자꾸만 하나가 안되니까, 흑인과 백인이 제일 많이 한 것이 계속 캠프를 같이 갔던 것이랍니다 같이 살아보니까 같이 밥먹다보니 모두 예수님 같이 사랑하거든요. 같이 기도하거든요 ...그러면서 점차 흑백의 그러한 모든 것들이 극복되기 시작하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교회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연합되어 함께 하는 공동체" “인생의 담대함과 확신을 채워가는 공동체” 인 것입니다
싸워도 함께 해야하고 안맞아도 함께 하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완전한 지혜가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명절기간동안 가정에서 위로받으시고
말씀으로 담대해지시길 경험하시길 축원드립니다
주 은혜임을 찬양하시겠습니다
주 나의 모습 보네 상한 나의 맘 보시네
주 나의 눈물 아네 홀로 울던 맘 아시네
주 사랑 내게 있네 그 사랑이 날 채우네
주 은혜 내게 있네 그 은혜로 날 세우네
세상소망 다 사라져가도 주의 사랑은 끝이 없으니
살아가는 이 모든 순간이 주 은혜임을 나는 믿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