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따르기 1. 확증하라_행2:40-42_1월9일
비전따르기 1. 확증하라
사도행전 2:40 – 42절
오늘은 새해 둘째 주일입니다.
새로운 시간을 설정하고 좋은 일들을 기대하지만 그런 일들이 일어날 것에 대한 확신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막연하게 한 해를 시작하십니까?
저는 오늘 하늘의 충만한 영광과 능력이 임하여서 주님께서 새로운 일들을 시작하실 것이라는 확신속에서 한 해가 시작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7: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마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럼으로 분명한 기대와 간절한 소망으로 한 해를 시작하셔서 바랍니다.
저는 지난주에 예수님의 비전을 따라 살기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전을 따라 사는 삶이 얼마나 축복된 삶이고 영광스러운 삶인지를 말씀드리며 예수님의 비전을 따라 살려면 2가지 전제 조건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1)예수 이름의 능력을 믿으셔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길리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이름을 붙잡고 사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성령님 체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교생활이 신앙생활이 되려면 즉 ,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할수 있고 예수님을 내 인생의 구세주라고 할수 있는 고백은 성령님께서 알려주시고 깨닫게 하실 때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부터 3주동안 예수님의 비전을 따르는 실천에 관하여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비전따르기 첫 번째로 확증하라입니다.
행2: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표준새번역) 행2:40 베드로는 이 밖에도 많은 말로 증언하고, 잘못된 세대로부터 구원을 받으라고 그들에게 권하였다.
여기서 확증하다라는 말씀은 여러 가지 말로 증언하다 라는 의미입니다.
즉 예수님에 대하여 말하려면 분명하고 여러 가지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확증이란 단어는 굉장히 신앙생활에 있어서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확증과 확증편향을 구별할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요새 한국기독교를 사람들이 폄하할 때 독선적이다 이율배반적이다 광신적이다라는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심지어는 교회다니는 분들도 너무빠지지 마라 너무 열심히 하면 못빠져 나온다 라고 하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확증편향의 두려움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확증편향이란 쉽게 말하면, '보고 싶은 것만, 듣고 싶은 것만, 믿고 싶은 것만 선택적으로 보고 듣고 믿는 심리 현상'을 말합니다.
이 말은 피터 케스카트 왓슨이라는 인지 심리학자가 1960년에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단어인데 편향된 기억을 가지고 과신하고 몰아가는 의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남자가 도끼를 잃어버렸습니다.. 누군가 훔쳐 갔다고 의심했습니다.. 이때 마침 이웃집 아이가 지나가는데. 그런데 아이의 태도가 조금 수상했습니다.. 평소와 달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루종일 그 아이를 유심히 살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평소와 다르게 태도와 낌새가 수상했습니다.. 자자꾸 자기를 피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를 살필수록 도끼 도둑이라는 확신이 점점 더 들었습니다.. 이제 물적 증거를 찾는 일만 남았습니다.. 아이를 미행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다음 날 뜻밖에도, 집 뒷마당에서 나무에 가려져있던 잃어버렸던 도끼를 찾았답니다.. 그리고 다시 이웃집 아이를 보았습니다.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전날의 느낌과는 전혀 달랐답니다.다. 도끼 도둑으로 의심할만한 것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레이먼드 닉커슨(Nickerson, 1998)은 확증편향의 개념을 "진리여부가 불확실한 가설 혹은 생각을 부적절하게 강화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이단들과 사이비가 이런 경우들이지요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생활의 핵심은 바로 확증 편향 즉 편향된 단편적인 생각을 가지고 믿는 믿음이 아니고 여러 가지 검증된 사실과 영원불변한 진리를 가지고 믿는 분명한 믿음에 근거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확신하며 사는 삶은 생명과 관련된 삶이고 인생 전체의 구원을 이루는 축복된 삶, 행복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가가 나룻배로 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넓은 강이므로 건너는 시간이 길어지자 무료해진 대 철학가가 사공에게 말을 건냈습니다.. “사공양반, 철학자 플라톤을 아시오?” 사공은 “제가 그런 분을 어떻게 알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 대학자가 “당신은 철학을 모르기 때문에 인생의 절반을 잃은거요. 그럼 프랑스가 어디 있는지 아시오?” 라고 했습니다.. 사공은 “웬걸요. 저 같은 사람이 그런 것을 알 수 있나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쯧쯧, 당신은 인생의 4분의 1을 잃어버렸소. 프랑스는 유럽에 있는 나라이며, 예술의 나라요. 그럼 시(詩)에 대하여 좀 알고 있소?” 학자는 다시 물었습니다..
“어르신, 전 그런 거 다 모릅니다..” 사공은 여전히 모른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학자는 불쌍하다는 듯 쯧쯧 혀를 차며 사공을 쳐다보았습니다..
강어귀에 가까이 왔을 때에 갑자기 돌풍이 일어나 배가 뒤집혔습니다..
물에 빠진 사공은 허우적거리며 안간힘을 쓰고 있는 대 철학자에게 물었습니다..
“철학가 선생님, 수영할 줄 아십니까?” “난 수영 못해요.”
그 때 사공은 “그렇다면 선생님은 목숨을 잃은 겁니다., 인생전체를 잃은 것입니다.”라고 우유히 강언덕에 이르렀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는 처세에는 능하고 많은 소유를 자랑하고 권세를 탐하는 자들은 많으나 영원히 사는 법을 모르는 헛 똑똑이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철학과 예술과 문학이 아니라, 부귀와 세상 명예가 아니라 생명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의 삶을 구원하고 후에 삶으 결과가 가치있고 결국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가장 기본이 되고 중요한 인생 관심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세상 사람들에게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확증하며 권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다른 것을 다 놓쳐도 생명을 놓쳐서는 안되고 다른 것이 다 무너져도 영생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놓쳐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고후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럼으로 이 패역한 세대에서 예수님을 전하며 구원을 증거하기 하며 능력있는 믿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십자가 도의 의미를 분명하게 확증하셔야 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중요한 포인트는 교회건물에 들어 서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봉사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닙니다.
기적이 많이 경험되는 것도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십자가의 은총입니다.
예수님께서 달려 돌아가신 이 십자가 사건이 나에게 적용되고 경험되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확신인 것입니다.
고전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그럼으로 우리는 십자가의 은총의 증거가 늘 경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활속에서 이러한 믿음과 확신과 경험이 날마다 확증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나에게 일어나는 확실한 증거는 2가지입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하나님의 용서가 확인되는 증거의 자리입니다.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즉 구체적으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갈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우리는 당연히 세상을 살면서 죄를 짓습니다.
알고도 지은 죄 모르고도 지은 죄를 짓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잊어버리기도 하고 합리화시키기도 합니다. 남 탓하기도 합니다.
남들 다 그러는데... 세상이 다 그런데 .....
그러나 죄의 상처는 나에게 남는 것민이 아니라 주변사람에게 남습니다.
자식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하고 평생을 미안하다 말한마디 안하고
자식들에게 평생을 용서받을 기회도 못 가지고 살다가
죽을 때가 돼서야 미안하다 하고 죽는다면 얼마나 불쌍하고 처량하고 바보스러운 인생입니까?
진작부터 삶을 구했어야 하지요
미안하다 잘못했다 용서를 구하고 빨리 모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와 자녀들과의 관계속에서 상처를 보듬는 것이 삶을 구원하는 방식이 아니겠습니까?
내 삶도 구하고 자녀들의 삶도 구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평생을 자녀들이 두려워하다 미워하다 증오하다 마음을 닫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입니까? 주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빨리 회개를 배우고 용서를 배우고 용서를 구하는 삶을 십자가의 은혜속에서 배우셔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이러한 진실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용서를 받은 사람이 용서를 할줄 알고 주님께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이 주변에 용서를 구하는 법도 아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그 큰 사랑으로 우리를 죄를 사하시고 품으셨으니 우리도 올 한해 용서를 구하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죄송하다고 표현하면서 용서를 받아서 닫히고 상처받은 시간을 구원받으면서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무덤 너머의 부활의 소망을 확인하는 증거의 자리입니다.
지금 너무 많은 분들이 무덤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후에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속에 안치되었습니다. 3일간 계셨습니다.
어둡고 슬프고 절망의 끝인 장소입니다. 더 이상의 기대도 없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약속하신대로 3일이 지나자 무덤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나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우리의 모든 절망과 죄와 사망의 권세를 다 못박으셨습니다. 그리고 기다리셨습니다. 3일간 무덤속에 들어가 계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신대로 사망권세를 뚫고 살아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부활의 첫 소망이 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잡고 울 수 있습니다.
힘들어서 절망해서 또 어떤 분은 너무 분해서 울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 살아나신 주님의 생명의 빛이 환하게 비추이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한하게 우리 영혼을 생명의 빛, 영생의 빛이 비출 때에 우리는 일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란도 전서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전15: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고전15: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고전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 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오늘 새해를 시작하는 둘째주일입니다.
이 패역한 세대 즉 무너지고 절망하고 허무한 삶에서 십자가를 붙잡고 구원을 받으시길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확증하십시오 인생구원과 영원한 생명에 관해서는 확실한 믿음을 표현하며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살아계신 주 찬양하시겠습니다.
후렴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 길 인도 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1. 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날 위하여 오시었네
내 모든 죄 용서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나의 구세주
2. 주 안에서 거듭난 생명 도우시는 주의 사랑
참 기쁨과 확신 가지고 예수님의 도우심을 믿으며 살리
3. 그 언젠가 주 뵐 때까지 주를 위해 싸우리라
승리의 길 멀고 험해도 주님께서 나의 앞길 지켜주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