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과 인내와 고난속에서 얻은 심성_삼하1:17~27_5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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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과 인내와 고난속에서 얻은 심성_삼하1:17~27_5월2일

성문Shalom 0 4234 0

사람들은 흔들릴 때 흔들리기만 하는 사람이 있고 중심 추가 무너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미워질 때 ,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그리고 중병이 들어 고통을 받을 때 마음도 무너지고 심성도 그리고 감성도 무너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질어지고 강팍해져서 자연의 정취를 즐길 여유도 없어지고 마음의 노래를 흥얼거릴수 있는 자유도 빼앗기고, 상대방을 기다려줄 수 있는 인내도 사라져서 시계 바늘의 초침이 돌아가듯이 그렇게 기계처럼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어려운 상황가운데에서도 심성도 감성도 잃치 않고 주변을 그리고 자녀들을 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바시에 나와 강연을 한 장애인 국가대표 로봇다리 김세진 선수의 어머니의 스토리입니다.

영상을 한 4분정도 같이 보시겠습니다. 201410..영상

 

영상~~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사는 인생의 중심축인 믿음을 붙잡고 사는 주의 백성들입니다.

이 어려운 시기 특히 전염병으로 인하여 제한된 고통의 시간, 정치 경제적으로 혼란의 시기를 살아나갈 때 믿음을 가지고 가능한 한 심성, 감성을 망가뜨리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환경이 무너지는 것보다 더 큰 위기는 심성과 감성이 사라질때입니다. 그러면 미래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극한 인내와 고난속에서 심성이 망가지지 않고 감성이 샘을 터뜨려 아름다운 시를 지은 믿음의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우리는 지난 4월동안 사무엘상서를 읽었습니다.

5월 한달 사무엘하서를 읽으시면 됩니다.

이번 주에 읽으실 말씀은 사무엘하 1장부터 5장까지의 말씀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1장에 보면 사울왕과 친구 요나단이 죽게 되는 소식을 다윗이 듣게 됩니다.

오랜시간 사울왕의 사해위협에 시달리고 도망다니던 다윗에게 기쁨의 시간이었지만 다윗은 슬픔의 노래를 지어 아픔을 표현합니다.

2장 다윗은 유다지역의 왕이되고 사울의 군최고 사령관 아브넬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가서 11지파의 왕으로 세웁니다.

3장은 아브넬이 이스보셋을 배반하고 다윗에게 왔다가 다윗의 장군 요얍에게 살해됩니다.

4장은 마하나임에 있던 이스보셋을 레갑과 바아나가 살해하고 다윗에게로 왔지만 다윗에게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5장은 그리고 76개월동안 헤브론에서 머물었던 다윗은 이제 명실공히 온 이스라엘의 욍이 됩니다. 30세에 왕위에 올라 40년을 통치하게 됩니다.

 

오늘 저희가 읽으신 말씀은 다윗이 사울왕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진심으로 슬퍼하며 지은 시의 내용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 시를 읽으면서 다윗이 쇼를 하는 것이 아닌가 !

마음에도 없는 노래를 부르는 것은 아닌가 피상적으로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지난 세월 도망다니던 고통을 헤아려 보고 오늘 지은 시를 몇 번이고 읽으면서 이 노래는 진심이었고 이 슬픔은 가슴에서 나오는 감성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인생의 노래는 인내하며 모든 눈물을 견디어 내본 사람, 고난을 깊이 당해보지 못한 사람은 읽어낼수가 없는 감성의 시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중에서 무너지지 않는 심성으로 인해 나오는 고백인 것입니다.

 

다윗은

- 하나님의 말씀의 순종하였습니다.

- 그리고 자신이 본능대로 움직일수 있을때에 하나님의 시간과 때를 인내하며 기다렸습니다.

- 마침내 험한 고난속에서 지켜낸 믿음으로 지켜낸 심성과 그 깊은 곳에서 나오는 감성의 노래가 바로 오늘의 다윗의 노래임을 기억하면 정말 감동스러운 시입니다.

 

오늘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잠깐이나마 이 본문을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원수같은 사울왕의 죽음을 고소해하지 않고 슬퍼할수 있을까요?

겉으로는 슬퍼할수 있겠지만 어떻게 슬픈 감정이 진심으로 이렇게 올라올수 있을까요?

삼하1:24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그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이렇게 진정으로 애가를 부를수 있는 심성은 두가지로 요약할수 있습니다.

첫째는 악한 행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고 존중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 다윗은 분명하게 악한 행위에 대하여 지적을 하며 기도합니니다.

시편 59편은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집에 사람을 보냈을 때 지은 시인데

이렇게 기도합니다.

59:11 그들을 죽이지 마옵소서 나의 백성이 잊을까 하나이다 우리 방패 되신 주여 주의 능력으로 그들을 흩으시고 낮추소서

59:12 그들의 입술의 말은 곧 그들의 입의 죄라 그들이 말하는 저주와 거짓말로 말미암아 그들이 그 교만한 중에서 사로잡히게 하소서

분명하게 그들의 악한 행위와 그 거짓들을 제거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죽이지는 마옵소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위기의 순간에도 사람을 존중하는 심성이 망가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올라오는 감정은 아휴 저것들 싹 쓸어갔으면 좋겠다 다 죽었으면 좋겠다 미움의 쓰나미로 밤새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것입니다.

미움의 쓰나미가 아내도 남편도 주변의 친구도 동료도 그리고 사회지도자들 정치가들도 싹 죽었으면 좋겠다 분노가 치솟고 혈압이 오르고 주먹이 나가고 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다 다 죽으면 어떻게 합니까? 밥은 누가 지어주고 아이는 누가 키우고 돈은 누가 벌어다 줍니까? 누가 친구라고 내 옆에서 미소를 짓고 누가 이 복잡한 나라를 다스리겠습니까?

나혼자 밥도 짓고 아이도 키우고 돈도 벌고 친구도 하고 나라도 다스릴수 있는 것입니까? 나 혼자 실제 삶에서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순간에 다윗은 미움의 확산을 통제하고 이렇게 슬픔의 노래를 부릅니다.

삼하1:24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그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이것을 저는 타인의 장점과 단점을 아는 균형잡힌 신앙의 심성이라고 표현해봅니다.

사람은 모두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아무리 악해 보여도 장점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타인의 단점만 보기 시작하면 아주 몹쓸사람으로만 보이는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루카스라는 심리학자가 어린이를 대상으로 딸기 실험을 했답니다.. 딸기 바구니에는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상한 딸기가 15% 정도 섞었답니다..

A 팀에게는 싱싱한 딸기를 골라서 그릇에 담게 하고, B 팀에게는 상한 딸기를 골라서 그릇에 담게 했답니다.. 선별 작업이 끝나고 나서 아이들에게 '싱싱한 딸기의 양이 얼마나 되는가?'라고 물었답니다.. 싱싱한 딸기를 골랐던 A 팀은 거의 정확한 답을 말합니다. 85%정도라고 그런데 상한 딸기를 골랐던 B 팀은 싱싱한 딸기의 양이 얼마안된다고 대답했답니다.

50%도 안된다고 이구동성으로 답을 했답니다.

 

실제 사울왕은 다윗을 정적으로 생각하고 죽이려고 달려들었지만 백성들에게는 좋은 것들을 베푼 왕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왕으로 있는 동안 전쟁에 이겨 전리품을 얻으면 백성들에게 나누어 화려한 옷과 금노리개를 가지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즉 이전의 많은 전쟁에서 이겨 물질적 안정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사실에 기초하여 이스라엘 딸들에게 사울의 죽음에 대하여 슬퍼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 더 나아가서 내 주변에서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느냐는 내 믿음의 심성에 달려 있습니다.

내 마음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화려한 옷을 입고 들어오시는 권사님을 보고 아유, 이렇게 멋진 옷이 몸에 맞으니 아직도 처녀같아요!”라고 말할 것인가 아유, 나이들어 노인네가 주책이야당신 치매야 ~ 라고 말할 것인가는 개인의 선택입니다..

 

아무리 미운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의 잘한 일, 좋은 모습을 기억하고 말할줄 안다면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진정한 따듯함이 묻어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감성 있는 사람이 가정을 따듯하게 세울 것이고 교회를 건강하게 받혀 나갈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6:35-36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로마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17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벧전3:9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둘째로 다윗은 현재가 아닌 미래를 넓고 크게 보고 기대하는 믿음의 심성이 있었습니다.

삼하1:22 죽은 자의 피에서, 용사의 기름에서 요나단의 활이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며 사울의 칼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였도다

 

다윗은 미래 이스라엘의 왕의 마음으로 사울의 죽음을 대하였습니다.

사울의 칼이 지금은 무너졌지만 결국은 헛되지 않아서 이스라엘을 지켜질 것이다

소망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다윗의 소망은 사울왕이 죽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소망은 이스라엘 나라의 안정과 평화였습니다.

우리가 왜 싸웁니까? 안정을 위해서 싸우는 것 아닙니까? 나 잘되기 위해서 싸움을 거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다 망하기까지 싸우는 것입니다. 왜요? 심성이 망가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심성이 망가지니 현재에만 몰두하고 내 소원도 잊어버리고 무조건 목숨걸고 싸우고 비난하고 욕하면서 생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인생 싸움의 목표는 분명했습니다.

1)다윗은 나라의 안정와 평화가 소망이었습니다.

2)남의 죽음을 타고 자리하는 왕의 보좌가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지파들이 인정하는 왕이 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러한 소망은 5장에 이루어집니다.

삼하5:5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

 

그렇습니다.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리는 목표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울왕을 죽이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기다렸고 원수까지 존중했고 남의 고통을 아파할줄 알았습니다.

다윗은 이 모든 시련속에서 믿음의 심성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그 귀한 심성이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모든 민족을 통합시키는 감성의 곡조를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면서 살다가 견뎌야하는 참음과 인내 그리고 닥치는 고난속에서 믿음과 소망을 훈련된 심성은 가정을 안정되게 만들고 주변을 하나되게 만들어 갈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복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이 어려운 광야같은 시기에 심성이 망가지지 않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저는 지난 구역장 공부시간에 과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생활속에 적용하는 삶은 과거에 대하여는 감사요 은혜 고백이고 현재는 실천과 순종이며 미래에 대하여는 약속에 의한 소망을 가지고 기쁘게 사는 삶인데 구역식구들에게 적용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들을 하셨습니다. 몇분을 소개하면

집사님 과거_우리에 삶이 다 이런 줄 알고 살았습니다..

현재_주님을 만나고 구원 받고나니 모든 것이 감사의 조건이 되었습니다..

구원 받은 것 감사 건강 주심 감사 귀한 자손 준 것도 감사

미래_사망 후 주님 곁으로 갈 수 있음을 감사

 

과거 많은 어려움 이겨내서 감사

열등감이 심했지만 심자가의 은총으로 벗어나서 감사

믿음의 첫사랑시 황홀한 체험 감사

현재 : 성문교회 섬길수 있어서 감사

코로나19 역병속에서도 호흡하면 생존하는 것 감사

저녁기도시 회개하며 자는 것 감사

미래 : 주님 동행하심의 소망

풍성한 열매와 성화 기대하며 기쁨

주님 곁을 사모하며 소망 ..

 

광야

왜 나를 깊은 어둠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주께서 나를 사용하시려 나를 더 정결케 하시려

나를 택하여 보내신 그곳 광야

성령이 내 영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내 자아가 산산히 깨지고 높아지려 했던 내 꿈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오직 주님 뜻만 이루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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