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인생 – 사명으로 살다_행20:17-25_9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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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인생 – 사명으로 살다_행20:17-25_9월 26일

성문Shalom 0 5513 0

행복한 인생 사명으로 살다

본문 : 사도행전 20: 17- 25 

 

UN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 발전해법 네트워크(이하 SDSN)는 매년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사회적 지원, 기대수명, 사회적 자유, 관용, 부정부패,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 총 7가지 지표로 기준을 삼은 이 보고서에서는

2020년 대한민국은 세계행복보고서에 61위를 기록했습니다..

201954위에서 더 하락한 것입니다.

 

2021년은 여러 가지 지표를 볼때 더 많은 불행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현실일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 1위를 물었을 때 40.6%의 사람들이 돈을 꼽았습니다. 사실 행복을 위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조건은 자산의 넉넉함일 것입니다.

그럼 얼마면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아갈까요? 10~50억 정도의 물질이 필요하다고 답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칼하게 행복지수 지표들을 발표하는 글들을 보면

- 어떤 연구에서는 일년 연봉이 8000만원 이상부터는 물질로 인한 행복지수가 멈춘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 또 세계적 심리학자인 에드 디너 일리노이대 교수는 포브스지가 선정한 미국 100대 부자 중 49명을 실제로 인터뷰했는데 부자들 스스로 뽑은 행복의 이유’ 1위는 사랑· 친구· 좋은 가정이었고, 2위는 성취감, 3위는 자존감, 4위는 건강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돈이 있는 부자들 이야기입니다.

 

돈이 행복의 기준이라는 관점을 조금 빼면 많은 책들이 다양한 인생의 행복을 다루고 있음을 볼수 있습니다.

그 중에 행복의 조건이라는 책의 저자인 조지 베일런트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행복의 조건으로 3개의 과제을 제시합니다..

1) 긍정적 나이듦, 2) 건강한 나이듦, 3) 품위 있는 나이듦입니다..

- 1) 과업인 긍정적 노화란 사랑하고, 일하며, 알지 못했던 사실을 배우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 2 )두 번째 관문인 건강한 노화를 위해서는 7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설명하는데 고통에 대응하는 성숙한 방어기제, 교육, 안정된 결혼생활, 금연, 금주, 운동, 알맞은 체중입니다..

- 3) 세 번째 품위 있는 노화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소중하게 보살피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자율적으로 해결하고, 유머감각을 지니고 삶을 즐길 줄 알아야 하며, 다음 세대로부터 끊임없이 배우려고 노력하고, 오랜 친구와 계속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이 모든 조건을 다 갖추며 산다는 것은 쉽지는 않습니다.

세상적인 이 모든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은 행복할 수는 없는 것입니까?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이 땅에서 다 갖추고 누리는 삶이 행복할수도 있지만 모든 조건을 갖추지 못해도 행복한 삶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명적인 삶입니다.

어떤 상황, 그 어떤 험한 조건에 처해도 사명을 가지고 뚫고 나가는 삶이 사명적인 삶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인생 최고의 행복한 삶은 바로 사명으로 사는 인생인 것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의 고백은 바울로서는 당시 상황적으로 절박한 고백이지만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너무나 부럽고 어쩌면 저렇게 일관되게 살아갈수 있을까? 대단해 보이는 삶인 것입니다.

 

같이 한번 읽어보시겠습니다.

20: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0: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불행이 예측되지만 사명으로 사는 삶에 후회가 없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이때 사도 바울은 노년에 접어든 시기입니다.

예상되는 모든 어려움과 힘든 일을 피하고 싶은 나이입니다.

언제라도 멈추고 회피하며 조용히 편안하게 은거하며 살수 있는 사도바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명을 위해서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신앙철학이 있는 담대한 고백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땅을 살면서 부러워해야할 행복한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번 주에 읽으실 말씀은 사도행전 19-23장까지의 말씀입니다.

19장은 우상숭배가 성행했던 에베소에서의 기적과 소동이 나옵니다.

20장은 사도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기 전에 밀레도에서 에베소교회 지도자들을 불러 작별하는 마지막 고별설교입니다.

21장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고 유대인들에게 붙잡혀 로마 천부장에게 인도되는 장면입니다.

22장은 바울이 유대인을 향해 복음 설교를 하고 있는 내용이고

23장은 결국 가이사랴에 있는 벨릭스 로마 총독에게 끌려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오늘 읽어드린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1,2,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이어 예루살렘 여행을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1)예루살렘 교회에 지도자들에게 이방 선교를 보고 하기 위해서이고 아시아교회에서 헌금한 구제금을 어렵고 힘들게 버티는 예루살렘 교회에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2)로마로 가기전에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은 에베소에서 바로 수리아 안디옥 교회로 가려고 했으나 바울을 죽이려는 암살단을 피해서 육로를 택합니다.

고린도를 거쳐서 빌립보, 아시아의 드로아 (영화에 나오는 트로이, 호메로스의 일리야드 가 바로 드로아입니다. ) 여러곳을 거쳐서 밀레도 두로 가이사랴 그리고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청년 유두고를 살린 트로이를 떠나 - 앗소 - 미둘레네 - 기오 - 사모를 거쳐 밀레도에 도착한 장면입니다. ( 여행 경로를 지도로 보여줄 것)

에베소를 가고 싶었지만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고자 에베소 교회 지도자들을 불러 마지막 고별설교를 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슬프며 감동적인 장면은 3738절에 나옵니다.

20:37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20:38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에베소와 밀레도 교회지도자들에게 마지막 사도바울의 모습은 평생 가슴에 남는 장면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신앙생활에 커다란 본보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 무엇이 사도바울을 그렇게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당당하고 확고하게 만들었을까요?

- 무엇이 그렇게 27세의 벽안의 청년 토마스 선교사가 대동강변에서 참수를 당할때에 담대하게 쪽 복음을 전하며 기도하며 죽을수 있게 하였을까요?

- 무엇이 그렇게 침몰해가는 타이타닉 호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찬양의 멜로디를 울려퍼지게 그 연주단장의 삶을 지배하였던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사명 때문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이 고백한 사명적 삶은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내가 달려 갈길이 있다는 고백하는 사명적인 삶입니다.

둘째는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는 사명적인 삶입니다.

 

첫째로 내가 달려 갈길이 있다는 고백하며 주님 바라보는 삶이 사명적인 삶입니다.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사도바울은 주님께로 달려 갔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후 평생을 주님을 바라보며 걸어갔습니다. 아니 달려 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살아가면서 어디를 목표로 걷고 달려 가고 계십니까?

가정을 위해, 성공적인 위치를 위해.. 물질의 넉넉함을 위해 오징어 게임이라는 드라마에서 나오듯이 열심히 달려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때로는 옆에 소중한 것을 망가뜨리고 잘 다져 놓았던 울타리를 다 파헤치면서 의리도 양심도 신의도 다 내 팽겨치고 달려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번 명절은 많은 가정이 그동안 속에 쌓아놓았던 잘못된 아픈 관계를 다시 확인하고 되십는 시간을 가진 분들로 있으실 것입니다.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열심히 가족들을 불러 모으는데 감정이 상하고 상처를 주고 울화병을 돋게하는 일들 말입니다.

무엇을 위해 열심히 그렇게들 달려 가는 것입니까?

웃을려고 행복하려고 나누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이 달려갈수록 더 힘들고 공허한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아십니까?

전도서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1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1: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그래서 솔로몬은 인생의 모든 수고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1:14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이제 우리는 해 위를 향해 달려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평생 땅을 딛고 살았지만 그의 눈과 발은 주님을 향해 나아갔던 것입니다. 환경이나 여건이 그의 길을 멈추게 하지 않았습니다.

1,2,3차 전도여행 그리고 로마로 가기 위해 다시 예루살렘으로의 전도여행 사도바울은 그저 주님만 바라보며 걸어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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