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속에 있는 사람들 – 2. 롯과 나오미_룻기1:15-18_7월25일

홈 > 예배와 말씀 > 설교모음
설교모음

시험 속에 있는 사람들 – 2. 롯과 나오미_룻기1:15-18_7월25일

성문Shalom 0 4077 0

시험 속에 있는 사람들 2. 롯과 나오미

  

일반적으로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면 2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도망갈 것인가 아니면 참고 걸어나갈 것인가 ?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여지는 현상을 보고 미리 판단하여 어려움을 피하고자하는 본능에 충실하게 됩니다.

조금 더 생각하는 사람은 이 어려움뒤에 어떤 보상이 있을까 생각하면서 계산을 하며 도망할 것인가 참을 것인가를 결정합니다.

 

그런데 어려움을 당할 때 퇴로가 없을 때는 문제입니다.

도망갈 수가 없는 상황에서 어려움을 당하면 2가지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1)주저앉아버리든지 아니면 2)허리띠를 동여매고 뚫고 나가든지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회자되는 인생승리자들을 보면 어려움을 극복하고 도전을 통해 난관을 뚫고 나갑니다.

퇴로를 바라보지 않고 전진하는 사람도 많고 상상도 못하는 어려움속에서도 의연하게 자기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로 많이 있습니다.

이번에 장애인 최초로 718일에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우리나라 김홍빈 대장은 하산과정에서 조난을 당한 후 아직 소식이 없지만 그 분의 도전의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감동을 줍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과 부귀영화를 위해 그리고 어떤 분들은 인생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하는 선한 갈망으로 어려움을 통과하고 난관을 이겨내는 스토리는 정말 우리에게 도전의 삶을 추구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이런 질문을 합니다.

나에게 닥친 이 어려움은 왜 일어난 것인가 나의 잘못인가 너의 잘못인가를 따지게 하고 사회 잘못인가 아니면 하나님 잘못인가 헤아려 보게 됩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는 한국 사람들의 자조하는 언어에는 하늘의 섭리,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원망하는 의미가 들어 있는 어구이기도 합니다.

 

이번 코로나 19로 인해 닥친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는 우리의 고난은 시험거리가 되기도 하고 인간 죄성에 대한 질책이 되기도 하지만 계속해서 현실을 탓하고 사람들을 탓하며 지낼수는 없는 시점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환란속에 있고 질병속에 있고 시험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시대정신속에 매몰되지 말고 상대방과 환경을 빗대어 하는 모든 원망과 비난의 자세를 멈추고 당면한 현실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시험과 환란속에서 고난을 이겨낸 모든 믿음의 선배들에게 교훈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 어려운때는 사람과 환경에 의한 고난이 닥칠 때 가 아니고 지금 처한 현실을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으려고 할때입니다.

- 아픈데 아픔을 인정하지 않으면 의사도 대책이 없습니다.

- 분명히 틀린 것을 자신도 아는데 맞다고 우기면 어느 사람도 이해시킬 대책이 없는 것입니다.

- 대화를 하고자 하는데 자기 고집만 부리면 그야말로 대책이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계속 이어지는 전염병의 확산, 그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간의 탐욕과 잔인함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서 계속 부딪히는 마음의 시험 등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인생의 자세, 신앙적인 결단을 분명히 해야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의미에 있어서 극단의 상황에서 현실을 인정하고 마음을 어떻게 먹어야 지를 신앙적인 관점에서 배울 수 있는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1절에 보면 시대에 관하여 말씀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1: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어떤 시대냐 하면 사사들이 치리하던 시대였다고 합니다.

사사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모세와 여호수아와 같은 영적인 지도자가 영향을 강력하게 미치던 시대가 아니라 백성들이 각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자 일어난 현상은 동일한 패턴이 형성되었습니다.

 

1)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타락을 하기 시작합니다.

2)그러자 이방의 적들이 쳐들어와서 점령하고 약탈해 갑니다. 삶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망가집니다.

3)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고 살려달라고 부르짖습니다.

4)그리고 하나님은 사사 즉 기드온 드보라, 입다 삼손등의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워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또 평안해지면 이스라엘 사람은 1번으로 다시 돌아가곤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지금 사사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경직목사님, 옥한흠 목사님등 존경할만한 분들이 떠나시고 서로 자기들이 옳다고 싸우는 교회들로 많아졌고 사회적으로는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교회의 제도나 사람들에게 실망하여 떠나는 분들도 많아졌고 ...

정말 각기 소견에 옳은대로 주장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러한 때는 의심도 많고 불신앙적인 요소도 많아지고 그래서 예민들하여 마음에 시험에 걸리는 일들이 많아지게 되는 것을 봅니다.

바로 사사시대는 그러한 때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힘들고 신앙적으로도 힘겨운 시대에 환경적인 고난이 찾아옵니다. 그것은 바로 흉년이 들었던 것입니다.

1절에 보니 유다 베들레헴이라고 하는데 이곳은 떡집이란 의미로 풍부한 지역, 먹고 살기에 넉넉한 지역이었음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경제적 이익을 위해 신앙을 타협을 합니다.

이민을 떠나기로 한 것입니다. 어디로요 모압입니다.

모압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시대에 이스라엘을 저주하며 음란의 죄를 범하게 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했던 민족입니다.

사사시대에 모압은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18년 동안이나 약탈과 방화로 괴롭혔습니다. 한마디로 모압은 우상숭배의 나라요 원수의 나라요 이스라엘의 걸림돌이 되는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흉년이라는 어려움이 닥치자 재산을 정리하여서 떠난 한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 사람은 엘리멜렉이였습니다.

엘리멜렉은 영적인 혼란기에 살고자 힘든 결정을 하지만 결국 극복하는 삶이 아니라 도망가는 라이프 스타일을 택합니다.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과 함께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도망치고 만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신앙의 본거지를 떠나 내 믿음 내가 지키면 되지 하면서 이스라엘을 떠나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또 믿음이 뭐 중요해 당장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지 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참으로 가슴아픕니다.

멀리 이국땅에서 사는 것이 고되었는지 엘리멜렉은 죽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인 말론과 기룐도 원인은 알수 없지만 죽습니다.

말론의 이름뜻은 병약한 이란 뜻이고 기룐의 뜻은 낭비 허비라는 의미입니다.

 

멀리 도망하였는데 남편도 죽고 두 아들도 죽고 이제 남은 것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모압의 여자들인 며느리 오르바와 룻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극단의 환경에서 회복의 서막이 열리기 시작됩니다.

그것도 남자들이 아닌 여성을 통해 믿음의 세계와 가문의 영광이 시작되는 장면인 룻기서인 것입니다.

 

이 여인들은 퇴로가 없는 상황에서 결단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결단은 바로 환경적 판단을 한 결정이 아니고 신앙적인 결단입니다.

이러한 신앙적 결단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룻기서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바른 결단, 신앙적 선택이 바로 우리의 절망과 시험을 통과하여 새로운 차원의 삶으로 들어서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두 여인은 이러한 결단을 합니다.

첫째는 미망인 나오미는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발걸음을 돌이킵니다.

자포자기하면서 탄식으로 인생을 끝낼수 있지만 다시 본향으로 믿음의 땅, 이스라엘로 돌아갑니다. 두 며느리는 돌아가라고 하고 자신은 유다땅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이 장면은 마치 예수님의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둘째 아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들고 외국에 나가 다 탕진한 후에 노숙자가 되어 돌아오는 탕자....

아버지에게 돌아가야 살 길이 있다는 탕자의 돌이킴...

여기에 살길이 있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타국생활에서 6절에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소식을 듣고 회복의 길 , 살 길을 찾아나섭니다. 다시 주님의 땅으로 ,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키는 것입니다.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남편도 자식도 다 죽고 돌아오는 나오미를 향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조롱을 하고 손가락질을 하게 되겠습니까?

차라리 여기서 죽는 것이 낫지 그 많은 창피함과 조롱을 어떻게 견딜수 있겠습니가?

그러나 나오미는 돌아가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돌이킴, 다시 하나님으로 가고자 하는 선한 결단이 우리의 삶속에 먼저 일어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시대에 많은 손해를 보시고 극단의 삶에 내몰린신 분들 안계십니까?

마음에 시험이 들어서 의심과 절망의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분들은 안계십니까? 오늘 다시 하나님의 품을 들어오시길 기도합니다.

있는 그 자리, 모압의 자리에서 다시 신앙의 땅으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시길 기도드립니다.

우리 인생의 유일한 회복의 길은 바로 예수님의 품이며 주님께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둘째는 며느리 룻은 신앙의 동반자인 시어머니 곁에 머물기로 결심합니다.

1: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은 이방여인입니다. 룻은 시아버지 엘리멜렉과 똑같이 타국 생활을 택합니다. 그러나 모압으로 이민 온 엘리멜렉과는 다른 점이 있다면 타국에서의 풍족한 삶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의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때문이었습니다.

룻은 말합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은 사람 뒤에 있는 하나님을 다른 것이었습니다.

가난해진 나오미 , 초라해진 나오미, 늙은 나오미를 보지 않았습니다.

나오미가 찾아가는 하나님, 우리의 삶을 회복시킬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오미곁에 머물기로 한 것입니다. 의리때문도 아니고 정때문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룻은 신앙의 동반자인 나오미를 택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동반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신앙의 동반자, 함께 주님의 은혜를 이야기 하고 기도를 함께 하고 함께 말씀을 나눌수 있는 동반자가 있다면 결국 삶의 회복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특히 이 어려운 시대에 그리고 시험을 받고 시험속에서 지내는 이 때에 우리가 선택해야하는 것이 있다면 신앙의 동행자들이어야 합니다.

성문교회 공동체는 그런 면에 있어서 꼭 붙잡고 가야 하는 신앙의 나오미이기도 합니다.

서로 모이지 못하고 떨어져서 이렇게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고 자꾸 멀어져 가는 환경이 이어진다고 하더라도 룻의 고백은 우리들에게 신앙선택, 교회 공동체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1: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이방여인 룻은 남편도 죽고 시어머니를 모셔야 할까 시험을 받는 자리에서

신앙을 택하고 신앙의 동반자를 택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룻은 가정을 회복시키고 믿음의 명문계열에 이름을 올립니다.

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마1: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그리고 룻이 돌아간 그 땅 믿음의 땅, 베들레헴은 예수님의 탄생지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어떻게 보면 우리는 사람을 탓하기전에 환경을 원망하기 전에 지금 광야에 내 몰려 있는 시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때 우리는 두 여인의 믿음의 선택을 기억하고 마음판에 새기면서 나의 가정과 내 삶 그리고 우리 성문을 사용하시려는 주님의 뜻을 헤아리는 시간으로 삼으시길 축원드립니다.

광야를 지나며 찬송을 부르시겠습니다.

 

왜 나를 깊은 어둠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주께서 나를 사용하시려

나를 더 정결케 하시려

나를 택하여 보내신 그곳 광야

성령이 내 영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곳

광야 광야에 서 있네

 

내 자아가 산산히 깨지고

높아지려 했던 내 꿈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오직 주님 뜻만 이루어지기를

나를 통해 주님만 드러나시기를

광야를 지나며

0 Comments
  • 글이 없습니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