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의 중심에서 들려주시는 음성 (행 27:13-26절)
광풍의 중심에서 들려주시는 음성
2017년 9월 10일
본문 : 행 27:13-26절
올해도 우리나라는 큰 태풍의 피해 없이 지나가는 듯합니다
물론 9월말까지 폭풍우가 찾아오긴 하지만 말입니다
지난 8월 25일에 발생한 태풍 하토에 관한 뉴스입니다
그 피해 규모가 얼마나 큰 지 잠깐 보시겠습니다 영상~~
사람들이 태풍의 모습을 처음 보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60년 세계 최초의 기상 위성이 지구 상공으로 쏘아 올려진 때부터라고 합니다
이 때 사람들은 구름 사진을 통해서 웅장하고도 활력적인 동그란 태풍의 실체를 확인했던 것입니다
태풍과 같은 열대성 저기압은 세계 다른 곳에도 있어서 각각 Typhoon, Hurricane, Cyclone 등의 명칭을 불리우는데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것은 적도 부근의 열대 해상에서 발생하는 저기압으로, 흔히 반지름이 약 500㎞, 그 중심에 반지름 약 30㎞의 눈이 존재하는 태풍들입니다
그저께 미국의 허리케인 “어마”는 미국 남부 카리브해를 강타했는데 그 규모가 얼마나 큰지 카리브해 섬 건물의 90%를 다 날렸다고 합니다
보통은 직경이 1,000km가 넘어 남북한을 합친 우리나라를 덮을 정도로 큰 것인데 더 큰 것은 직경이 1,500km가 되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공기의 거대한 소용돌이인 태풍은 1945년 일본 나가사끼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만배가 넘는 에너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태풍이 뿜어내는 비바람의 강도는 웬만한 화산폭발의 열 배 정도의 위력이 있는 것으로 계산된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태풍이 지나갈 때에는 홍수, 산사태, 해일 등 각종 자연재해가 나타나는 것은 물론 이따금씩 열대지방 특유의 괴질도 발생해서 가축이나 농작물 등에 많은 피해를 주게 된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폭풍의 특징적인 단어는 혼란과 두려움과 죽음과 그 공포입니다
주목할 것은 폭풍우는 다 그런 혼란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름사진에서 태풍을 보면 중심 부근에 작은 구멍이 있는 것이 발견됩니다
이것은 바로 태풍의 눈으로 격렬한 폭풍우의 집합체인 태풍에 한 가운데 있는데 유일하게 날씨가 좋은 구역이 됩니다
태풍의 눈은 반경이 20-100km 정도가 되며, 그 지역이 태풍의 눈에 들어 있을 땐 밤하늘에서 별도 볼 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이곳은 마치 태풍의 숨통과 같아서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회의 커다란 폭풍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사회 정치 경제 종교 문화등 각 분야에서 한번 바람이 불면 처음은 미풍처럼 미약하게 시작했다가 후에는 걷잡을 수 없는 태풍처럼 커져버리며 심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국제정세는 북핵의 위협으로 중국과의 심한 갈등을 노출하게 되어 대형 소형 공장들과 사업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으며 교민들의 안정이 위협을 받을 정도입니다
경제규모도 GDP(국내 총생산)순위로 OECD국가중 8위에서 18위로 떨어졌으며 2050년에는 나이지리아 파키스탄보다 뒤쳐질 세계 18위로 밀려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PwC '2050년 세계 경제순위 변화' 보고서)
종교적으로도 우리 교단성도수도 지지난해 5만명에 이어 지난해도 5만 8천명이 줄어들었고
예산규모도 100억정도가 줄었다고 합니다
500명 성도의 교회가 100개가 우리 교단만 사라졌습니다
각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심한 일탈과 혼돈에 빠져 삶의 좌표를 잃어버리고 판단가치가 사라져 버린 듯합니다 상상도 못하는 범죄와 규범의 상실은 이미 태풍처럼 우리의 삶의 한 가운데에 와있습니다
이러한 위기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요?
막연한 불안감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요?
그리스도인으로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할까요?
오늘 우리는 극한 상황에 빠져 있는 한 사람을 모델로 삼기를 원합니다
오늘 그는 실제로 대형폭풍을 만났고 죽음 직전에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주후60년 8월경 바울이 로마로 들어가는 여정중에 일어났던 기록된 말씀입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려했던 바울은 로마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당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복음의 세계화를 이룰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유대총독 베스도로부터 무죄를 판결 받았으나 로마시민권을 가졌기 때문에 로마 황제로부터 다시 판결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결국 로마로 가기 위해서 이제 죄인 아닌 죄인의 신분으로 로마를 향해 가게 됩니다
로마 군인인 백부장 율리오의 총감독하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로마를 향해 가는 배로 옮겨 타고 항해가 시작됩니다 당시에는 바람을 이용하는 범선이기 때문에 계절풍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레데 섬을 지날 즈음에는 이미 11월이 되어서 바람이 바뀌어 더 이상 항해를 하기가 어려워 졌습니다. 뒤에서 밀어주던 남서풍이 이미 북동풍으로 바뀌기 시작되었기 때문에 간신히 도착한 항구가 그레데의 미항이라는 작은 항구였습니다.
바울은 기도중에 얻은 영감을 통해서 더 이상 항해를 하는 것은 큰 위험이 예견하였습니다.
10절 말씀에 보면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
하지만 백부장 율리오는 미항에서 겨울을 나는 것 보다 뵈닉스라는 큰 항구로 가서 겨울을 지내자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듣습니다
항해를 시작할 때 처음에는 남풍이 순하게 불고 날씨도 쾌청하였지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불면서 거친 파도가 배를 강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첫째날에는 선장과 선원들이 풍랑을 극복해 보려고 자신들의 경험과 기술을 총동원하였지만 모래턱에 걸려 꼼짝 못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에는 배에 모든 화물을 바다에 던져서 배를 가볍게 해보려고 했지만 모래톱에 박힌 배는 움직이지 못하고 덮치는 파도로 배안에 물이 채워졌습니다.
셋째날 선장은 마지막 수단으로 배의 기구들 마져 다 던지게 하였지만 파도에 의해 14일동안 밀려 다니는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모두가 다 죽기 일보 직전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폭풍우속에서 사도 바울은 마치 폭풍의 눈 속에 있는 사람과 같은 조용하고 안정된 모습을 가지게 됩니다
모두가 똑같이 혼돈과 죽음의 공포가 밀려왔지만 사도 바울은 오히려 같이 있는 사람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고 있는 장면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혼란스럽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면서 사도 바울에게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모습을 통해 나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미래를 제시하고 영적인 지도력으로 주변을 살려낼 것입니다
이 어려운 시대에 우리는 사도바울을 통해 2가지를 배웠으면 합니다
첫째로 오늘 사도 바울은 광풍속에서 지도자로 서게 되는 것을 봅니다
아니 광풍은 그를 지도자로 만든 것입니다
바울은 광풍을 만나기 전에는 죄수의 한사람이었으나 광풍을 만난 후에는 그 선박의 지휘관이 되었습니다.
Paul과 함께 배에 탑승한 사람은 선장, 선주, 선원, 죄수들과 Rome 백부장과 군인들 도합 276명이었습니다. Paul은 이 배가 그레데 해안을 지나 미항에 이르렀을때 위태하므로 이곳에서 겨울을 지내자고 제의했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듣고 항해를 시작합니다 행27:13“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고 나옵니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났고. (27:14) 이때부터 배는 광풍에 밀려 14일동안 밤낮 칠흑같은 바다에서 일엽편주처럼 밀려다녔습니다
배안에 타고있는 모든 사람들은 불안과 초조와 절망속에 떨고 있었습니다.
이제 이 배의 지휘자는 로마 백부장이 아닙니다. 또한 선장도 아닙니다.
절망중에 있는 상황에서 아무도 지도자가 되질 못하는 것입니다
이때에 바울 사도는 일어나 외칩니다 22절입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이것이 바로 바울의 힘입니다 사도 바울의 강함입니다 사실 폭풍으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담대히 외칩니다
그들을 안심시킵니다 그리고 그 죽음의 배 안에서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공포와 두려움과 어두움과 혼란속에서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또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과 지도력이 결정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어려운 시대에 같이 한숨을 쉬고 같이 두려워하고 같이 절망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다같이 절망하면 모두 죽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폭풍의 눈을 발견하고 그 위험을 관리하고 폭풍을 관리하여 희망과 위로를 주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양약과 독약의 차이를 아십니까? 독약과 양약의 차이는 "양"에 있다고 합니다.
제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지나치게 쓰거나 먹으면 독이 되고, 독약이라도 적당량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약이 된다는 것이 의사들의 주장입니다.
전쟁 무기로 사용하는 생화학 무기가운데 탄저균과 보툴리누스균이 있다고 합니다.
탄저균은 미국 9.11 테러 이후 우편으로 여기저기 배달된 백색가루를 말하고,
보툴리누스균은 신경과 근육을 마비시키고 사람을 죽게 만드는 생화학무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보툴리누스균으로 개발한 것이 얼굴의 주름살을 없애기 위해 만든 보톡스라고 합니다. 사람의 근육을 마비시키고 죽게 만드는 보툴리누스균으로 사람을 예쁘게 만드는 치료약을 개발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불안, 근심, 걱정, 염려, 실패, 폭풍우 같은 절망 이런 것들은 없을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보툴리누스균이 미치광이나 전쟁주의자들 손에 들어가면 대량살생 무기가 되지만 의사 손에 들어가면 약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오히려 그런 것들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불안, 근심, 걱정, 염려, 절망은 하나님의 선물이 아닙니다.
마귀에게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손에 잡히면 안심, 평안, 기쁨, 희망이라는 양약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많은 땅, 두려움과 공포의 이 땅에 오셔서 평안을 선물하셨습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사도 바울은 바로 이 예수님의 평안을 선물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혼돈과 죽음의 순간에 사람들에게 안심과 소망을 주었습니다
모두 자포자기할 때 희망을 던져 준 것입니다 그 모든 고통에서 상황을 바꾸어 소망과 위로로 반전 시킨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사도 바울의 위기 관리 능력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공포속에서 사람들의 지도자가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풍랑이 심할수록 태풍의 눈은 커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주변에 소망과 위로를 주는 사람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묻습니다 도대체 무슨 힘으로 그런 능력을 얻을수 있는 것입니까?
그 분명한 비결은 무엇입니까? 해답은 이렇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행27:23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행27: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라고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가지고 살고 당당하게 살고 힘써 이겨나가며 살 수 있는 비결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제가 주일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힘을 공급하고 염려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저의 어떤 식견과 지식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경제 전문가도 아닙니다
저는 각 개인의 집안에 돌아가는 구체적인 상황이나 예금통장의 금액이나 생활비 내역같은 목록등은 잘 모릅니다 그런데 자신있게 전하는 것은 성도여러분들의 각 상황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심장에 꽂히고 확신이 서면 폭풍우같은 거친 환경속에서도 우리는 당당히 태풍의 눈 가운데 서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과 같이 외칠수 있습니다
안심시키고 소망을 줄수 있습니다 삶의 지도자로 나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영적인 지도자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친구사이에서 우리는 그 어떤 확신이 필요하고 소망과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폭풍우가 몰려오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당당히 새벽의 여명을 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사명자는 사명을 이루기 전에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사람이 쉽게 죽고 쉽게 절망합니까? 사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쉽게 낙심하고 무너지십니까? 사명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다면 쉽게 모든 것을 내려 놓치 않을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가진 사람들을 주님은 쉽게 죽게 하시거나 망하게 하시지 않으십니다 24절에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광풍은 배를 파선시키지 못했을까요? 광풍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Paul 사도를 살리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276명의 생명을 Paul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Paul은 복음을 위해서 가이사 앞에 서야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명이 있는 자는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병들어도 죽지않고, 배가 파선 하여도 죽지 않습니다. 험악한 태풍속에서도 죽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무엇이 나의 사명이며 이루어야 할 사명인가를 발견하는 것이 힘이요 능력이요 반석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슨 꿈을 여태 가지고 있습니까? 무슨 비전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왜 세상에 태어났습니까?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사명이 있을진대 무슨 사명이 있으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의 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요리문답이라는 고백서에 나옵니다
Paul의 사명은 주님의 지상명령인 복음을 땅끝까지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롬 1:15절에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고 했습니다.
Paul은 Rome로 가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죄수가 되어 배를 탄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풍이 Paul의 가는 길을 막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위해 살아왔습니까?
여러분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입니까? 여러분은 왜 직장을 다니며 사업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합니까?
여러분은 이제 직장을 은퇴하면 무엇을 하려고 하십니까?
하나님은 비전을 가진 사람을 보호하십니다. 그들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사명을 가진 사람이 그 사명을 이루도록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은 의인 한사람만 있으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렘 5:1) 소돔 고모라성이라도 의인 10사람만 있었으면 멸망시키지 아니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가슴속에 무엇이 있느냐입니다 누구를 전적으로 의지하느냐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잡지 뉴욕타임즈가 지난 1천년 동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탁월하고 영향력 있는 지도자를 선정해서 발표했습니다
바로 1533년 출생하여 1558년 25살 처녀의 몸으로 왕위에 즉위하고 45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 뒤 7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1603년도에 떠난 대영제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엘리자베스1세는 자신의 생모가 단두대에 공개 처형되었던 살벌한 공포분위기 가운데 대신들이 가장 다루기 쉽고 유약한 왕을 세우고자는 사악한 간계 가운데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큰 불안과 공포가 그녀를 엄습해왔을까요. 그가 왕에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그러나 자신이 왕위에 세워졌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엘리자베스1세는 마루바닥에 두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을 사랑하며 역사에 거룩한 흔적을 남기는 가장 훌륭한 왕으로 남게 하여 주세요.’
그녀는 범사에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지냈다고합니다
그 결과 엘리자베스1세가 치리했던 45년 동안 해적 야만국 영국은 더 이상 섬나라로 치부되지 않고 세계적인 대해상국으로 변모했습니다.
신사의 나라,영국으로 바뀌었다. 문화적으로도 영국의 르네상스라고 불리우는 문학의 황금시대를 열어냈습니다.
인류역사에 위대한 걸출한 영웅호걸이 있지만 지난 1천년 동안 가장 뛰어난 지도자는 기도의사람 엘리자베스1세 여왕이라고 사람들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광풍노도의 시기를 살면서 좀 더 거룩하고 영원한 일에 관심을 가지시고 사명을 발견하시고 오히려 위기를 관리하고 주변에 소망과 희망을 선물하시는 영적인 지도자들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