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한 마르다, 경청하는 마리아 (누가복음 10: 38-4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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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한 마르다, 경청하는 마리아 (누가복음 10: 38-4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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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한 마르다, 경청하는 마리아

201786

본문 : 누가복음 10: 38-42

38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41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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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덥고 지치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7월말 8월 초입니다 더위에 지쳐 병원에 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니 건강에 유의하셔야겠습니다

 

지난주 이번 주에 많은 분들이 바로 피서도 가고 휴가로 보내기도하면서 휴식을 보내는 분들이 많습니다 많은 일과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과 쉼을 얻고자 하는 것은 바쁜 우리의 삶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입니다

요즘 현대인들은 사는 모습을 보면 너무 힘들고 고됩니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더욱 고되지는 삶이 펼쳐집니다

20년 이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노년이 되면 여유로운 삶을 즐길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도 다 출가하고 직장이 노후를 책임지고 둘만의 시간을 보낼수 있을 것이다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평생직장이라는 기업문화가 그랬고 사회분위기도 넉넉했습니다 하지만 20년전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의 삶은 노년에도 더 많은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할마 할빠라고 해서 아이들은 이제 거의 조부모세대들의 책임이 되어버리다 시피했습니다 입에 풀칠이라고 하고 생활하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어 어디든지 나가 일해야 합니다

젊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모두가 갈수록 여유가 없어지고 분주하고 바쁘게들삽니다

그러다 보니 따라오는 것은 마음에 원망과 사회와 사람에 대한 미움과 삶의 온갖 스트레스로 탈진되어 지친 인생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휴가가 필요하고 휴식이 필요하고 마음에 평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우리의 삶을 들여다 보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평화가 없고 늘 쫒기는 것 같은 초조함이 자리잡고 있다면 이 모든 것이 사회탓이고 환경탓인가? 아니면 내가 순간순간 잘못 택하며 사는 내 탓은 아닌가?

나의 라이프 스타일은 어떤가? 내 생활방식은 어떤가?

오늘은 우리가 정신없이 사는 생활에서 하나님 앞에서 내 모습을 들여다보는 휴식같은 시간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오늘 말씀은 똑같은 환경, 같은 시간대에 분주하게 사는 사람과 고요하게 보내는 사람의 대비가 나오는 말씀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무렵에 마리아의 가정을 방문하셨습니다

38절에 보면 눅10: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마르다는 예루살렘 근처 베다니 마을에 살던 여인인데 세 식구였습니다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 삼 남매입니다 마르다 가족은 예수님의 생애 중에 가장 사랑하시고, 가까이 하셨던 가족입니다.(11:5)

 

본문의 마리아는 흔히 막달라 마리아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렸다가 예수님께 고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까지 따라갔으며, 주님의 부활을 최초로 목격한 사람입니다.

마르다는 마리아의 언니로서 자주 주님을 집에 모시고 대접하는 은총을 받았습니다.(12:1-2) 특히 오빠 나사로는 죽었다가 살아나는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오늘 주님은 마르다 가정에 오셨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럽고 행복했겠습니까?

마르다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위해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음식을 장만하고, 상을 차리고, 집안을 정돈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특히 마르다는 여주인 역할을 하느라고 여념이 없었습니다.

40절에 보면 눅10: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그런데 마르다가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예수님은 전과 같이 제자들에게 말씀을 강론하고 계셨습니다. 동생 마리아도 그 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말씀을 들었습니다.

39절에 보면 눅10: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이때 마르다는 화를 냅니다 이렇게 바쁘게 준비하고 있는데 한가하게 말씀만 듣고 있다니?

40절에 중반에 보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그러자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10: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눅10: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사실 오늘 이 말씀은 오해하기 쉬운 면이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마치 일하는 마르다를 비난하고 가만히 듣던 마리아 편을 든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그 상황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난한 것은 마르다였고 원망한 것은 마르다였습니다

하지만 누가 나쁘고 누가 잘못했느냐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이 즐겨 찾고 사랑하시던 사람들인 것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모두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문제는 삶의 방식입니다

중요한 순간에 한 가지를 택한다면 무엇을 택하겠느냐는 본질적인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 순간에 두 여인은 무엇에 더 관심이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주님을 대접하는데 더 관심이 있는가 아니면 주님자체에 더 관심이 있는가입니다

 

성도여러분! 삶을 살면서 우리는 어디에 더 관심이 있습니까?

만약에 한 가지만 하라면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답은 이렇습니다

듣는 삶, 경청하는 삶을 택하는 것이 바른 선택이고 삶의 우선순위입니다

주님의 일을 많이 하는 것보다는 주님께 가까이 가서 그 분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이 더 우선순위를 차지해야하는 것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모습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마르다는 육신을 위한 분주한 삶을 보여줍니다.

육신을 위한 삶은 보통 바쁘고 분주합니다.

육신을 위한 분주한 삶의 형태를 보면

1) 직업적인 일들입니다. 사업하느라 바쁩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하면서 열심히 뜁니다. 사업 구상하느라 바쁘고, 상담하느라 바쁘고, 자금 마련하느라 바쁘고, 공장 돌리느라 바쁘고, 납품하느라 바쁘고, 클레임 걸려서 바쁘고, 개척하느라 바쁩니다.

2) 먹고 마시는 일입니다. 우리의 일과 중에 3분의 1은 음식을 만들고, 먹고, 설걷이 하는 데 보냅니다. 특히 요새는 음식만드는 것이 대세라서 맛있는 음식 특이한 음식을 만드는데 온갖 정성을 다합니다

30분이면 먹고 끝나는 것을 2시간 이상 만들어 먹으면서 희열을 느낍니다

음식한가지 만드는데 얼마나 분주한지 모릅니다

3) 입고 치장하는 문제입니다.

어떤 옷을 입을까? 계절따라 옷 장만하느라 많은 시간을 들입니다. 요새는 입는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입고 자랑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패션과 가격과 특이성을 자랑으로 삼고 많은 시간투자합니다

여자들은 화장하고 꾸미는 일 때문에 항상 분주합니다. 하루에 한 시간씩 50년간 화장을 한다고 하면 약 18,250 시간이 걸립니다. 꼬박 21개월을 화장하는데 쓰고 있는 것입니다 또 요새는 남자들도 그렇게 치장하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4) 거주하는 문제와 자녀교육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집을 장만하는데 일생을 보냅니다. 실내를 꾸미고, 이사하고, 살림 장만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또 교육시키느라 젊은 부부들은 그야말로 뼈골이 빠집니다

 

육신을 위한 분주한 삶의 결과는 이렇습니다

이렇게 바쁘고 분주한 삶은 대개 염려와 근심을 동반합니다.

40절에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40절의 "분주"라는 말은 헬라어로 페리스파오 인데 "사방에서 끌어 당긴다"는 의미가 있는 단어입니다

즉 여러 가지가 그녀를 끌어당긴 것입니다

음식은 어떻게 차릴 것인가? 좌석은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절차, 시간, 서비스....모든 것이 일입니다. 일이 많으면 근심도 많아지고 염려도 많아집니다

 

41절의 "염려"라는 말도 "흩어지다, 나누어지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즉 마르다는 많은 생각에 갑자기 생각이 나누어지게 된 것입니다 정신이 없습니다 손이 모자랍니다 그래서 결국 이러한 염려로 인해 마침내 동생에 대한 불만으로 폭발해버렸습니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40)

마르다는 동생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은근히 예수님에게도 짜증이 났습니다 은근히 주님까지 비난했으며, 주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수고에 더 많은 가치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러한 삶의 방식이 우리를 쉬지 못하게 합니다

들을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순간에도 우리의 마음은 딴 곳에 가있습니다 내가 대접하는 그 행위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것을 완성하려고 합니다

시작은 정성의 마음으로, 좋은 생각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많은 것들이 나를 잡아당깁니다

혼자 애를 쓰고 발버둥을 치는데 완성까지는 먼 것입니다 그래서 원망을 하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심지어는 주님까지도 가르치려고 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이 바로 우리의 인생의 짜증과 원망과 비난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는 손님을 위해 하는데 손님을 괴롭히는 결과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자식을 위해 고생하는데 자식을 괴롭힐수 있습니다

내가 아내를 위해 애를 쓰는데 아내는 괴로워 할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가정을 위해 일하는데 가정이 서질 못하는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정작 내가 교회를 위해 일하는데 교회의 평화가 깨지고 비난과 싸움의 장으로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대접을 안해서인가요? 예수님을 위하지 않아서입니까?

아닙니다 가정을 위해서 시작을 합니다 교회를 위해 시작합니다 그런데 많은 일들이 나를 끌어당깁니다 그리고 그 많은 일들이 끌어당기니까 갑자기 벅찹니다 그래서 집중을 못하고 마음이 분열이 됩니다 이생각 저생각 혼자 복잡해집니다

그러다 보니 중심을 못잡고 예수님 중심이 아니라 내 중심으로, 손님 중심이 아니라 주인 중심으로, 인간중심이 아니라 일중심으로 바뀌게 되버리는 것입니다

사실 이래서 지치고 힘들고 답답하고 다 원망스러운 것입니다

 

둘째로 마리아는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그 바쁜 시간에 예수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언니가 일하고 있는 그 시점에 예수님은 말씀하셨고 마리아는 놓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릇 소리가 들립니다 음식냄새가 납니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예수님의 말씀에 빠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음성에 귀가 열린 것입니다

아마 매일 마리아가 음식은 안하고 공주 노릇만 했다면 성경에서 그녀의 이름은 빠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지금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에 그의 마음을 빼앗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난 7개월을 얼마나 정신없이 보내셨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에게 하시는 인생의 의미와 그 사명과 그 분의 인자한 말씀에 얼마나 빠져보셨습니까?

계속 삶의 갈증을 느끼면서 얼마나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듣고 싶어하고 찾고 또 찾으셨습니까?

 

조용한 시간이란 따로 낼 수 없습니다

음식 냄새가 나고 그릇소리가 들리는 현장이지만 예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리고 주님의 앞에 앉아 간구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뜻을 구하는 모습이 바로 경청하는 모습이고 조용한 삶이고 안식의 시간인 것입니다

 

정작 휴가시즌이라 쉴 것을 생각하시지만 정작은 더워서 집에도 못있습니다 나가면 온통 다 사람들로 가득차 있고 차로 거리를 메우고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또 분주한 휴가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 가운데서 주님의 음성을 찾으셔야합니다

가족들과의 소중한 시간, 교회 봉사의 진정한 감격, 내 삶의 바른 방향의 설정, 그리고 새로운 사명에로의 초대를 경험하셔야합니다

 

그것을 위해 어떤 이들은 과감하게 자신의 직위도 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이 재임하였던 7년간 상당수의 장관들이 "가족들과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장관직을 사임했다고 합니다

장관직이 가족들을 돌아보는 일보다 월등하게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은 것이지요

장관직은 나 아니라도 장관 할 사람이 많지만 그러나 아빠의 일은 내가 아니면 안되는 일이랍니다 아빠로써, 남편으로써, 부모로써, 혹은 자녀로써 지금 내가 할 역할은 다른 대역으로는 불가능하기에 결심을 하고 장관직을 내려 놓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번 더운 여름에 이런 귀한 일들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단순하게 42절에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세계적인 테너 가수인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어릴 때부터 음악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아버지는 빵을 만들어 팔던 Bakery를 하고 있었는데, 아들의 재능을 일찍부터 알고 그 재능을 키워주려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청년기를 거치면서 정작 파바로티의 관심은 음악보다는 교육 (Education)에 쏠리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에서도 교육학을 전공했습니다.

졸업 때가 되었을 때 파바로티는 졸업 후 진로 문제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파바로티는 내심 성악과 교육을 동시에 붙잡고 싶었던 것입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보려고 했던 것이지요. 그때 아버지가 파바로티의 방에 들어가 방 안에 있던 의자 두 개를 멀리 떨어뜨려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파바로티야,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의자 두 개 위에 동시에 앉으려면 너는 바닥에 떨어지고 만다. 의자에 앉으려면 반드시 한 의자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너 스스로 해야 한다." 결국 청년 파바로티는 두 개의 의자 위에 동시에 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심사숙고한 끝에 성악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성악가로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어차피 여러 가지를 다 잘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 가지를 다 잘 할 수 없을 바엔 차라리 한 가지라도 잘 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보다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15:5-7)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포도나무에서 가지와 같습니다.

가지는 한 가지만 잘 하면 됩니다. 그것은 바로 줄기에 붙어 있는 일입니다.

줄기에 붙어 있기만 하면 생명의 공급을 받습니다. 영양분의 공급을 받습니다. 활기찬 삶을 제공받습니다. 열매를 충실히 맺습니다.

만가지 일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께 열심히 붙어 있으세요.

그러면 가치있고 의미있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또 지혜도 주실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자녀손들의 장래도 약속하셨습니다

 

잠언 31, 4절에 보면 잠3:1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잠3:4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아멘!

 

이 더운 여름에 여러분의 마음이 생활의 분주함속에서 성경을 읽고 마리아처럼 주님 앞에 앉아 가까이 듣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잊어버렸던 신앙을 찾으시고 가족들이 가정예배도 드려보시고 다시 주님앞에서 나를 위한 주님의 뜻과 섭리가 무엇인지를 경청하시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원합니다

진정한 휴식은 주님 앞에서 시작됩니다

65:52절에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한 편의 시... 깨끗한 영혼 이성선

 

영혼이 깨끗한 사람은

눈동자가 따뜻하다

늦은 별이 혼자 풀밭에 자듯

그의 발은 외롭지만

가슴은 보석으로

세상을 찬란히 껴안는다

저녁엔 아득히 말씀에 젖고

새벽엔 동터오는 언덕에

다시 서성이는 나무

때로 무너지는 허공 앞에서

번뇌는 절망보다 깊지만

목소리는 숲 속의

천둥처럼 맑다

찾으면 담 밑에 작은 꽃으로

곁에서 겸허하게 웃어주는

눈동자가 따뜻한 사람은

가장 단순한 사랑으로 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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