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요나서 4: 5-11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2018년 10월 7일
본문 : 요나서 4: 5-11절
어떤 학생이 KTX열차에서 요나 이야기를 읽고 있었습니다.
옆자리 한 남자 분이 비웃듯이 물었습니다.
“학생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삼일후에 다시 나왔다는 그 얘기를 믿는가?” “그럼요.”
“어떻게 그 터무니없는 얘기를 믿을 수 있지?”
“글쎄요 자세한 것은 천국에 가서 요나에게 물어보지요 뭐.”
“그 요나라는 친구 지옥에 가 있으면 어떡하지?”
“아~ 그럼, 아저씨가 물어보면 되겠네요.” 라고 했답니다
많은 분들이 기적을 믿지 못합니다
많은 분들이 기적을 인정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사실은 우리는 기적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우리 몸가운데 심장이 쉬지 않고 뛰는 일이나 봄이 오고 가을이 되는 자연의 법칙이 오차없이 적용되고 있는 사실도 자세히 살펴 보면 모두가 다 기적입니다
우리가 생존해 있는 것도 기적이고 병들어 회복이 되는 것도 기적입니다
이번 주 신문과 인터넷 기사에 54세의 허수경 시인이 독일에서 별세했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1987년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습니다.
등단 이듬해 낸 첫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는 문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92년 독일로 갔습니다
제가 왜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독일로 간 이 분이 당시 독일에 제가 살던 Marburg 이라는 도시로 왔기 때문입니다
이분이 독일 초기에 적응을 할 때에 함께 도움을 나누었던 몇몇 사람 중의 하나가 바로 저입니다 제가 살던 도시로 왔기에 가이드도 하고 몇 몇분들과의 모임에서 함께 어학이야기, 문학이야기도 하곤 했었습니다 한국 음식을 만들어 유학생들과 같이 함께 먹기도 하고...
그런데 잊어버렸던 그 모든 순간이 신문 기사 한 줄에 갑자기 다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주마간산처럼 그렇게 그 장면들이 생각이 나는거예요 기적같은 일이 제 머릿속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아마 하나님의 나라, 하늘나라에서도 우리의 모든 삶의 장면들은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적은 우리 삶의 방식이고 삶의 현실이며 우리의 생존방식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요나서를 읽으면서 요나가 고래뱃속에 들어갔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포인트는 아닙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인간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다른지를 말씀해주시는 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것을 알게 된다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번 주는 읽으실 요나서는 짧습니다 1- 4장가지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요나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구약의 책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구약성경가운데 가장 복음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즉 구약의의 복음서라고 보시면 됩니다
복음이란 가장 기쁜 소식을 의미합니다
인간에게 가장 기쁜 소식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에게 실현되는 사건이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이 실현된 것입니다
요나는 BC 8세기의 선지자입니다 BC 8세기에는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는 시기입니다 (BC 722년 북이스라엘 멸망)
앗수르는 세계 최초의 제국을 건설한 나라이고 제국후기의 수도가 니느웨인 것입니다
19세기의 수많은 회의론자들이 성경의 나오는 앗수르 기록이 허구라고 의심하였는데 1849년 티그리스 강의 범람으로 2천년 이상 토사로 덮여있던 니느웨의 유적들과 바벨론의 유적들이 발굴되면서 세상에 그 역사적 진실의 모습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유적지의 현재 명칭은 이라크의 모술(바그다드에서 400Km 떨어진 곳입니다)입니다
모술은 IS의 최대 본거지였고 작년2017년 7월에 이라크 정부군에 의해 다시 탈환된 지역입니다
앗수르 관련 유물은 대영박물관에 현재 1,106점 이상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남유다의 조공 기록, 앗수르의 전쟁 승전 기록등
다시 말하면 성경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이 확인된 것입니다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요나서의 내용을 간단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회개의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앗수르는 원수의 나라인지라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가다가 큰 풍랑을 만나게 되고 마침내 선원들에 의해서 바다 속에 던져지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요나를 위해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고 결국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3일간 들어가 있다가 그 속에서 하나님 앞에 처절한 회개를 하였습니다.
이 후 요나는 죽음의 늪에서 극적으로 구출되어 니느웨로 향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외쳤는데, 니느웨 백성들은 그의 메시지를 듣고 즉각 회개하고 멸망을 면하게 됩니다.
그러나 요나는 니느웨가 멸망을 당하지 않고 구원받은 사실로 인하여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더 나아가 그는 니느웨 성 동편에 앉아서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서 성읍이 언제쯤 망할 것인가를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요나에게 박 넝쿨을 만들어서 더위를 피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박 넝쿨은 오래가지 못하고 벌레가 갉아서 하루만에 시들어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더위를 피하게 해 주었던 그 박 넝쿨이 없어지자 다시금 뜨거운 태양이 내리 쪘습니다. 거기다가 뜨거운 동풍까지 불어오게 되자 참다못한 요나가 하나님을 원망하며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하며 자신을 죽여달라고 간구하는 요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까지의 사건입니다
왜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기까지 니느웨가 망하기를 바랬을까요?
그 이유는 이랬습니다
기원전 6,7 세기에 니느웨라고 하면 침략을 일삼는 세력의 중심지였습니다.
앗수르 사람들은 '앗수르'라는 수호신을 극도로 숭배했는데 앗수르신은 전쟁신,
군신(軍神)이었습니다. 이 앗수르는 유다와 이스라엘도 자주 침공했고 나중에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합니다 그리고 얼마나 잔인한지 노예로 잡아 사람들을 끌고 갈때에는 사람의 가죽을 벗겨서 끌고 갔을 정도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우리가 일본을 생각하는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일본을 미워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나 넌 크리스천이나 같다고 봅니다
일본이 태풍으로 고통을 받고 지진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도 우리는 속이 시원해 하기도 합니다 죄값이 많아서 그런 것이라고 고소해 하기까지도 합니다
이런 마음은 국가대 국가뿐만이 아닙니다
개인과 개인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뭔가 틀어지고 마음에 안들면 우리는 그 사람을 비난합니다 그리고 나쁜 일이 생겼으면 하고 기도까지도 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이런 일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별것 아닌데도 당시에는 그 인간! 망했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심사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자기중심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바로 요나는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민족주의자의 대표적인 상징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할만큼... 반대 방향으로 배를 타고 도망갈만큼 그렇게 자신의 배타적이고 자의적인 판단에 따른다는 점입니다
니느웨성을 회개 시키라고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는데 망하기를 바랬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불완전한 인간들이 가지는 단편적 삶의 자세입니다
거기에 비해 하나님은 다른 성품과 마음을 가지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요나서는 주제는 요나의 불순종이 아니라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하시려는 말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가 믿음생활을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의 세계를 초월하는 영의 세계, 천상의 세계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하나님의 생각이 즉 섭리라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큰 세상을 만나면 쉼을 얻습니다 마음이 넓어집니다
큰 스승을 만나면 진실해지고 겸허해지고 나의 초라함에 몸서리칩니다
이어령 교수님이나 김형석 교수님의 글을 대하면 그 깊이에 보잘 것 없는 내 생각을 읽게 되는 것입니다
산을 타시는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높은 곳에 이르러서 산야를 바라보면 숨통이 틔인다고 말합니다
많은 고난과 험한 인생의 계절을 겪고 나면 초연해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의 모습만 봐도 숨통이 틔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옳은 이야기를 해도 아무리 정당한 논리로 자신을 변호하여도 작고 보잘 것 없으며 편파적이고 하나님의 마음에 억만분의 일로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한가지 중요한 포인트인 하나님의 마음의 넓이를 읽어야 할 것입니다
다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욘4: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욘4: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 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현대어 성경으로는 이렇습니다
욘4:10 그때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수고도 하지 않았고 네가 키우지도 않았고 그저 하루밤 사이에 나타났다가 하루밤 사이에 사라진 저 박넝쿨 한 포기에 대하여서도 슬퍼하고 있다.
욘4:11 그렇다면 좌우를 구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십이만 명 이상이나 있고 수많은 가축들이 있는 저 큰 도성 니느웨에 대해 어찌 내가 슬퍼하지 않겠느냐 ?'
여기서 좌우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은 편협하고 이기적이며 악한 세속의 삶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저들까지도 아끼신다는 말씀입니다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이미 창세기 12장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창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출애굽기에서는
출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출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우리를 택하신 이유는 그들을 하나님에게로 인도하는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라고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33: 11절에서는 이렇게까지 말씀하십니다
겔33:11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그렇습니다
그럼으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분명하게 읽어내야 할 것입니다
첫째는 우리 자신을 아끼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즉 하나님과 가깝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긍휼이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떠난다 해도 우리 주님은 나를 버리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설령 벗어난다고 해도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설령 죄를 범한다고 해도 돌이키게 하시려고 나단을 보내시고 돌이키게 하신 후 사함을 선포하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에 우리 인생의 쉼표가 있고 살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계산과 수치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오차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자동차의 그 많은 부품이 하나라도 빠지거나 ㅊ오차가 생기면 그 자동차는 사고가 나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도 그렇게 요구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아랫사람을 대할 때 그렇습니다
약한 사람을 대할 때 그렇습니다 계약관계를 맺을 때 그렇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쉴 때가 없고 지치고 탈진하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계약직을 사람을 뽑으면 죽도록 일을 시킵니다 그러다 익숙해지면 나가게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을 쓰면 그만입니다
인간은 머리둘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그대로 받으십니다 우리 하나님의 마음은 무한히 넓어서 예수앞에 나오면 살길이 열리고 쉼이 있고 위로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주님앞에 해결책이 있고 숨을 곳이 있고 살길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몰지 않으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거부하지 않으시고 초라한 탕자를 보자 달려나와 맞이하시는 그 큰 하나님의 넓은 사랑과 마음으로 들어오시길 기도합니다
둘째는 우리 하나님은 내 원수도 아끼시는 분이십니다
마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사실 우리가 이렇게 믿기 어렵습니다
롬12: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잘 안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불의한 자도 악인도 아끼신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요 돌아올때가지입니다
회개하고 자복하고 돌아올때까지 ..
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교도소를 선교하러 다니고 원수를 위해 가슴앓이하며 기도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심령의 쉼이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미움이 가득할 때, 분노가 가득할 때, 그리고 원수의 망하기를 위해 간절해질 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보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아! 하나님은 기다리시겠구나 아 하나님은 저 사람에게도 복음이 들려지기를 바라시는구나 ....
그러면 나에게 찾아오는 축복이 있습니다
1)여유입니다 2) 기도입니다 3)마음의 평화입니다 4)원수가 나에게 사죄하는 기회가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딤전2:4절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니느웨가 멸망하기를 바랬던 요나가 하나님의 인내와 그들을 긍휼히 여기심을 깨달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큰 마음을 헤아려 보는 시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찬양하시겠습니다
우리 보좌 앞에 모였네 함께 주를 찬양하며
하나님의 사랑 그 아들 주셨네 그의 피로 우린 구원 받았네
십자가에서 쏟으신 그 사랑 강같이 온 땅에 흘러
각 나라와 족속 백성 방언에서 구원받고 주 경배 드리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께 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