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욕망의 틈을 메꾸는 방법 (사무엘하 12: 1- 6 절)
이성과 욕망의 틈을 메꾸는 방법
2018년 9월 9일
본문 : 사무엘하 12: 1- 6 절
이번 주는 2차 성경 통독 2번째주입니다
읽으실 말씀범위는 사무엘하서 11장부터 24까지와 열왕기상 1-2장까지의 말씀입니다
내용은 다윗의 인간적인 모습과 죄를 범하는 장면,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노년에 겪는 고통 그리고 죽음과 솔로몬 왕의 후계등의 과정이 나옵니다
한 사람의 삶을 살펴보면 참으로 다양한 세계가 펼쳐집니다 우여곡절도 많습니다 수고도 많습니다 눈물도 많습니다 100년 200년의 인생도 아닌 짧게 지나가는 삶인데 그 과정은 정말 다양한 심산 유곡의 삶이 펼쳐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시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이번 주 말씀을 읽다 보면 다윗도 정말 파란 만장한 세월을 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권력자인 평범한 사람이든, 배운 사람이든 못 배운 사람이든 동일하게 죄를 짓고 슬픔을 당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 온갖 걱정과 근심속에 살다가 안개처럼 사라지는 모습을 다윗의 생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우리야 장군의 아내 밧세바를 권력자로서 취하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충성스러운 우리야 장군을 차도살인 즉 남의 손을 빌어서 죽이는 장면으로 11장이 시작됩니다 그것을 하나님은 하늘에서 지켜보셨습니다 그리고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경고를 하십니다
그런데 나단 선지자는 지혜롭게 비유를 들어 하나님의 마음을 전합니다
양과 소가 심히 많은 사람이 있는데 손님이 왔습니다 그런데 손님대접하는데 자기 양을 죽이는 것이 아까워서 작은 암양새끼 한 마리를 키우는 가난한 사람의 양을 가져다가 잡아 손님을 대접하였다고 비유를 풀어갑니다
그러자 다윗은 그 이야기를 듣고 노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행한 사람을 정죄합니다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그리고 양 새끼를 네배나 갚아야 한다고 대노합니다
그런데 그때 나단 선지자가 단호하게 말합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삼하12:9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는 삼하 11-12장을 읽으실 때 두 가지 입장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첫째는 다윗의 마음으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둘째는 나단선지자의 마음으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나단 선지자의 마음으로 다윗을 판단하고 정죄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고민은 다윗의 입장에서 시작됩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리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자신의 죄는 엄청나게 큰 죄일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관적이고 욕망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의 죄는 크게 보이지 않았고 덮어지면 끝이 나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즉 즉 남의 한 마리 양을 빼앗은 부자는 죽을 자라고 분노하였지만 정작 자신의 죽을 죄는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더 크게 분노하고 화를 발했던 것은 어떻게 보면 자신의 어두움을 감추려는 행위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자신이 하면 로맨스라고 합니다 이를 줄여서 남불내로라고 하기도 합니다 1970년대 소설에도 자주 나오던 말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표현도 있습니다 내가 부동산을 하면 투자, 남이 사면 투기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는 진영논리에 사로잡힌 정치적 극단주의자들이 이런 행태를 자주 보여왔습니다
현재까지 많은 예가 있는데 정치인들의 이런 발언들을 모은 글을 읽다보니 속이 터져서 옮기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 개인이 종종 이렇게 살아갑니다
우리는 자주 우리 자신의 욕망과 죄의 행동을 합리화시킬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쩔수 없었다 그 시대는 다 그랬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자리가 바뀌면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좌쪽에 있을 때는 문제있다고 공격했는데 우쪽의 입장으로 와서는 그것이 무슨 그렇게 큰 문제이냐고 말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우리의 욕망과 욕심은 이성을 넘고 상식을 넘어설 때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동가식 서가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 제나라에 은교라는 매우 영특하고 아름다운 처녀가 있었답니다.
은교에게는 여러 곳에서 혼담이 쏟아져 들어왔으나 모두 탐탁치 않아 거절하고 있던 중 마침 적당한 후보자가 그것도 두 군데서 한꺼번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동가의 아들 견법이는 재산이 많았으나 인물과 예절이 형편없었으며 서가의 아들 해우니는 핸섬한 미남이었으나 가세가 넉넉치 못한 것이 흠이었습니다
은교는 고민을 합니다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 친구 나눔이 요처녀가 이렇게 조언을 합니다 둘다 잡으라 그리고 아버지 앞에 와서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동가 견법이 집에서 밥을 먹고 서가 해우니집에 가서 잠을 자고 싶어요!」 그래서 나온 말이 동가숙 서가식이란 말입니다
인간이 욕심과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자신과 관련이 되는 한 모든 이성과 상식은 일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1)남의 이런 모습을 보자니 속이 타고 분통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2) 그리고 비로서 깨닫게 되면 자신의 이중성에 비참함과 수치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3) 또한 비참함과 수치가 합리화라는 도구로 가리워지면 철면피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을 양심에 화인맞았다고 표현하십니다
바로 여기 이러한 간극에서 인간이 모든 고통과 눈물이 시작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윗왕은 도덕적 기준이 있었습니다. 윤리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죄를 짓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 주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겸허하게 우리의 본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축복된 삶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성과 그리고 자신의 욕망의 그 가운데서 우리는 온전히 균형을 잡을 수가 없기에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성실하게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존전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한 개인에게 벌어지는 수치와 비참함을 조절하고 남에게는 관용과 선대함을 나누기를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다윗은 정말 겸손한 사람이고 존경할 만한 인생의 선배입니다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졌고 우리와 동일하게 판단이 흐려지는 사람이었지만 다윗이 신앙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다음의 2가지 모습에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첫째는 다윗은 돌이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삼하12: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나단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 바로 엎드립니다 그리고 인정합니다 돌이켜 봅니다 내가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바로 인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나르시스적인 성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죄성에 기인하는 것인데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는 경향성을 말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타나는 나르시스는 호수의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 반해 버립니다. 나르시스는 물에 비친 아름다운 자신의 얼굴에 반해서 하루 종일 그것만 쳐다봅니다. 어느 날 입맞춤을 하려 하다가 그것이 자기 자신의 반사된 모습인 것을 알아차린 그는 슬픔에 빠져 칼로 자살을 합니다. 그리고 그가 죽은 자리에서 꽃이 피어났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기애, 자기 도취증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합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은 다 정당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사건을 두고 TV에 나와 토론하는 것을 보면 그런 것을 보게 되지 않습니까?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성이 없습니다.
늘 자신은 옳고 바르게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죄와 실수에 대하여는 관대하고 너그럽게 미화시킵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의 대다수는 거의다가 잘못을 지적당했을 때 그것을 용납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왜냐하면 내가 옳고 바르기 때문에 내 기준을 벗어나면 다 나쁜 놈이라고 해야 내가 정당화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갈등이 여기서 시작되는데 상대방도 그렇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 벌어진 틈에서 복수가 나오고 강압이 나오고 매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래서 짧은 인생이 수고와 슬픔뿐인 것입니다
다윗은 다르게 반응하였습니다
내가 죄를 범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사실 다윗은 이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때입니다
누가 감히 바른 말을 할수 없었던 때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당신이 그 사람이다 ,그 바쁜 놈이라고 말할 때에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자신을 돌이키게 됩니다
그때 쓴 시편이 시편51편입니다. 시편 51편의 표제를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시,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저에게 온 때에”.
시편 51편에서 중요한 것은 다윗의 돌이키는 회개입니다.
그는 왕으로서 자신이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변명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남자가 다 그렇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내가 범죄하였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시51편에서 “나, 내가”라는 말을 26번이나 쓰고 있습니다.
3절, 시51:3,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절, 시51: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5절, 시51:5, ”내가 죄악중에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나를 죄중에 잉태하였나이다“. 그는 한번도 ”우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아니라 ”내가 죄를 지었고 내가 내 죄를 알고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습니다“.
그는 죄를 지어 유감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쩌다 실수해서 죄를 지었다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지은 죄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우발적으로 한번 지은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말합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 본래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지었다고까지 고백합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시51:7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그리고 비로서 깊은 회개로 들어갑니다 내가 행한 죄 때문에 상한 심령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시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여기서 상한 심령은 누구의 심령입니까?
1) 우리야 장군의 억울한 죽음에서 나오는 비통함의 심령입니다
2) 남편에 미안하고 졸지에 남편을 잃고 흘리는 한스러움의 심령입니다
3) 하나님 아버지의 심령입니다
들판에서 양치는 다윗을 세워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 하나님 나라,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주셨건만 하나님의 뜻을 떠나 멀리멀리 갔던 모습을 보셨던 아버지 하나님의 애통한 마음 것입니다 이것을 비로서 다윗은 깨닫습니다
그리고 삼일밤 삼일 낮 동안 침상을 적시며 울고 돌이키고 회개를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는 다 죄인입니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이러한 진실을 깨닫고 돌이킴을 연습하고 죄를 멈추고 욕망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을 성경에서는 회개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러한 돌이킴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회개를 받아들이십니다
오늘 이 시간 다윗의 돌이킴의 은총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다 당신이 나쁜 놈이라고 ...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다
라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릴 때 우리는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278장에 이런 찬송이 있습니다
1. 여러해 동안 주 떠나 세상 연락을 즐기고 저 흉악한 죄에 빠져서 그 은혜를 잊었네
2. 죄악에 죽을 인생을 심히 불쌍히 여기사 저 하늘의 영광 버리고 이 세상에 오셨네
3. 홍포를 입은 구주는 가시 면류관 쓰시고 저 십자가 높이 달리사 그 아픔을 참았네
4. 미련한 우리 인생은 주의 공로를 모르고 그 쓸쓸한 사막 가운데 늘 헤매고 다녔네
[후렴]
오 사랑의 예수님 내 맘을 곧 엽니다 곧 들어와 나와 동거하며 내 생명이 되소서 아멘
둘째로 다윗은 하나님의 죄악 다스림을 받아들였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선언합니다
삼하12:14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그리고 정말 밧세바가 낳은 아이가 앓게 됩니다
이때 다윗이 금식하고 울며 통곡하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틀 만에 아이는 죽습니다 아이가 죽자 다윗은 옷을 갈아입고 음식을 먹기 시작합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이때부터 더 슬퍼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신하들이 묻습니다 어찌하여 살아있을 때 금식하고 우시더니 아이가 죽은 후에 일어나서 잡수시니이까?
다윗이 대답합니다
삼하12:22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 이거니와
삼하12:23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즉 하나님의 죗값을 치르시는 것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에 모든 상황을 맡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를 인정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신앙이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죄를 짓고도 큰 일을 당하면 억울해 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세상을 비난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슬픔으로 세월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새롭게 정리하고 준비합니다
삼하12:20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 명령하여 음식을 그 앞에 차리게 하고 먹은지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모든 죄는 수치입니다 고통입니다
그리고 죄의 결과는 비참함입니다 한스러운 좌절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여 죽게 하심으로 그 흘리신 피로 우리의 죄값을 치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로 새 옷을 입게 만드신 것입니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럼으로 우리는 어떠한 슬픔과 죄의 그림자에서 해방을 경험하시는 것이 신앙생활의 힘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앞에서 죄의 고통을 인정하고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이제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하나님 말씀앞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대로 사는 삶이 신앙생활입니다
돌이키고 멈추는 삶의 단계를 넘어서 성령의 생명의 법대로 충만하게 사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을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 바로 다윗의 건강한 하나님 사랑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