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가벼워지는 인생 (전도서 2: 24-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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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가벼워지는 인생 (전도서 2: 24-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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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가벼워지는 인생

2018211

본문 : 전도서 2: 24-26

 

낙화 라는 조지훈의 시입니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청록파 시인 조지훈이 1946년 발표한 '낙화(落花)'라는 시입니다

스무살 때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강원도 산속에 머물며 지었다는 자유시입니다

 

이 시를 감대중대통령시절의 2인자였던 박지원씨가 2003년 수갑이 찬 채로 구속되면서 인용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꽃이지기로 바람을 탓하랴 ...

우리는 지난 30여년간 여러정권이 바뀌면서 꽃이 질 때 발생하는 권력의 허무함과 무상함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자주 목도하여 왔습니다

비단 권력을 가진 사람들만 이겠습니까?

 

우리의 물질과 우리의 청춘도 마찬가지이지요

어느덧 5년이 흐르고 10년이 흐르고 30-50년이 화살처럼 지나가 버리고 꽃의 아름다움은 흔적도 없이 추억으로만 남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허무입니다 무상입니다

 

어느 책을 보니까 우리 인간이 철들면서 심각하게 사로잡히게 되는 심리 현상의 하나가 허무감이랍니다

 

중국의 유명한 두보라는 시인은 맹자와 논어에 심취해 있다가 공자의 무덤을 본 뒤에 이렇게 말했답니다. "공자도 죽고 맹자도 죽었는데 유학은 공부해 무엇하나?" 유학의 길을 연 공자도 유학을 집대성한 맹자도 다 덧없이 죽어갔는데 그들이 남긴 유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죽음의 허무를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저는 지독히도 추우었던 이번 한달동안 거의 매주 장례식장을 다녀왔습니다

교인, 지인들의 삶의 뒤안길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나뿐만 아니고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저렇게 죽음의 길로 가게 될 텐데...

'인생이 이토록 덧없는 것인가? 땀흘려 돈을 번들 다 놓고 갈 것인데 그 무슨 소용인가? 애써 권력을 잡은 들 언젠가는 물러나야 할 텐데 또한 그 무슨 소용인가? 다 헛된 것 아닌가?'

이런 무상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난간 한달이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무상함과 허무함이 밀려올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대개 다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잠시 가슴앓이를 하다가 이내 잊어버리는 경우입니다.

허무감에 안타까워하고 쓸쓸해 하다가 툴툴 털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아무리 고민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런 상념에 사로잡혀 있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 그런 거지 뭐 다 그런거야...' 묻어두고 넘어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묻어두고 넘어가면 어느 순간에 또 다시 똑 같은 허무감이 밀려오게 되고 또 그 쓸쓸함에 그 허망함에 시달리게 됩니다.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고 뒤로 미뤄둔 것일 뿐입니다.

 

둘째는 이 허무감에 사로잡혀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이 사람은 이 허무한 생각으로 인생 전체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소위 허무주의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니체라는 철학자는 초인을 이야기하면서 이 허무감을 극복하려고 몸부림쳤지만 결국 이 허무주의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많은 지식인들이 이 허무주의의 늪에 사로잡혀 자살의 길을 택했습니다.

니체가 그랬고, 헤밍웨이가 그랬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같은 고민에 빠져 이들의 길을 따라나서고 있습니다.

셋째는 이 허무주의를 근본적으로 극복하고 이겨내는 경우입니다.

그 대표가 오늘 본문을 쓴 전도서 기자, 바로 솔로몬입니다.

우선 솔로몬은 이 인생의 무상함과 삶의 허무감을 정말 심각하게 느꼈습니다.

삶 전체로 이 허무감과 씨름했습니다.

1:2절를 보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인생을 헛되다고 본 것입니다.

 

전도서에서 이 헛되다라는 말을 36번이나 사용하고 있는데 이 말은 히브리어로 '하발'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증기 또는 김이라는 말에서 왔습니다.

창틀에 서리는 김과 같고, 끓는 주전자에서 뿜어 나오는 증기 같다는 뜻입니다. 인생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주전자에서 뿜어 나오는 증기가 순식간에 공중에 퍼져서 사라지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그렇게 잠시 잠깐 보이다 사라지는 안개같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창틀에 서린 김이 햇볕에 자취도 없어지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있는가 하면 어느새 사라지는 그런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솔로몬은 국가의 대 사업을 일으켰고 지혜도 탁월했고 술과 여자와 향락에 온 정열을 쏟아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전 1:14을 보면 1:14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라고 고백합니다

돈을 벌려고, 권력을 잡으려고, 성공하려고 몸부림쳐보지만 다 헛수고라는 것입니다. 잡은 것 같으나 빠져나가고 올라선 것 같으나 곧 추락해버리는 자신을 보고 몇 번이나 허무하고 몇 번이나 허망해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속에 묻혀버리지 않았습니다

살면 살수록, 허무하면 허무할수록 무거워지고 버거워지는 인생인데 그는 그 무거운 인생의 짐에서 빠져 나왔던 것입니다 그 허무감을 결국 이겨냈습니다.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는 길.. 갈수록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이 아니라 가벼워지는 삶...

오늘 본문을 자세히 묵상해 보면 솔로몬이 허무감을 떨쳐 버릴 수 있었던 두 가지 이유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2:26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두 종류의 사람의 모습이 나오는데

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이고, 2) 죄인으로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라는 깨달음을 갖게 되면서 이 허무감을 극복할 수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을 다시 발견함으로써 허무를 극복하게 되었고 무거운 인생살이에서 가벼워지는 은총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인생을 허무하게 생각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자신을 잘못된 관점에서 보기 때문입니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라는 단편 소설을 보면 주인공이 가을에 떨어지는 잎새를 보면서 자신의 인생을 생각합니다.

'내 인생도 저 떨어지는 잎새처럼 죽음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고 마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허무감에 빠져버립니다.

자신의 인생을 낙엽이 떨어지는 관점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과학계에서는 게놈 프로젝트를 완성시켜서 우리 인간의 DNA 지도를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지도를 보면 우선 우리 인간의 염색체 수가 체파리의 염색체 수의 2.5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DNA 구조도 원숭이나 유인원의 DNA의 구조에 비해 부분적으로는 복잡하고 나아 보이지만 그렇게 월등히 나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일리노이 대학의 해부학 교수 해리 멘센트 박사는 인체를 화학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칼슘이 2.25 kg, 인산염이 5g, 칼륨이 52 g, 유황이 168 g, 옥소. . 동이 28 g, 그리고 체중의 65%가 산소, 18%가 탄소, 10%가 수소, 3%가 질소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화학약품 값으로 따져보았더니 합이 7달라 28센트 우리 돈으로 겨우 8천 원 남짓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물질적 가치로 볼 때 8천원 밖에 안된다는 것입니다. 허무한 것이지요

그러나 묻습니다 우리의 정신적 가치가 우리 인생의 모든 노고가 8000원의 가치만도 못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어느 문학가가 보여주는 것처럼 떨어지는 낙엽처럼 한 번 가면 그만인 존재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언어가 표현하는 글이 말하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그 무엇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귀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나니 그는 삶이 인생관이 달라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창세기 인간 창조 기사를 읽어보면

창세기에 보면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창 2:7을 보면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말씀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실 때 우리에게는 다른 피조물에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넣어 주셨고, 생기를 불어 넣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낙엽과 같을 수 없고, 우리는 체파리와 같을 수 없고, 원숭이와 같을 수 없습니다. 과학자의 눈에는 이 하나님의 형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느 문학가의 눈에도 이 하나님의 형상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직 신앙인의 눈에만 보입니다. 하나님을 만났을 때 예수님을 만났을 때 비로서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정확하게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주님은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우주보다 더 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를 기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성도 여러분! 죄짐에 눌려 있든 인생의 짐에 울려 있든, 아니면 소외된 삶을 살든,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존귀하게 여긴다

43: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혹시 성공하지 못한 인생을 사시고 있다고 생각하시거나 뜻 한번 펼치지 못하고 초라하게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세상의 기중으로 볼 때 대단한 인생이나 나의 인생이나 매한가지입니다

아니 오히려 주님을 알고 있는 내가 더 귀한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나를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시고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사랑하신 존재들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며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스바냐 3:17절에서 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나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낙엽보다 못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면 천사도 감당치 못하는 존귀하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세속의 관점으로만 우리를 평가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창조의 관점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속하시고 영화롭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인하는 인생, 확신하는 삶은 점점 빛을 느끼고 가벼워지고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같이 듣겠습니다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힘 전혀 없을때에

조용히 다가와 손잡아 주시며 나에게 말씀 하시네

 

나에게 실망하며 내자신 연약해 고통속에 눈물흘릴때에

못자국난 그 손길 눈물 닦아주시며 나에게 말씀하시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언제나 변함없이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십자가 고통 해산의 그 고통으로

내가 너를 낳았으니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둘째, 삶의 의미를 발견했기 때문에 허무를 극복했습니다

삶의 의미를 발견할 때 허무는 극복됩니다

본문에 보면 2:24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솔로몬이 땀 흘려서 일하고 그 대가로 먹고 마시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보람을 찾아 기쁨을 누리는 것 그것도 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고 깨달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자신이 인생의 목적을 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몸부림치지만 그것을 이루기도 쉽지 않고, 이룬 후에 보람을 느끼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보니까 이 또한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왜 은혜로 주셨을까요?

인생의 사명을 위해서입니다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부귀영화를 누리고 인생의 무상함의 깊은 바다속에 빠졌던 솔로몬은 그 의미를 발견하고 허무를 극복한 후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3: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3:14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깨닫고 그 거룩하심에 경외를 표현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즉 우리의 존재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찬송을 부를 때 우리의 삶은 보람도 생기고 기쁨도 생기는 것입니다

땅의 것을 추구하면 땅의 것만 얻게 되지만 하늘의 것을 추구하면 하늘의 것을 얻게 됩니다

우리 인생의 종착역은 허무가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이고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당면한 고통의 시간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14: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그렇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삶이 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삶입니다

올 한해 나에게만 집중하던 삶에서 한단계 신앙적으로 성장하셔서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사도바울의 인생을 살면서 갈수록 가벼웠던 발걸음의 고백을 읽어보시겠습니다

2: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2: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갈수록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에 초점을 맞추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나 주님 앞에 섰을 때

아무 것 없음이 드러났네

겸손하라셨으나

홀로 자고했고

성실하라셨으나

게으르고 무익했네

마음을 쏟았던 것 주님 일 아니었네

나 주님 앞에 엎드려 바라오니

여린 마음 가진 자 되게 하시고

열린 마음 가진 자 되게 하시고

성도와 어려움을 부러 나누며

찬양으로 당신께 감사드리는

마음에 작은 천국 이루게 하소서

모든 말을 당신께 하듯

모든 일을 당신의 일처럼

생애 바쳐

당신의 일 힘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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