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성전을 세우려는 에스라 (에스라 7: 6~10절) 2019년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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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성전을 세우려는 에스라 (에스라 7: 6~10절) 2019년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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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성전을 세우려는 에스라

2019317

본문 : 에스라 7: 6~10

 

흔히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일을 할 때 3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봅니다

1)당장의 앞의 것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있고

2)장기적으로 멀리 보며 일하는 사람이 있고

3)영원한 것을 추구하며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영원히 갔으면... 그래서 재산을 투자를 하고 전부를 쏟아붓곤 합니다 비싼 다이아몬드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런 것이며 금을 추구하는 이유도 오래가고 영원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의 모든 것은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인간은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까?

인간은 우주보다 넓고 바다보다 깊은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깊고 넓고 큰 공간을 채우려면 영원한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많이 갖는 것을 욕심이라고 하고 탐욕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아무리 많은 것을 쏟아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우리의 영혼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 깊은 공간에 영원한 것을 채우려는 본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인간됨인 것입니다

참된 인간성은 착함도 겸손함도 아닙니다

오직 영원한 것을 담고 사는 사람이 참된 인생이 되는 것이며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영원한 것을 담는 사람이 되려면 영원한 진리를 배우고 익힌 사람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래가는 것을 넘어서서 영원히 가는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다른 차원입니다 이것은 하늘의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진리를 붙잡고 예수님을 인생의 구주로 영접한 사람만이 영원한 것을 알고 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영원한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오래가는 것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은 영원한 나라 영원한 삶을 추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생을 얻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카이로스의 시간을 통해 지금 이 시간 우리의 삶에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그럼으로 무엇을 하든지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시고 우리의 삶의 여정속에서 가정도 그리고 나의 인생도 영원한 길에 올려놓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3월 첫주에 말씀드린 대로 당시 역사를 보면 바벨론 포로 이후 70년이 지나 제국이 바뀝니다 페르시야라는 나라가 바벨론을 넘어서서 더 넓은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바벨론은 중앙집권적인 정책을 폈다면 페르시야는 지방 분권적인 정책을 펼쳐서 주권을 빼앗긴 나라들에게 자치 권한도 주어 제국의 안정을 꿈꾸는 정책을 펼쳐 갔습니다

그때 포로로 끌려 갔던 유다인들을 본국으로 돌려 보내는데 3차에 걸쳐 귀환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1차는 주전 537년에 바사의 유다지역 총독인 스룹바벨과 제사장 예수아가 49,897명을 데리고 성전재건을 목적으로 귀환하게 됩니다.

스룹바벨은 바벨론 포로 유대인의 후손이고 페르시야의 유대지역 총독이었습니다

2차귀환은 주전 458년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교육을 목적으로 하여 1,754명을 데리고 유다에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3차귀환은 주전 445년에 유다지역 총독으로 자원하여 온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건축을 목적으로 하여 귀환하게 됩니다

1차와 2차 사이에 지난주에 설교한 에스도 왕후의 사건, 즉 부림절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제 페르시야 사람들에게 신망을 얻은 유다인들은 2차로 귀한하게 되는데 바로 오늘 읽은 본문에 나오는 에스라 선지자가 그 지도자입니다

 

에스라는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으로 당대에 학문에 능통할 뿐 아니라 율법에도 익숙한 학자였습니다. 학사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크세르크세스왕)의 전권을 위임 받아 1,754명의 유대인들을 이끌고 2차로 귀환을 하게 됩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1500Km 정도 되는 먼 거리입니다.

7:9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에스라는 귀환 행렬을 이끌고 멀고 아주 위험한 여정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4개월 동안 걸어서 무사히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그렇게 귀환한 학자이자 선지자인 에스라는 장기적으로 멀리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영원한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한 결심이 오늘 말씀에 나옵니다

7: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와서보니 스릅바벨이 만든 성전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외형적인 성전은 잘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삶은 전혀 달랐습니다 오랜 세월 불신앙과 우상숭배로 인해 성전은 찾아오나 삶의 실천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솔로몬 성전이 약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화려했습니다 멋있었습니다 찬란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마음은 화려함과 찬란함속에 말씀은 없고 우상숭배와 탐욕으로 가득차 버렸던 것입니다

영원한 말씀이 사라지니 큰 성전속에 찾아든 것은 우상숭배와 탐욕과 분열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나라는 둘로 갈라지고 결국은 앗시리아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만 것입니다

패망의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고 성경을 연구한 에스라는 회복을 꿈꾸며 본토로 돌아 왔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왔습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성전보다 영원한 성전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고 율례와 규례를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보이는 것에 많이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체면을 생각하고 화려함을 좋아하고 큰 것을 선호합니다

명품을 좋아하고 잘사는 것! 잘되는 것! 잘 나가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삶의 낙이고 인생의 낙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에 더욱 많이 신경을 쓰는 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교회도 그런 경향들이 은연중에 많이 있습니다

교회도 크고 화려하고 사람도 많이 모이는 것 좋아합니다 큰 교회 교인들은 마치 교회의 일등 시민처럼 그렇게 의기양양한 것을 봅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정말 많은 긍지와 자랑을 가지고들 삽니다

 

그런데 실제 삶을 살펴보면 부끄러운 수치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부끄러운 세계 제1위가 10가지 있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1. 정치 싸움이 세계 1위입니다. 2. 직장인 스트레스가 아시아 1위입니다.

3. 1인당 주량이 세계 1위입니다. 4. 거짓말과 소송이 세계 1위입니다.

5. 1인 당 흡연량 세계 1위입니다. 6. 뇌물 주고 받기 세계 1위입니다.

7. 40 대 남성 사망율 세계 1위입니다. 8. 음주 운전 세계 1위입니다.

9. 교통 사고율 세계 1위입니다. 10. 교회 교인 싸움 세계 1위입니다.

(버스안에서 중년남자 둘이서 밀었다고 서로 싸우더랍니다 언성이 높아집니다 그러나 앉아 있던 또래의 다른 남자가 이러더랍니다 버스안에서 조용히 좀 합시다 여기가 교회인줄 아나..!! 소리지르고 싸우게...)

세상사람들에게 비쳐지는 우리 신앙인들의 모습은 세상 기준보다 못한 경우도 종종 많이 있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삶의 중심에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추가 되어서

우리의 삶을 이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바로 내 모습이고 내 언어이고 내 행동인 것입니다

에스라는 유다땅 이스라엘에 와보니 스룹바벨 총독이 성전을 겨우 잘 지어놨는데 백성들의 삶에는 건물만 있지 말씀이 없었습니다

본능만 있었고 세속의 풍류만 있었습니다 우상숭배와 인간의 추함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영원한 성전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벧전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벧전1: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에스라가 결심한 것은 3가지입니다

첫째는 성경공부를 하기로 한 것입니다

7: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여러분! 신앙생활은 기본적인 틀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잠언10장을 보고 내일은 이사야서 40장을 읽고 ... 그렇게 제비뽑기 하듯이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이 뜻, 하나님의 경영,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낼 수가 없습니다

대부분 하나님의 말씀을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자기 중심적으로 편협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각과 뜻을 헤아리게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말씀을 통해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하는 차원을 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면 내 뜻은 더 크신 하나님의 뜻을 통해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흐르는 큰 강은 죄악으로 죽은 우리 인생을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입니다 그래서 그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메시야를 보내셨는데 구약은 오실 메시야, 신약은 오신 메시야를 선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전 인류를 구원하시는 메시야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십자가 죽으심의 대속과 부활의 생명으로 그 구원의 도리를 알게 하셨고 믿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그 섭리의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길을 걸으며 살아야할 삶의 모습은 바로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입니다

구약의 율법과 규례, 신약의 예수님의 교훈과 사역 모두가 바로 여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읽고 배우면

1)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어 감동과 감사가 살아납니다

2)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는 인생의 사명을 배우고 삶의 신앙적인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초대교회에는 <교육의 다섯 단계>가 있었습니다. 1.하나님께 영광 돌리면서 은헤의 시간을 갖는 <카리스마>가 있었고, 2.말씀 안에서 죄를 회개하는 <케리그마>가 있었고, 3.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교육 즉 <디다케>가 있었고, 4. 말씀을 나누는 친교의 <코이노니아>가 있었고, 5.성례전에 참여했던 성도들이 다시 세상에 나아가 봉사하는 <디아코니아>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설교를 듣는 것을 넘어서서 주중에 성경을 읽고 성경을 배우고 성경 공부를 하면서 우리의 인생위에 펼쳐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그 사랑을 배우게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둘째로는 말씀을 준행하기로 한 것입니다

7: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준행하다 라는 말씀은 실천하며 살기로 하다 라는 뜻입니다

 

살면서 성경말씀을 실천하며 살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성경말씀은 하늘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늘에 있지만 우리의 발은 이 땅에 있습니다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면서 마음을 실천한다는 것은 정말 육체가 허락하는 일이 아닙니다

 

육체의 일은 갈라디아서 5에 자세히 나옵니다

(현대어) 5:19 여러분이 본성이 시키는 대로 육체의 욕망에 따라 살면 여러분의 생활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곧 더러운 생각, 육신의 쾌락을 찾는 마음, 5:20 우상숭배, 마술, 헐뜯음과 싸움, 질투와 분노, 언제나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일, 불평과 비판적인 태도, 자기의 작은 당파 외에는 모두 나쁜 것으로 인정하는 배타주의와 거기서 나오는 잘못된 교설,

5:21 시기, 살인, 술주정,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 따위입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한번 더 당부합니다. 누구든지 이런 생활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물려받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삶의 현장에서 우리가 말씀을 준행한다는 것은 이것을 못박아 죽이는 일이기에 어려운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5:24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은 악한 욕망의 본성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입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느 자존심이 강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TV를 볼 때마다 싸움이 잦았습니다. 아내는 드라마를 보고 싶어 하였습니다. 남편은 뉴스를 보려고 하였습니다. 아내는 교회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교회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남편을 교회로 인도하였습니다. 그 날 목사님 설교는 아브라함과 롯 이야기였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싸울 때 아브라함이 양보한 이야기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롯에게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고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리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교회에서 돌아 온 그 날 저녁이었습니다. 남편이 TV 앞으로 오더니 연속극을 틀어 놓고 다른 방으로 나가려고 하였습니다. 아내가 놀라서 물었습니다. “여보! 지금 뉴스 시간인 데 왜 드라마를 틀어요?” 남편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드라마를 좋아 하잖아아내가 너무도 미안하여 뉴스를 틀어 놓고 나가 버렸습니다. 그 후 이 가정에는 TV 채널 때문에 싸운 적이 없었습니다.

말씀을 공부하고 준행하면 가정은 행복하고 우리의 삶의 현장은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말씀을 준행하기로 작은 것부터 연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를 가르치기로 한 것입니다

7: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일반적으로 자식에게 주변사람들에게 가르칠 때는 대부분 자신의 경험이나 자신의 개똥철학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합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말도 안듣는데 자신의 경험, 다그치는 이야기 ,개똥철학을 말하면 듣는 것 같아도 우습게 봅니다 귀찮게 여깁니다 다시는 곁에 안옵니다 그래도 사람이 미련해서 계속 말합니다

 

그 속에 최고의 가치가 들어 있다면 들을 것입니다 최고의 자산 투자가가 나에게 말한다면 돈을 싸들고 와서 들을 것입니다

나의 경험은 나의 생각은 나의 개똥철학은 최고의 것이 아닙니다 이미 평가 절하하고 있습니다 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혼낸다고 듣는 것이 아닙니다

 

최고의 가치를 담아 가르쳐야 합니다

영원하신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영원한 가치를 최고의 상품으로 삼아 가르치셔야 합니다

그래서 간증에 힘이 있습니다 위로가 있습니다

(승리 정준영 대 광희의 삶 일산교회 다님 새벽기도 금요기도회도 참석 )

명절때마다 가족예배때마다 자기 영웅담을 이야기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도우심을 그리고 얼마나 나를 사랑하셨는지를 깨달은 그 은혜를 나누고 자녀들에게 가르치신다면 자녀들은 회복될 것입니다

자녀들은 귀를 기울이실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길로 들어 설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신명기 6:4-9절까지를 쉐마라고 하는데 뜻을 이스라엘아 들으라입니다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6 오늘 내가 네게 명하신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6: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6: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도우셨는지를 설명하고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 이 바로 신명기서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신명기를 가족의 교훈이고 가문의 전통으로 삼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 다시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을 기억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그리고 이 은혜를 주변과 가족들에게 가르치시는 복된 시간이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301장을 찬송하시겠습니다

1.지금까지 지내온것 주의 크신 은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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