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사랑을 가지고 (빌립보서 2: 1-8절)
같은 사랑을 가지고
2018년 2월 18일
본문 : 빌립보서 2: 1-8절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성도 여러분 한가지 물으며 설교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교회는 존귀한 사람들, 성인들이 모인 곳입니까?
아닙니다 교회란 원래 죄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죄인들이 모였다는 것은 자신을 온전치 못하고 악한 존재라고 깨달은 사람들이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모인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은혜스러운 장소입니까?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남보다 못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깨달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 얼마나 감동스러운 장소입니까?
한번 옆에 분들을 다 바라보십시오 정말 다 나보다 나은 사람들인데 나같은 부족한 사람이 함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그리고 이제 저의 눈을 바라보십시오
다시 한번 묻습니다 정말 솔직히 그런 생각이 드십니까?
아마 제 생각으로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은 별로 없으실 것입니다
그럼 교회란 어떤 곳입니까?
오늘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를 통해 우리에게 교회의 좋은 단면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회란 한마디로 무슨 권면을 하든지 어떤 위로를 하든지 성령의 뜨거움이나 구제나 봉사나 그 어떤 일을 하든지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주는 권고의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원래 제 2차 전도여행 때에 아시아를 위한 전도 계획을 세웠는데 성령께서 이를 막으셨습니다, 그리고 드로아에서 마케도냐 사람이 부르는 환상을 보고 난후 바울은 계획을 바꾸어서 유럽으로 향하게 됩니다
마침내 에게해를 건너 유럽으로 건너가 세운 첫 번째 교회가 바로 이 빌립보 교회인 것입니다
빌립보는 마게도냐 왕 빌립이 자기 이름을 따라 빌립보라 불렀습니다.
이 지역은 로마가 세계를 정복하고 그들의 공신들, 특히 퇴역 장성들을 위하여 특혜를 주었던 지역으로서, 많은 군인 가족들이 살았던 특수 지역이었습니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상류사회를 이뤄 특히 염색술의 발달로 무역상들이 왕래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런 곳에 경제적으로 성공한 여성기업가인 루디아가 바울과 그 일행을 영접하여 예수를 믿게 되었고, 1)그 여인의 집이 바로 빌립보 교회의 모체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나옵니다 특히 빌립보 교회는 2)바울의 전도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였습니다. 많은 헌금으로 바울의 쓸 것을 도왔던 교회이었습니다.(빌4:15)
또 바울이 투옥되면서 3)감옥에 있는 바울을 위하여 에바브로디도를 보내어 그를 돌보게 한 교회이기도 합니다.(빌2:25)
그러나 이렇게 은혜스러운 교회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바울이 감옥에 있는 사이에 빌립보 교회에 불협화음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서로 자기의 주장을 하면서 교회가 분란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지금 자신은 로마 감옥에 있어서 비록 그곳에 없고 갈수도 없는 처지이지만 빌립보 교인들에게 간절히 말하고 있는데 즉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교회를 섬기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래 교회사람들은 다양합니다 빈부의 격차도 심하고 교육의 정도도 심하고 나이 연배의 정도도 차이가 많이 납니다 그리고 가정환경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고 생활습관도 다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질수 있을까요? 어떻게 같은 사랑을 가지고 남을 구제하고 선교를 하고 봉사를 하고 공동체를 형성할까요?
이것이 바로 교회의 신비입니다 이것이 세상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경이로움인 것입니다
사실 지금 이 빌립보서라는 편지를 쓸 때 사도 바울은 감옥에 있었습니다
사도바울과 빌립보 교인들간의 같은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또한 빌립보 교인 모두가 같이 갖는 같은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결론적으로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희생의 사랑,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한량없는 사랑....
이것이 우리가 받은 사랑이고 모두가 소유해야하는 같은 사랑입니다
사람이 언제 마음이 식어집니까? 언제 강퍅해집니까? 언제 냉랭해 지는 것입니까?
바로 은혜가 식을 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녹을 때 은혜가 충만해지면서 모든 것이 다 수용이 되지만 은혜가 없으면, 하나님 사랑이 식어지면 다 싸늘하게 얼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다 미운 것이고 마음에 안드는 것이고 이해가 안되는 것입니다
흔히들 우리가 이런 말을 잘합니다 어휴~~ 도저히 이해가 안되~~
그때는 그 상대방도 문제이지만 흔히 우선 내 마음이 은혜가 없을 때 사랑이 없을 때 하는 소리입니다 그 때 매사가 다 짜증나고 원망스럽고 꼴보기 싫은 것입니다
그럼으로 오늘 우리는 예배를 통해 같은 사랑 즉 예수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하시는 자리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예수님의 사랑이란 다른 말로 예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그 마음 ...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신 그 마음...
십자가를 지시면서 온갖 고초를 당하시고 죽으시기까지 품으셨던 그 마음.. 그 사랑... 그 눈물... 그 희생...
이 마음을 알게 되면 교회는 따뜻하게 되고 가정도 훈훈하게 되고 나의 모든 일에도 감사와 감격이 뒤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곳이 비록 감옥이라할찌라도 사도바울처럼..감사하고 오히려 남을 격려할수 있는 것이지요
전에 한동대 김영길 총장과 오성연 부총장이 52일 동안 구치소 생활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동대는 유명한 기독교대학인데 지역 사회하고 의견이 조율이 안되어서 결국 구치소까지 가게 되었답니다
김영길 총장이 구치소에 들어간 첫날, 32명의 죄수들이 비좁게 들어가 있는 작은 방에 배정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벽에 얼굴을 대고 무릎을 꿇고 ‘신고식’을 했답니다. 그리고 32명이나 있었기 때문에 좁아서 제대로 못 눕고 칼 잠을 자면서 이런 생각을 했답니다.
‘내가 여기에 왜 왔나? 그동안 미국의 좋은 대학의 조건도 마다하고 조국으로 돌아와 한동대를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데 결과가 이런 것이란 말인가?’
본인도 상상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김영길 총장의 마음을 지배했다고 합니다.
그러는 중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빌립보서 2장 5절~7절 말씀입니다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김영길 총장은 이 말씀이 깨달아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수갑이 채워지고 포승줄에 묶여 경주 교도소에서 대구 교도소로 죄인처럼 이송될 때도 이 말씀을 생각했고, 독방에 갇혀서 정좌를 하고 있을 때도 이 말씀을 계속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분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저는 참 부끄러웠습니다. 이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보좌를 버리고 세상에 와서 그런 고생을 하셨는데, 제 지나간 과거의 삶을 보니 정말 저는 예수님을 위해 고생한 것이 없었습니다. 부끄럽게 살아왔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당시 한동대 이사장이신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님도 부끄럽답고 말했습니다 ‘난 예수를 믿는 목사인데 구치소에 한 번 안 가보고, 예수님때문에 어려움을 겪어보지도 않고 이 말씀을 보았구나’라고 생각이 들더랍니다
저도 이 대목을 읽으면서 초기 한국 기독교인들을 생각해 봅니다
일제치하에 신앙 때문에 옥고를 치른 성도들을 생각해봅니다 공산당의 제압으로 부자, 경찰, 종교인 다 총살하고 잡아들일때에 그 고난의 길을 자처하여 갔던 수많은 순교자들과 신앙의 어른들을 생각해봅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부끄럽고 가슴이 메어져 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마음과 애절한 그 사랑을 가질 때 현재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신앙적인 환경과 삶, 이 모든 것이 감격으로 다가오고 위로로 다가오고 감사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아래 구절을 보면 예수님의 사랑은 구체적으로 이렇게 표현되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한가지입니다
즉 자기를 비어 사람같이 되어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6절 7절에 나옵니다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예수님은 하나님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 됨을 포기하시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6절에서 우리는 놀라운 표현을 봅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과 본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가 인간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예수님은 성인이다 누구나 동의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본질, 본체가 하나님이다 이것을 믿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믿으려고 하면 우리 이성이 거부합니다. 역사주의자와 실존주의자들은 이 사실을 거부합니다.
그런데 예수가 하나님이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믿기 시작하면서 인생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기적이 체험합니다. 인생관과 세계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하나님 되기를 포기하고 인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본래 하나님이셨는데 스스로 자기를 비워서 하나님 되기를 포기하고 인간이 되신 것’ 이것이 하나님 마음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 마음의 실체는 ‘자신이 하나님 되기를 포기하고 인간이 되시는 하나님의 겸손, 낮아지는 태도’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합니다.
자식 앞에서 부모는 자존심과 체면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다 포기합니다.
그런데 이 부모의 마음을 창조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몇년전에 아주 재미있는 그러나 단순하지만 소중한 깨달음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명절전날 조기를 아주 맛있게 한 마리 구웠습니다 그런데 몇점을 집어 먹는데 살살 녹더군요... 그런데 마침 저의 처가 이야기를 합니다
여보 진욱이 조기좀 먹이세요 막내애가 생선을 잘먹습니다 그래서 살을 발라서 주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제 입에서 돌던 군침들이 싹 사라지고 저를 향한 입맛은 싹 사라지고 애를 집어 주는데 그렇게 흐믓하더라구요 그러면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저희 어머니 아버지도 이렇게 저를 보시고 좋은 음식 앞에서 입맛이 싹 가셨겠지 생각을 하니까...너무 죄송하고 ..
저를 보시고 그렇게 흐믓해하셨을텐데 생각을 하니까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자연히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밥먹다 말고...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희생시키신 것은 한마디로 우리를 바라보시고 자신의 입맛을 싹 거두어 가신 것이구나
오직 우리만이 보이셔서 우리만을 챙겨주시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비어 십자가에 달리사 죽기까지 사랑하신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갑자기 밥먹다가 말고 은혜 충만 감사 충만하더라고요 조기도 못먹었는데 얼마나 배가 부른지 ....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자존심, 권위, 위치, 신성의 모든 영광을 다 포기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낮아지심’이라고 합니다. 이런 낮아지심을 사람들은 겸손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비움에서 시작됩니다 겸손한 척은 할수 있어도 비움이 있는 겸손은 어려운 것입니다
자기 신분, 위치, 소유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아무리 겸손한 척 해도 포기가 없으면 겸손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희생하고, 헌신하고, 손해보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고난을 겪고, 분한 일, 원통한 일을 겪지 않았다면 그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희생입니다. 사랑은 고난입니다. 사랑은 자기 포기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그 모든 영광을 버리고 자기를 비워 인간이 되고, 종이 되고, 낮아져서 말구유에까지 오셨던 사고방식, 가치체계, 태도, 이것을 가리켜‘예수님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5절을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의 마음이니
얼마나 고상한 말이고 아름다운 말입니까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그러나 그 내용을 깊숙히 들어가 보면 굉장히 고통스러운 말입니다. 포기해야 하고 낮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7절에서 ‘비었다’ 라는 말은 컵의 물을 다 쏟아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위치, 소유, 특권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려고 하고, 버리지 않고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데 있습니다.
아내와 남편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포기 없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기 것을 다 주장하면서 남편이나 아내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부부싸움의 본질은 포기하지 않은 채 대화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문제의 갈등도 거기에 있습니다. 내 것, 내 소유, 명예를 다 지키면서 사랑하려고 하기 때문에 갈등이 있습니다. 비움이 없으면 사랑은 실체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희생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비워보질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위해서 자신의 직업을 옮겨보고, 성문교회의 유경화 1대장로님처럼 연탄 손수레 끄시면서도 교회를 위해 땅을 100평을 헌물하신 자기 비움, 자기 헌신,, 등이 사랑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주고,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사랑이 생기지 않습니다.
간절한 믿음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바로 이런 사랑입니다 말이 아니라 희생이었습니다
채움이 아니라 비움이었습니다 높아짐이 아니라 낮아지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정도까지의 순종이 아니라 죽기까지의 복종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셨고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비우심이셨고 낮아지심이었습니다 이것은 겸손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이것은 희생이란 말로도 설명할수 없는 깊고 깊은.. 이성으로는 헤아리기에는 너무 넓고 높은 사랑이셨고 마음이셨던 것입니다
요새 예수를 믿되 자기 맘대로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위기인 것입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같는 일이 교회에 역동성을 가져오는 것이고 은혜스러운 교회가 되는 비결인 줄로 믿습니다
외국 베트남에 사시는 곽정미라는 성도가 세계인터넷선교학회라는 웹싸이트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저희 집에는 일하는 베트남 아이가 있습니다. 깔끔하고, 일도 소리 없이 잘하고, 예의 바르고,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에게는 두 가지 문제가 발견되었습니다.
하나는 시킨 대로 하지 않는 것과, 다른 하나는 모르면서 물어 보지 않고 일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일은 되어 있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 있지 않고, 내가 원하는 장소에 있지 않고 ...일을 그르치기가 일쑤입니다.
그 아이는 남의 집 살림을 자기 생각대로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한가지 교훈을 얻습니다
무슨 훌륭한 일을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의 생각과 계획과 뜻을 잘 알아듣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종의 자세이며, 그것이 나를 부르신 분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임을. 그 아이는 섬기는 자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결론 내리고 사람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아이는 남의 집 살림을 자기 생각대로 한다"--
이것이 주인이 바라본 평가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금 하나님 앞에 서면 과연 어떤 평가를 받을까요? 예수님을 믿되 자기 마음 자기 생각대로 믿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가치대로 믿는 것이 바로 믿는 것인줄로 믿습니다
모든 일에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 즉 예수님의 비움의 사랑, 낮아지심의 사랑, 섬기는 사랑, 죽기까지 해보는 희생의 사랑을 가지고 아름답게 성문 공동체를 형성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서로를 위해 눈물도 흘리고 간절히 애를 태워보기도 하고 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하는 같은 사랑이 생기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아버지 사랑 내가 노래해" 찬양을 부르시겠습니다
아버지 사랑 내가 노래해
아버지 은혜 내가 노래해
그 사랑 변함 없으신
거짓 없으신
성실하신 그사랑
상한 갈대 꺽지 않으시는
꺼져가는 등불 끄지 않는
그 사랑 변함없으신
거짓 없으신
성실하신 그 사랑 사랑
그 사랑 날 위해 죽으신
날 위해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
다시 오실 그 사랑
죽음도 생명도 천사도
하늘의 어떤 권세도
끊을 수 없는
영원한 그 사랑 예수
기도시 ,,,
세상 탐욕에
내 마음 흔들릴 때
나를 걸러 내소서
생의 작은 기쁨에
만족할 수 없어
덧없는
꿈으로 헤매일 때
나를 걸러내소서
걷지못하고
휠체어에 앉아
오그라진 손으로
당신을 찬미하는
그런 입술을 닮게 하소서
살며
부딪히며
용서할 수 없을 때
내 안에 솟구치는
작은 갈등을 닦아내고
사랑만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그런 바보가 되게 하소서
울컥 울컥 돋아나는
세상의 나를
당신 손으로 힘껏 내치시고
내 가슴 웅크린
악의 씨앗을
뿌리째 뽑으소서
나를 걸러내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