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고린도 전서 4: 16- 18절) 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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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고린도 전서 4: 16- 18절) 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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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2020년 2월 23일

본문 : 고린도 전서 4: 16- 18절


모든 사람은 살면서 고난을 당합니다 고난과 어려움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당하는 고난뿐만 아니라 자연적인 재해 그리고 사회,국가적인 고난의 파도는 끊이질 않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고난과 어려움은 마치 산과 같습니다 

언덕이 있는가 하면 계곡이 있고 높은 정상이 있는가 하면 바로 낭떨어지가 이어져 내리막길이 열리기도 합니다 능선을 따라 평탄한 길도 보여서 안심하고 걷지만 이내 오르막이 나타나는 것이 인생길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힘겨운 싸움을 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의 몸은 신호가 옵니다 

체력이 약해지고 몸에 질병이 찾아오고 얼굴 여기저기에 검버섯이 피어오르면서 쇠퇴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늙어가는 것입니다 


평생 살고 싶은 나이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20대의 나이로 평생을 살고 싶어 한답니다. 

실제로 20대는 인생의 황금기입니다. 그런데 20대 청년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보통 기성세대를 비판하고 불평하고 미래를 준비하느라 마음고생을 하지만 그 황금기가 많은 청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르고 보내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황금기인 20대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인생의 꽃을 피울 때입니다. 그런데 그 소중한 20대가 지나고 30대에 접어들면 사람들이 ‘아이고, 20대가 지나갔구나.’하며 움찔하고 놀란답니다. 30대 때는 치열하게 가정을 위해 자신의 지위향상을 위해 사는데, 어느새 40대에 접어들면 마음이 고약해기도 한답니다 20대를 보면 ‘저것들은 왜 저리 젊어?’하며 질투하고 미워한답니다. 모 교수의 말에 의하면, 학생들의 잘못을 제일 많이 지적하고 학생들을 제일 많이 꾸짖고 들볶는 교수는 대개 40대 교수들이랍니다. 

그런데 50대가 되면 20대에 대한 미움이 흠모로 변한답니다. 그래서 주름살 수술도 하고 지방을 없애는 수술도 하고, 다리나 가슴에 실리콘 같은 것을 넣는 수술도 한답니다. 여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도 하는데 특별히 회사 중역들이 많이 한답니다. 그리고 50대가 되면 여자나 남자나 옷도 고운 것을 입는답니다. 여자들의 옷이 40대보다 더 화려해지고 남자들은 빨간 넥타이를 즐겨 맨답니다. 그러다 60대가 되면 아무리 애써도 20대처럼은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철이 든답니다. 그래서 60대를 넘고 70대를 넘으면 20대처럼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답니다. 

이미 겉사람이 쇠퇴해진 것을 인정하고 사는 것입니다 

덧없고 빠르고 속절없이 지나가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잠31:30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이러한 삶속에 어느 누구나에게 계속 다가오는 고난과 어려움은 우리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양갈래 길이 되곤합니다 

고난과 어려움이 우리의 쇠퇴하는 삶에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디딤돌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번 코로나19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극단으로 치닫는 양분된 갈등을 후손과 다음세대들을 위해 디딤돌로 삼고 반드시 극복해나가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함께 이러한 기도에 마음을 다해 동참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동기들이 있습니다 


1) 꿈입니다 꿈을 가지고 고난과 어려움을 사람들은 극복합니다 

1963년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목사는 워싱턴 DC에서 수많은 군중을 향하여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고 유명한 연설을 하였습니다. 

그는 1968년 4월, 40세의 젊은 나이로 괴한의 흉탄에 쓰러졌지만 혼신의 힘을 다하여 차별당하는 흑인들의 인권을 위해 비폭력적 투쟁을 하면서 많은 분들의 동감을 얻어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에 노예로 끌려와 살게된 많은 흑인들도 참정권을 갖게 된 것입니다  

꿈이 있으면 삽니다 희망을 가지면 어려움을 극복합니다 

그래서 많은 강연에서 강조하는 끔과 희망은 사람의 현실의 고난과 어려움을 디딤돌로 인식하게 하고 극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2) 현세적인 삶의 한계를 알게 하여 지혜를 가지고 고난과 어려움을 이겨나가게 합니다 

그래서 많은 지혜자들의 강연이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고 이겨나가게 합니다 

유대교의 탈무드는 딜레마에 빠진 우리의 삶의 지혜를 펼쳐놓습니다 

노자나 장자의 사상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고 동화됨을 가르쳐서 우리의 고난을 견뎌내게 합니다 

법정스님이나 성철스님의 글들을 보면 인간의 현존을 직시하게 함으로 우리의 삶의 난제들을 이겨나가게 각성과 깨달음을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도서관의 있는 모든 책들과 귀한 강연들은 이렇게 사람들에게 꿈을 주고 희망을 노래하게 하며 삶의 지혜를 깨닫게 하여 모두에게 다가오는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3) 우리는 한가지를 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세상의 모든 책의 지식과 강연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지식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살면서 경험하는 모든 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하게 하는 새로운 동기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영원히 다함이 없는 영광을 주시기에 고나노가 어려움을 이기는 것입니다

고후 4: 17-18절을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고후4: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현대어 성경) 

고후4:17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과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니며 오래 가지도 않습니다. 이 짧은 고통은 영원히 다함이 없는 영광을 가져올 것입니다.

고후4:18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눈에 보이는 어려움에는 눈길을 돌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아직은 보이지 않지만 하늘에 있는 기쁨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려움은 곧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즉 영원히 다함이 없는 영광 때문에 우리는 세상의 모든 어려움과 고난을 디디고 설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영원한 영광이 있다면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모든 질병과 전염병과 개인적인 고난이 전부로 다가오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주님이 우리에게 주실 그 영광의 면류관이 내 눈에 보인다면 우리는 하늘의 기쁨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두려움이 떠나고 삶의 원망이 크게 자리잡지 못할 것입니다 


그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라볼 영원히 다함이 없는 영광은 무엇입니까?

로마의 황제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146년 4월 11일 - 211년 2월 4일)는 지독하게 기독교를 핍박했습니다. 그때 호테미아라는 예쁜 소녀가 예수님을 믿는 것때문에 끌려와 화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소녀가 얼마나 아름답고 순진해 보이는지, 집행관은 자기가 화형을 시켜야 하지만 마음이 너무 아파 소녀에게 친절히 대했습니다. 

그런데 화형대에 선 소녀가 집행관에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기뻐하세요. 내가 오늘 주님께 가면 아저씨를 구원해 달라고 기도할께요. 아저씨는 구원받을 거예요. 기뻐하세요. 아저씨가 제게 잘해 주신 것 고마워요. 잊지 않을게요.” 그리고 소녀가 화형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집행관이 그날 이후로 3일간 계속 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아름답고 깨끗하고 순박한 호테미아가 자기에게 면류관을 갖다가 씌워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행관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호테미아는 화형을 당하면서도 두려워하지도 낙심하지도 않고 오히려 천국에 계신 주님을 만날 것을 생각하고 기뻐한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의 현장에서 그리고 어려움의 계절을 보내면서 디딤돌로 삼았던 것은 바로 영원히 다함이 없는 영광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얻게 될 영원히 다함이 없는 영광이란 

첫째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지키고 자녀들을 세우고 최선을 다해 살았던 노력에 대한 하늘의 위로와 보상이 주님이 마지막 날 주시는 다함이 없는 영광입니다 


믿음이 들어가고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는 마음속에 선한 의지가 발동이 됩니다 그런데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는 본의아니게 비난도 당하고 욕도 먹지만 그래도 내가 최선을 다해 가정을 세우고 자녀들을 키워왔던 것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양심에 꺼리기기도 했지만 살기 위해 몸부림치면서도 믿음을 잃치 않고 잘 믿어보려고 애를 쓴 것을 주님은 다 아실 줄로 믿습니다 

주변 사람이 나의 믿음을 엉터리라고 해도 자식들이 나의 믿음을 인정하지 안해도 나는 나의 분량만큼 노력했고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자식들은 나중에 인생을 살면서 다 알게 될 것입니다 

뼈가 녹을 만큼 힘든 그 자리에서 우리를 붙잡고 치열하게 살아주셨구나 .....

그러한 환경속에서 믿음을 놓치 않고 버티셨구나 ...

또한 우리 주님도 이 험하고 악한 세상에서 믿음붙잡고 예수님 이름부르며 살았던 나의 인생의 노고와 중심을 인정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얼굴과 얼굴을 대면한 그 자리에서 다함이 없는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을 저는 믿습니다 


계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둘째로 영원히 다함이 없는 영광이란 주님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드렸던 마음과 헌신과 눈물에 대한 격려와 면류관의 영광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다보면 본의아니게 비난도 당하고 핍박도 받습니다 

우리 실천적인 신앙생활이 문제가 되어 비난을 받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사실은 역사적으로 보면 예수님 믿는 것 자체 때문에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유는 1)가치관이 세속적인 것에 부합이 되지 않는 점- 무신론과 진화론등과 배치 

2)권력자나 사람앞에 엎드리거나 절하지 않는 점 

3)인간 스스로가 자꾸 죄인이라고 하는 점-회개를 강조하고 타락에서 나오라고 하는 점 

4)파괴와 파멸의 영인 마귀와 사탄을 대적하는 영적인 전쟁 때문에 수많은 비난을 받아 온 것입니다 


일제 시대 때 안동의 한 장로님이 일본 순사에게 끌려가 매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이 매를 맞을 때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순사 나으리, 더 많이 때려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이 영감이 미쳤어?”

“순사 나으리, 많이 맞으면 맞을수록 상이 더 커지니 많이 때려 주세요.”

그러자 순사가 “이 영감이 단단히 미쳤구먼. 그만 집으로 가!”라고 했답니다.


(군대에서 장 병장- 고참이 대리면 윽~ 주여~~ 윽~ 주여~~ 

결국 소대원 이끌고 교회에 나옴 ) 


마태복음 5장 10절~12절에 말씀하십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어려운 시기를 신중하게 그리고 근신하며 보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때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영원한 하늘의 기쁨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어려움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고난은 길지 않습니다 

아직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치만 영안을 열어서 하늘의 있는 기쁨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 왔습니다 

돈만 보고 달려 왔습니다 권력의 유지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자기만 옳다고 배려하는 법을 잃고 살아왔습니다 

이제 두려움을 거두고 다툼을 거두고 성냄을 가라앉히고 덧없음을 볼 시간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새로워지는 속사람을 성장시킬 시간입니다 

신중하게 대처하시고 죽음의 공포는 내려놓으십시다 

오히려 나의 삶의 뒤돌아보고 고치고 초점을 하늘의 것에 맞추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AD 165년-180년 간의 안토니누스역병은 그 병을 기록한 갈레노스의 역병으로도 알려졌는데 천연두나 홍역으로 보이며 근동에서 작전을 마치고 돌아온 병사들에 의해 로마에 전파된 전염병이다. 

이 역병이 두 명의 로마황제를 죽였으니 169년에 사망한 루시우스 베루스와 그의 공동 섭정이며 180년까지 통치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황제인데 그의 성인 안토니누스가 이 역병을 지칭하는데 쓰였다. 

로마의 역사가 디오 카시우스에 따르면 역병은 9년 뒤 재유행하여 로마에서만 하루에 2천명을 죽였으며 로마시민의 1/4이 감염됐다. 

총 사망자는 무려 4백만명으로 추정된다. 일부 지역에선 전인구의 1/3을 죽였으며 로마군을 격감시켰다.


역사가 윌리엄 맥닐은 안토니누스역병과 그 뒤의 251-270년 간의 키프리아누스역병은 두 종의 다른 질환이며 각각 천연두와 홍역이라고 주장한다.  두 역병이 유럽인구에 끼친 심각한 참화는 유럽인들이 그 질병을 처음 접했으며 생존자들에게 면역이 생겼음을 시사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현대의 연구는 두 유행병 모두 천연두일 것이라는 공감대를 갖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로마 시내 길거리 곳곳에 널부러져 죽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그 시신을 수습하지 못 했습니다. 왜냐하면 손 대자마자 다 전염되어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 시내는 사람들의 시체가 길거리마다 쌓여있고,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한밤중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나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아침이면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며칠 후 로마 시내는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에 있는 고관으로부터 일반 서민들은 정말로 궁금했습니다. 


저들이 누구일까? 알아보니  기독교인들이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시신을 수습한 사람들이 한 사람도 그 염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할 때 나타나는 주님의 기적이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 떨면서 공포 속에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그 누구도 무서워 피하던 시체를 용감히 치우던 사람들입니다. 

기독교인은 이럴 때 다른 사람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입니다.





1. 당신의 그 섬김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겸손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믿음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충성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주님이 기억하시면 족하리

   예수님 사랑으로 가득한 모습

   천사도 흠모하는 아름다운 그모습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2  당신의 그 순종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사랑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찬송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당신의 그 헌신이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주님이 기억하시면 족하리

   불타는 사명으로 가득찬 모습

   천사도 흠모하는 아름다운 그모습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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