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단을 멈추면 중심이 보입니다 (사무엘 상서 16: 4- 13절) 2월 16일
속단을 멈추면 중심이 보입니다
2020년 2월 16일
본문 : 사무엘 상서 16: 4- 13절
이번 주는 코로나의 두려움을 넘어 기생충 때문에 대한민국이 힘을 얻은 한 주였습니다 지난 9일 봉준호 감독이 만든 영화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국제극영화상, 감독상, 작품상 등 4관을 차지하게 되어서 전세계에 대한 민국의 이름을 드날렸습니다 백인들만의 잔치가 멈추고 한국 사람들이 중심의 자리에 선 짜릿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시한번~ 대한 민국~ 대한 민국~ 한번 불러 볼수 있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렇게 화려한 영광의 자리 이전에 그 시작은 서로에게 초라하기 그지없었던 시기였습니다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 배우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스토리를 잠깐 읽어보시겠습니다
사진 ...
이분들의 첫 만남은 겉모습으로만 판단을 하지 않고 서로에 대해 속단을 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가능성과 진실을 보고 대하였기에 신뢰로 이어졌고 결국은 합하여 최선을 이룬 것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렇게 겉모습과 다르게 내면의 빛을 드러내면서 사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선교사인 리빙스턴은 팔이 불구였고 육체적으로는 초라한 상태에 있었으나 예수님을 의지하여 그가 선교에 큰 성과를 낼수 있었습니다
감리교의 요한 웨슬러는 폐병을 앓는 사람이었고 얼굴은 곰보였으나 영적 영향력으로 나라와 교회를 변혁시킨 사람이었습니다
헬렌 켈러는 눈, 귀, 입의 기능이 없어 쓸모 없고 찌그러지고 부서진 질그릇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선교사 마틴은 폐결핵과 악전고투하며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구세군운동을 주도한 윌리엄과 캐더린 부스 부부는 “내 삶에 있어서 단 하루도 고통스럽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고백하면서 선교의 역사를 써내려갔습니다
많은 분들은 이런 분들을 만날 때 겉만 본다면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을 보셨고 이들을 대하는 사람들은 진실과 사랑을 보게 되어서 놀라운 일들이 온 세상에 펼쳐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드러난 현상과 외모와 편견과 속단하는 자세때문에 너무 큰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신종코로나도 문제이지만 정작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은 외적인 판단과 속단때문에 벌어지는 갈등때문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크게는 국가와 사회와 가정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이러한 일들이 계속 반복되어지는 것입니다
작게는 개인적으로 사람관계, 경제 생활등에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이다 로또에 당첨되면 불행끝 행복시작이라고 선전하지만 그야말로 그대로 받아들이면 속단하는 것입니다
-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내 인생이 성공하는 것이다 머리가 꼬리보다 낫다 세상은 말하지만 그것도 속단입니다 원하는대로 올라서서 망한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구정물과 쓴 잔은 아무도 못보는 것입니다
속단하고 살면 거짓 된 삶에 속고 살 수가 있습니다
속단하며 살 때 이런 폐해가 결과로 남습니다
1) 모래위에 세워진 것처럼 서 있으나 견고하지 못한 삶을 삽니다 늘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사람 눈치보고 환경눈치보며 삽니다
2) 무너지기가 쉽습니다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면 쉽게 무너지고 포기합니다
절망하고 그대로 엎어지고 맙니다
3)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편견이 심합니다 과일반화시킵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매사에 쉽게 정죄하고 판단하면서 스스로 분노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갖습니다
누가 택시비를 운전사에게 더 주고 속임을 당했다 그러면 택시 운전사들은 다 나쁜 놈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것을 과 일반화라고 하는데 과 일반화는 상당수 매도하는 것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간을 허송세월하게 되고 분노와 비난으로 내 몸은 망가지고 허무함에 후회를 되새기며 사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세상의 기준과 다른 한가지 면이 있다면 사람과 사물과 환경의 중심을 보려고 미리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다 벌어진 다음에 나중에 진실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니라 미리 그 중심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중심, 일의 중심, 역사의 중심을 앞서서 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조급함과 편견과 속단은 고쳐지는 류가 아닙니다 반복되는 종류의 습관이고 체질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사람은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반복하고 그 길로 갑니다 그래서 괴로운 것입니다
이때 신앙의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속단하는 삶을 피하고 편견과 매도하는 습관을 극복하는 순간이 언제인가 하면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바로 사무엘 선지자입니다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이스라엘 나라의 영적인 스승임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은 외모를 보고 사람을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판단을 합니다 그리고 속단을 내립니다
삼상16: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이 스토리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은 사사시대를 지나 왕국시대로 들어서게 됩니다
당시 마지막 사사이자 선지자는 사무엘이었습니다 사무엘이 세운 그 첫 번째 왕이 바로 사울왕입니다 10장에 보면 사울은 처음에 준수하고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왕으로 큰 업적을 남깁니다 블레셋과 싸워서 큰 승리를 거둡니다 대부분의 지파들이 다 통합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다가 교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자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습니다
좋은 것들을 다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말합니다
삼상15:17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삼상15:19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위해 다른 왕을 미리 예비하십니다
삼상16: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구약에서 기름을 붓는 3종류의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1)선지자 2) 제사장이고 3)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으로 갑니다 이새에게는 아들이 8명이 있었습니다
8명을 다 왕으로 기름부을수는 없었습니다
제일 먼저 첫째 아들인 엘리압이 등장하는 장면이 오늘 읽은 본문의 내용입니다
사무엘은 생각합니다 정말 잘생기고 늠름하고 위품이 있었습니다 외적으로 볼 때 감탄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첫 번째 아들이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사람이구나 ...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에게 음성을 들려 주십니다
이 음성이 바로 세상의 많은 작가들이 자주 인용하는 그 유명한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현대어 성경) 삼상16:7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사무엘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너는 그의 용모가 특출하고 키가 큰 것만을 가지고 판단하지 말아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다. 사람은 눈에 뜨이는 외모를 보지만 나는 사람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본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럼으로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마음과 눈을 가지고 사는 것이 진정한 신앙생활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만일 사무엘 선지자가 이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자신의 판단대로, 세상의 기준대로, 세상의 풍조대로 결정하고 안수하였다면 또 다시 이스라엘의 고통은 반복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8번째인 제일 막내 다윗이 발견되었고 안수하였으며 결국 하나님의 계획은 이스라엘 위에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사무엘은 겉만보고 속단하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바로 우리 삶에 적용되어야 할 신앙훈련인 것입니다
중요한 한가지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변화시킬 첫 관문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스스로 성결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삼상16:5 이르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성결하게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여기서 스스로 성결하게 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카다쉬인데 깨끗하게 하다 자신을 살펴보다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더러운 것을 씻을때에 비로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남을 진실하게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평가하고 판단을 하며 영향을 미치는 3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1)내가 옳고 남이 틀리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얕은 수분의 삶이고 반지성적이고 비상식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우리 사회가 이래서 지금 힘든 것입니다
틀린 남을 고치려고 하는데 매번 그럽니다 너나 잘하라고 .....
2)나도 옳고 남도 옳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이고 지성적인 면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이고 소통하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공자가 말합니다 자기는 30세에는 뜻을 세워 섰고 40세에는 불혹(不惑)했다고 합니다 그 많은 유혹들.. 돈, 권력. 명예, 지위, 여색, 향락, 허영, 교만등을 물리칠수 있었다고 합니다 50세에는 지천명(知天命)했고 즉 자기 삶이 무엇이며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고 60세에 이르러서는 이순(耳順)했다고 합니다 어떤 말을 들어도 깊은 이해심이 생이고 귀에 조금도 거스리는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유와 도량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나도 옳치만 남도 옳을수 있다고 잠깐 생각만해도 이순하게 될 것입니다
사회는 좀 쉴 곳이 있을 것입니다
3)나는 틀리고 남이 옳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남이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틀리다라는 것을 발견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이러한 사람 별로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인들만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죄인중에 괴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남편도 아내도 잘못된 것도 내가 잘못한 것이고 내가 사랑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라고 깨닫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처음에 자기 신앙이 맞고 자기 생각이 맞고 자기 방식이 맞다고 생각하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잡아들이고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섰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자신이 틀렸고 자신이 잘못된 것을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평생 자기는 죄인중의 괴수라고 고백하며 오직 예수님만을 전하는데 전력을 다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구세주라는 진리외에 다른 모든 것들은 시기에 따라 방식에 따라 환경에 따라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아닌 것이 되기도 하고 자리가 바뀌면 변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장담할 수가 없는데 어디서든지 어느때든지 자신이 맞다고 하니 세상을 지옥이 되고 전쟁이 되고 눈물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미안하다 이 한마디 할줄 알게 가르치시려고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마치 신처럼 행세하는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상에서 피를 쏟으시고 그 죄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내가 미안해 ! 내가 잘못했어 ....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나를 용서해주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은혜를 받고 보니 중심이 보이고 진실이 보이고 그래서 나를 바꾸고 내 마음을 바꾸는 것이 신상생활인 줄로 믿습니다
로마서에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변화를 받아라! 겉을 보고 속단하지 말고 ...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나를 발견하는 그 자리 그 자리가 바로 예수님께서 나를 지신 십자가의 자리인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찾은 이 십자가밑에서 우리는 성렴님의 은혜로 변하고 바뀌고 중심을 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내가 미안해~~ 내가 미안해 ~~ 주님! 저를 용서해주세요
같이 찬양하시겠습니다
목적도 없이 나는 방황했네 소망도 없이 살았네
그때에 못 자국 난 그 손길 나에게 새 생명 주셨네
험한 십자가에 능력 있네 거기서 나의 삶이 변했네
찬양하리 주 이름 영원히 주의 십자가 능력 있네
나는 믿네 갈보리 언덕 십자가 나는 믿네 그 누가 뭐라 해도
이 세상 다 지나고 끝날이 와도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나는 믿네 십자가에서 못 박힌 주 오늘도 새 삶을 주시네
날 새롭게 하셨네 나는 새 피조물 십자가 잡고 살아 가리
나는 믿네 갈보리 언덕 십자가 나는 믿네 그 누가 뭐라 해도
이 세상 다 지나고 끝날이 와도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