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눈을 뜨다, 사명의 눈이 열리다 (사도행전 26:13- 18절) 2019년10월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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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눈을 뜨다, 사명의 눈이 열리다 (사도행전 26:13- 18절) 2019년10월6일

성문지기 0 7023 0

인생의 눈을 뜨다, 사명의 눈이 열리다

2019년 10월 6일

본문 : 사도행전 26: 13- 18절


영상을 같이 보시겠습니다 


이번 주에 읽으실 말씀은 사도행전 21- 26장까지이며 로마서를 읽으시면 됩니다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사도바울은 선교보고차 죽음을 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갑니다 여지없이 유대인들은 소동을 벌이고 사도바울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때 로마의 천부장이 사도바울을 보호하여 당시 지역을 다스리던 총독 벨리스에게로 보냅니다 


행23:23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행23:24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이때 이미 사도바울은 로마 복음전도를 위한 사명을 받습니다

행23: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그 소동이 나고 죽음의 위기가 있는 자리에서 주님께서 사명을 분명하게 확인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원래 로마에 가서 복음전하는 것도 꿈꾸었지만 로마를 거쳐 서바나 즉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롬15:22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롬15: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는 그 말씀을 평생의 사명으로, 꿈으로 안고 살아갔던 것입니다 


그 가운데 오늘 본문은 사도바울이 당시의 지역 분봉왕이었던 아그립비 2세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장면입니다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2년 동안 가이사랴에 있는 로마 총독의 감옥에서 옥살이를 했습니다.  하지만 유대의 지도자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바울을 법정에 세워서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당시 유대인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는 펠릭스의 후임인 베스도 총독은 바울이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 죄가 없는 바울을 석방하자니 유대인 지도자들의 감정을 건드릴 것 같아 고민하고 있었던 때에 바울은 무혐의 처리를 받을 수 있는길은 로마 황제에게 직접 재판을 받는것이라 판단하여 로마의 최고 법정에 상소를 하게 됩니다.(25:25) 

그러나 당시 관례로 보아 죄수를 황제 앞으로 보내려면 뚜렸한 죄목이 있어야 하는데 베스도 총독은 바울에게서 어떤 혐의를 찾을 수 없었고 매우 난처한 입장이 되던차에 팔레스타인 북부 지역의 통치자로 있던 아그립바 왕과 그의 누이 동생 버니게가 총독부임 축하를 위해 내방을 하게 되었습니다(25:13) 

행25:13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베스도 총독은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그립바 왕과 함께 최종 결정을 내릴 작정으로 다시 재판을 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그 재판중에 사도 바울이 먼저 아그립바 왕을 향해 자신이 다메섹 도상에서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무엇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었는지 말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를 찾아오신 그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돌아가신후 다시 부활하셔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셨기에 모든 사람이 나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먼저 아그립바 왕이 말합니다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행 26:28) 

그러자 바울이 말합니다 

행26:29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여기 나오는 아그립바는 헤롯 아그립바 2세인데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아들이며 헤롯 대왕의 증손인데 로마 황실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며 헤롯 왕가의 마지막 통치자입니다 

그는 AD 70년 완전히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하기 전까지 명목적인 왕으로 남아 있던 네로황제가 임명한 분봉왕입니다

네로는 아그립바 2세를 인정하여 A.D.56년 총독 벨릭스의 통치지역인 디베랴 베레아 및 몇개의 지역을 아그립바 2세의 관할지역으로넘겨 주었다. 


이러한 왕앞에서 사도바울은 담대하게 오늘 간증하고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사도바울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을 전하라고 당부한 것처럼 자신은 그 자리가 법정의 자리이든 맹렬한 공격의 자리이든 어느속에서든지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상을 가리지 않았고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남들에게 보일때에 미친 사람처럼 보인 것입니다 재판을 받는데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다니요 ...

그래서 

행26: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그러나 사도바울은 확신있게 대답을 합니다 

행26:25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어떻게 사도 바울은 이러한 확신을 가진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바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진리로 인생의 반석으로 발견하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자주합니다 사도행전에 3번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그만큼 분명하고 중요한 사건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1)사도행전 9장에 나옵니다 처음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입니다 

2)행22장에 나옵니다 3차 전도여행후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앞에서 간증합니다 

3)오늘 행26장에 또 나옵니다 아그립바 왕앞에서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바로 3번쩨 사도바울의 고백인 것입니다 

오늘 고백을 통해 보면 예수님을 만난 후 2가지의 사건이 사도바울에게 일어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도바울의 인생의 눈이 떠진 것입니다  

둘째는 사도바울이 평생에 걸어갈 사명에 대하여 눈이 열린 것입니다 


첫째는 사도바울의 인생의 눈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진리의 빛에 눈이 떠진 것입니다 

행26:13 왕이여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라고 합니다 

당시 시간은 정오였습니다 가장 태양빛이 밝고 무더울때입니다 그런데 그 정오의 때의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이 초자연적인 빛이 하늘로부터 임한 것입니다 


이 의미를 예수님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셨습니다 

행26: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행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어두움을 잘 파악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그리고 옳다고 생각할 때 그때는 바로 정오의 태양이 비출때입니다 잘 보이니까요...

그런데 그 길은 어두움의 길이고 모래위를 걷는 길이고 사탄의 권세아래 있는 길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행26: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너에게 고생이니라 

이 말은 쟁기질하는 농경문화에서 쓰인 말인데 가시채는 끝에 뾰족한 쇠나 뼈를 박은 막대기입니다 소가 말을 듣지 않을 때 뒤에서 찌르기 위해 고안된 것인데 매를 맞은 소가 반항하여 뒷발질을 하면 할수록 소는 더욱 심하게 찔리고 상하게 되는 것을 상징으로 당시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은 어리석고 무모하며 불가능하다라는 격언으로 쓰였던 말인 것입니다 

즉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죽이려고 다니면 다닐수록 더 자신의 양심은 더 질리고 심령은 더 아프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어두움인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의 인생의 어두움을 가지고 고통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 중에 2가지만 이야기하면 

1)인생은 갈수록 수고와 슬픔뿐이라는 것입니다 

시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어떻게 보면 최선을 다해 살면 살수록 수고와 슬픈 일들을 더 많이 경험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그리고 너무 빨리 쇠하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어두움을 어두움이 아니라고 한들 짙은 어두움속에 빠져들 뿐입니다 

2)내 생각과 내 주장 옳다고 하면 할수록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특히 가족들이 그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남성들이 젊었을때는 아내, 자녀들에게 주장하고 강압할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요즈음 세대들은 달라도 많은 경우들이 일단 결혼을 하고 나면 남자들이 주장도 세고 강요도 많이 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자기가 맞고 자기가 옳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가정치고 안싸우는 눈물 안흘리는 가정이 없습니다 

아내가 참고 견디니까 여태까지 오는 것이지 상당시간 고통을 감수하고 자식들은 마음이 떠나고 노년이 되어서는 초라한 노인들이 되고 마는 것을 자주 봅니다 젊었을때는 자기가 어두움인줄 모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보니 잘못한 것도 많고 자식들을 강압한 것도 많고 마음을 다치게 한 일이 태반이었던 것을 나중에 아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두움인 것입니다 남은 세월 얼마 안남았는데 아직도 모르면 멸망하는 짐승같은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사는 것이 어두움 한가운데일 수가 있습니다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까?

어두움에서 빛으로 나오기 위해서입니다 

사탄의 권세 즉 모든 것을 결국 파괴하고 마는 권세로부터 생명의 세계, 창조의 세계를 이루시는 하나님에게로 가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유대교를 위해 예수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러 다니면 다닐수록 더 심령은 고통스러웠고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에 충격을 먹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옳다고 하는 빛보다 더 밝은 하늘의 초자연적인 빛이 비추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내면도 외면도 균형을 이루고 평안을 누리고 감격을 나눌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세상을 잡고 세상에 인생을 걸었던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믿고 돌이켜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할수 있도록 하늘의 강한 빛이 여러분의 인생에 비추어서 진리의 빛에 눈을 뜨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사도바울은 고백합니다 

빌3:8절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므로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배설물로 여겼노라’


둘째는 사도바울은 평생에 걸어갈 사명에 대하여 눈이 열린 것입니다 

자기는 그저 열심히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죽이는 것이 사명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상해를 가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길이었습니다 

행26: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에 사명이 맡겨진 것입니다 

그리고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유대나라 주변의 사람들을 잡아들이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는데 이제 이방의 세계 땅끝까지 이르러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가슴에 구원의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이스라엘 사마리아를 넘어서서 터키 지역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를 꿈꾸었습니다 그리스롤 돌고 나니 로마를 중심으로 전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땅끝인 서바나 스페인까지 끝없이 끝없이 눈이 열려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이가 들면서 줄어들고 작아지고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더 크게 더 넓게 더 높이 꿈꾸며 나아갔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명의 눈이 떠진 사람들의 발걸음입니다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증인으로서의 삶에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행26:16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증인의 삶, 예수님을 소개하고 자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증인의 삶의 사명을 잡고 일어서시길 축원드립니다 


세상 풍조는 나날이 바뀝니다 

우리는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전하고 알리고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에 다시 사명으로 일어서야겠습니다 

고전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1: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찬송이 있습니다 

490장 3절

세상 풍조는 나날이 변하여도 나는 내 믿음 지키리니 

인생살다가 죽음이 꿈같으나 오직 내꿈은 참되리라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나 믿기는 창차 큰 은헤 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연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인생의 눈을 뜨다, 사명의 눈이 열리다

                                                   2019년 10월 6일

본문 : 사도행전 26: 13- 18절


영상을 같이 보시겠습니다 


이번 주에 읽으실 말씀은 사도행전 21- 26장까지이며 로마서를 읽으시면 됩니다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사도바울은 선교보고차 죽음을 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갑니다 여지없이 유대인들은 소동을 벌이고 사도바울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때 로마의 천부장이 사도바울을 보호하여 당시 지역을 다스리던 총독 벨리스에게로 보냅니다 


행23:23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행23:24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이때 이미 사도바울은 로마 복음전도를 위한 사명을 받습니다

행23: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그 소동이 나고 죽음의 위기가 있는 자리에서 주님께서 사명을 분명하게 확인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원래 로마에 가서 복음전하는 것도 꿈꾸었지만 로마를 거쳐 서바나 즉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롬15:22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롬15: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는 그 말씀을 평생의 사명으로, 꿈으로 안고 살아갔던 것입니다 


그 가운데 오늘 본문은 사도바울이 당시의 지역 분봉왕이었던 아그립비 2세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장면입니다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2년 동안 가이사랴에 있는 로마 총독의 감옥에서 옥살이를 했습니다.  하지만 유대의 지도자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바울을 법정에 세워서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당시 유대인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는 펠릭스의 후임인 베스도 총독은 바울이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 죄가 없는 바울을 석방하자니 유대인 지도자들의 감정을 건드릴 것 같아 고민하고 있었던 때에 바울은 무혐의 처리를 받을 수 있는길은 로마 황제에게 직접 재판을 받는것이라 판단하여 로마의 최고 법정에 상소를 하게 됩니다.(25:25) 

그러나 당시 관례로 보아 죄수를 황제 앞으로 보내려면 뚜렸한 죄목이 있어야 하는데 베스도 총독은 바울에게서 어떤 혐의를 찾을 수 없었고 매우 난처한 입장이 되던차에 팔레스타인 북부 지역의 통치자로 있던 아그립바 왕과 그의 누이 동생 버니게가 총독부임 축하를 위해 내방을 하게 되었습니다(25:13) 

행25:13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베스도 총독은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그립바 왕과 함께 최종 결정을 내릴 작정으로 다시 재판을 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그 재판중에 사도 바울이 먼저 아그립바 왕을 향해 자신이 다메섹 도상에서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무엇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었는지 말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를 찾아오신 그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돌아가신후 다시 부활하셔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셨기에 모든 사람이 나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먼저 아그립바 왕이 말합니다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행 26:28) 

그러자 바울이 말합니다 

행26:29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여기 나오는 아그립바는 헤롯 아그립바 2세인데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아들이며 헤롯 대왕의 증손인데 로마 황실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며 헤롯 왕가의 마지막 통치자입니다 

그는 AD 70년 완전히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하기 전까지 명목적인 왕으로 남아 있던 네로황제가 임명한 분봉왕입니다

네로는 아그립바 2세를 인정하여 A.D.56년 총독 벨릭스의 통치지역인 디베랴 베레아 및 몇개의 지역을 아그립바 2세의 관할지역으로넘겨 주었다. 


이러한 왕앞에서 사도바울은 담대하게 오늘 간증하고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사도바울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을 전하라고 당부한 것처럼 자신은 그 자리가 법정의 자리이든 맹렬한 공격의 자리이든 어느속에서든지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상을 가리지 않았고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남들에게 보일때에 미친 사람처럼 보인 것입니다 재판을 받는데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다니요 ...

그래서 

행26: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그러나 사도바울은 확신있게 대답을 합니다 

행26:25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어떻게 사도 바울은 이러한 확신을 가진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바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진리로 인생의 반석으로 발견하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자주합니다 사도행전에 3번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그만큼 분명하고 중요한 사건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1)사도행전 9장에 나옵니다 처음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입니다 

2)행22장에 나옵니다 3차 전도여행후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앞에서 간증합니다 

3)오늘 행26장에 또 나옵니다 아그립바 왕앞에서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바로 3번쩨 사도바울의 고백인 것입니다 

오늘 고백을 통해 보면 예수님을 만난 후 2가지의 사건이 사도바울에게 일어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도바울의 인생의 눈이 떠진 것입니다  

둘째는 사도바울이 평생에 걸어갈 사명에 대하여 눈이 열린 것입니다 


첫째는 사도바울의 인생의 눈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진리의 빛에 눈이 떠진 것입니다 

행26:13 왕이여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라고 합니다 

당시 시간은 정오였습니다 가장 태양빛이 밝고 무더울때입니다 그런데 그 정오의 때의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이 초자연적인 빛이 하늘로부터 임한 것입니다 


이 의미를 예수님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셨습니다 

행26: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행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어두움을 잘 파악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그리고 옳다고 생각할 때 그때는 바로 정오의 태양이 비출때입니다 잘 보이니까요...

그런데 그 길은 어두움의 길이고 모래위를 걷는 길이고 사탄의 권세아래 있는 길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행26: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너에게 고생이니라 

이 말은 쟁기질하는 농경문화에서 쓰인 말인데 가시채는 끝에 뾰족한 쇠나 뼈를 박은 막대기입니다 소가 말을 듣지 않을 때 뒤에서 찌르기 위해 고안된 것인데 매를 맞은 소가 반항하여 뒷발질을 하면 할수록 소는 더욱 심하게 찔리고 상하게 되는 것을 상징으로 당시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은 어리석고 무모하며 불가능하다라는 격언으로 쓰였던 말인 것입니다 

즉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죽이려고 다니면 다닐수록 더 자신의 양심은 더 질리고 심령은 더 아프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어두움인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의 인생의 어두움을 가지고 고통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 중에 2가지만 이야기하면 

1)인생은 갈수록 수고와 슬픔뿐이라는 것입니다 

시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어떻게 보면 최선을 다해 살면 살수록 수고와 슬픈 일들을 더 많이 경험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그리고 너무 빨리 쇠하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어두움을 어두움이 아니라고 한들 짙은 어두움속에 빠져들 뿐입니다 

2)내 생각과 내 주장 옳다고 하면 할수록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특히 가족들이 그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남성들이 젊었을때는 아내, 자녀들에게 주장하고 강압할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요즈음 세대들은 달라도 많은 경우들이 일단 결혼을 하고 나면 남자들이 주장도 세고 강요도 많이 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자기가 맞고 자기가 옳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가정치고 안싸우는 눈물 안흘리는 가정이 없습니다 

아내가 참고 견디니까 여태까지 오는 것이지 상당시간 고통을 감수하고 자식들은 마음이 떠나고 노년이 되어서는 초라한 노인들이 되고 마는 것을 자주 봅니다 젊었을때는 자기가 어두움인줄 모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보니 잘못한 것도 많고 자식들을 강압한 것도 많고 마음을 다치게 한 일이 태반이었던 것을 나중에 아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두움인 것입니다 남은 세월 얼마 안남았는데 아직도 모르면 멸망하는 짐승같은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사는 것이 어두움 한가운데일 수가 있습니다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까?

어두움에서 빛으로 나오기 위해서입니다 

사탄의 권세 즉 모든 것을 결국 파괴하고 마는 권세로부터 생명의 세계, 창조의 세계를 이루시는 하나님에게로 가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유대교를 위해 예수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러 다니면 다닐수록 더 심령은 고통스러웠고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에 충격을 먹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옳다고 하는 빛보다 더 밝은 하늘의 초자연적인 빛이 비추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내면도 외면도 균형을 이루고 평안을 누리고 감격을 나눌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세상을 잡고 세상에 인생을 걸었던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믿고 돌이켜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할수 있도록 하늘의 강한 빛이 여러분의 인생에 비추어서 진리의 빛에 눈을 뜨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사도바울은 고백합니다 

빌3:8절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므로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배설물로 여겼노라’


둘째는 사도바울은 평생에 걸어갈 사명에 대하여 눈이 열린 것입니다 

자기는 그저 열심히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죽이는 것이 사명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상해를 가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길이었습니다 

행26: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에 사명이 맡겨진 것입니다 

그리고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유대나라 주변의 사람들을 잡아들이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는데 이제 이방의 세계 땅끝까지 이르러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가슴에 구원의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이스라엘 사마리아를 넘어서서 터키 지역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를 꿈꾸었습니다 그리스롤 돌고 나니 로마를 중심으로 전세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땅끝인 서바나 스페인까지 끝없이 끝없이 눈이 열려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이가 들면서 줄어들고 작아지고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더 크게 더 넓게 더 높이 꿈꾸며 나아갔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명의 눈이 떠진 사람들의 발걸음입니다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증인으로서의 삶에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행26:16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증인의 삶, 예수님을 소개하고 자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증인의 삶의 사명을 잡고 일어서시길 축원드립니다 


세상 풍조는 나날이 바뀝니다 

우리는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전하고 알리고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에 다시 사명으로 일어서야겠습니다 

고전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1: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찬송이 있습니다 

490장 3절

세상 풍조는 나날이 변하여도 나는 내 믿음 지키리니 

인생살다가 죽음이 꿈같으나 오직 내꿈은 참되리라 

나의 놀라운 꿈 정녕 나 믿기는 창차 큰 은헤 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연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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