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지 아니하는 삶, 썩는 삶_요12:23-26_11월15일
제가 가끔씩 쓰는 예화인데 감자이야기를 다시 한 번 하려고 합니다.
어느 가정법원에서 이혼청구소송 중 이혼 사유에 '감자'라고 적힌 서류를 보고 판사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재판 때 유심히 이야기를 들어 보니 어느 휴일, 부부가 감자를 쪄서 먹으려고 하다가 싸움이 시작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찐 감자와 설탕을 가져오자 남편이 감자를 설탕에 찍어 먹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소금을 찾았고, 이에 질세라 부인은 우리 집은 어렸을 때부터 설탕을 찍어 먹었다고 반박하였습니다. 그러자 평소에 처가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남편이 설탕을 찍어 먹으니까 집안이 그렇지 하고 말했습니다. 갑자기 열 받은 아내는 우리 집안이 어때서? 당신 엄마는 어떤데… 동생 교육이나 잘 시켜 하다가 감정싸움이 되어 가정법원까지 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결국 화해가 안 되서 이혼이 결정되었습니다. 판사가 판결을 하고 일어나면서 말합니다. 우리 집은 아무 것도 안 찍고 그냥 먹는데….
요새 속이 썩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가정에서 속을 썩다가 우울증에 걸리고 싸움을 하고 훌훌 떠나버리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썩는 이야기를 예수님께서 하십니다.
이번 주에 읽으실 말씀은 요한복음 9장부터 12장 말씀입니다. 9장 10장은 시각장애인을 고치시는 장면과 예수님을 돌로 치려는 유대인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11장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기적의 사건과 12장은 이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12장 12절에 보면 당시에 초유의 관심 인물이셨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큰 무리가 예수님을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맞이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요12: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 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로마로부터 해방시켜주실 메시야로 환호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기적을 기대하고 혁명을 일으켜서 새로운 나라를 기대하고 있는 시점인데 예수님은 그런 기대에 부응하며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12: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영광스러운 일이 일어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영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영광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한 알의 밀알이 죽는 말씀으로 그 영광을 설명하십니다. 자주 듣는 유명한 말씀이고 사회 사람들도 많이 인용하는 구절입니다.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 말씀은 당연히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원리는 이 세상의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 아름답게 물들인 낙엽도 땅에 떨어져 썩을 때 땅과 나무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에너지원이 되는 것입니다.
- 과일도 씨가 썩어야 새싹이 되고 나무가 되고 사과 같은 열매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 특히 한평생을 살아가는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알의 밀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 존 하버드목사님은 1636년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척박한 이 나라가 살길은 복음을 전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일이다 생각하고 전 재산과 삶을 바쳐서 하버드 대학을 창설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세계 제일의 하버드대학이 되었고 많은 석학들을 배출하게 된 것입니다.
- 몇 년 전에 연세대를 찾은 허름한 할머니가 어려운 형편에서 공부하는 학생에게 써달라고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데 1억이 나오더랍니다. 식당을 하여 모은 돈과 토지보상금으로 받은 돈을 내고 이름 없이 가시더랍니다.
비단 그러한 일만 그렇겠습니까? 부모의 희생, 엄마의 썩는 삶이 자녀들에게 영양분이 되어 키워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느 단체나 어느 기관이나 이름 없이 희생하며 감당하는 사람들이 있고 저희 교회도 설교를 하고 교회를 이끄는 장로님들보다는 이름 없이 빛없이 부엌에서, 각 부서에서 미화로 수고 헌신하시는 분들이 있기에 열매가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2가지를 깊이 생각해야겠습니다.
첫째는 한 알의 밀알은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어야 산다는 말씀입니다.
즉 썩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그런 생각을 합니다. 왜 내가 희생해야해! 내가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어! 내 모든 것이 죽으면 뭐가 남아… 안 되지!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내 생명 자체가 죽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정에 있어서, 사회관계에 있어서 죽어야 하는 것은
1) 죄의 문제입니다.
유명한 저술가인 존 파이퍼 목사님은 사람과의 관계성에서 나타나서 상대방을 죽이는 죄를 이렇게 찾아냅니다. 한 뭉치의 이기심이더랍니다. 그 결과 파생되는 결과는 a)분노 b)자기 연민 c)속히 비난하기 d)음울함 이라고 합니다. 자세히 설명하면 한 뭉치의 이기심은 다섯 가지 방식으로 뭉쳐있는데
- 섬김 받기를 기대하는 것 - 채권자라는 느낌을 가지고 대하는 것
- 칭송을 받고 싶어 하는 것 – 내 방식대로 일이 되기를 바라는 것
- 나는 부정적인 반응을 당연히 보일 권리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랍니다.
이렇게 한 뭉치의 이기심이 발휘될 때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죄의 결과는
a) 분노입니다. : 내 길을 방해하는 것들을 향한 강한 반대의 감정, 상대방을 얼어붙게 하여 말로 타격을 가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내가 죽지 않는 증거랍니다.
b) 자기 연민입니다. : 타인도 내 상처를 느끼기를 바라고 내가 고통당하고 학대당하는 것 때문에 나를 칭찬해주고 더 나아가 나를 동정해주고 표현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랍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에게 계속 집착을 하며 사는 것입니다.
c) 성급한 비난하기입니다. : 나의 절망스러운 상황의 이유를 상대방에게 돌릴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d) 음울함입니다. : 축 처지는 낙담, 침울함, 무기력, 반응, 정서적인 무감각 등으로 상대방에게 표현하거나 관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것이 죄인가 하면 다른 사람의 삶에 열정과 에너지를 꺾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2) 세속의 허무한 가치입니다.
- 약육강식의 가치입니다. 약한 자, 어려운 자, 병든 자는 건강한 사회를 위해 도태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세상의 가치를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쳐주셨고 부정한 여인을 용서하셨으며 마음이 상한 자들을 위로하셨습니다.
- 물질 만능주의 가치입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이 무의식 중에 현대를 살면서 깔려 있습니다. 공평과 정의를 주장하는 사람도 물질을 욕심스럽게 쌓아가고 자녀들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이용해 유학도 시키기도 합니다. 물질을 많이 버는 삶이 복 받은 삶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복을 다르게 가르치셨습니다.
마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세속적인 가치가 있습니까? 이러한 세속의 가치를 버리려면 얼마나 힘듭니까? 불가능한 일 같고, 아니 오히려 세속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신앙생활을 이용하기도 하고, 교회는 오래 다녔는데 성품은 하나도 안 변하고. 이러한 생각이 썩으려면 고통스러우니까 그대로 간직하며 교회를 다니는데 하나도 안 죽으니 나도 힘들고 주변 사람도 시험을 받는 것입니다. 부모를 바라보는 자녀가 시험을 받고 목사 장로 권사를 바라보는 새가족들이 해를 입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변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기 위해서 한 알의 밀알이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죄, 내가 생각하는 세속적인 허무한 가치를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죽는다는 것은 과정이 동반됩니다.
썩는 과정이지요. 썩으려면 내가 부서지고 망가지고 미생물과 뒤섞여서 흔적도 없이 바닥을 치는 과정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생활도 자녀양육도 그리고 다 큰 자녀와의 관계도 이런 썩는 과정이 있어야 웃음이 되살아나고 가정이 사는 것입니다. 자녀를 태중에 가지고 낳고 키우고 교육하고 출가시키고 또 그 자녀의 자녀를 보기까지 고통스럽고 속이 썩는 일은 수천만 가지 수억 가지입니다. 그래도 일일이 다 표현하고 다 싸우는 부모는 없습니다. 썩고 죽고 묻고 가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알아도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썩어가는 삶이 바로 어른의 삶이고 윗사람의 삶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의 세대는 풍요롭게 이어지는 것입니다. 사회생활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자존심이 죽고 저 사람이 살면 되지 하는 넉넉함이 좀 필요합니다.
김소월의 진달래 꽃이라는 시를 보면 마음이 한편 여유로워집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예수님도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겟세마네동산에서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 대로 하옵소서
십자가 위에서도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눅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 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리고 죽으시고 마침내 부활하셔서 모든 이들의 소망의 첫 열매가 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가정에서 아내를 보고 남편을 보고 자녀들을 보고 죽기 힘드시지요? 마음이 썩고 썩으시지요? 그렇게 해서 유지가 되고 이어져 가고 마침내 열매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썩은 후에 열매는 반드시 있음을 믿으시고 썩고 썩어 열매를 맺는 기초가 되리라 믿음으로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둘째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죽고 썩어가되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내 내면입니다. 생명입니다.
한 알의 밀이 생명이 있을 때 썩어야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이 타버린 것이나 이미 죽은 것은 썩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 생명은 구체적으로
1) 다 잘되자는 목표입니다.
왜 의견을 내는가하면 다 잘되자고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많은 경우가 자기 주장하다가 다 망하는 길을 택하는 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가정이 잘되는 것인가 그 목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우리 삶의 거룩한 목표입니다.
거룩한 목표일 때 하나님의 역사가 동반되기에 세속적인 목표가 아니라 거룩한 목표가 가정이 있을 때 그리고 사회생활을 할 때 많은 열매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3) 이 생명은 영원한 생명, 영생의 소망입니다.
그 어떤 위기도 시험도 환란도 그리고 재난도 영생의 소망이 있으면 이겨나가게 됩니다. 영원히 주님과 동행하는 삶, 영광스러운 주님을 만나는 그 황홀함을 믿으면 씨가 되어 그리고 생명이 되어 인생의 많은 열매가 맺어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 다시 한 번 영적인 날개를 달고 하늘 높이 올라 내 삶을 쳐다보시는 여유의 시간, 격려의 시간이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같이 찬양하시겠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좁은 문 좁은 길 나의 십자가 지고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 주시리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일어나 달 가리라
주의 영광 온 땅 덮을 때 나는 일어나 노래하리
내 사모하는 주님 온 세상 구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