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은혜가 필요한 세상_요5:2-9_11월 8일
사랑과 은혜가 필요한 세상
본문 : 요한복음 5: 2- 9절
크리스마스 성탄절의 추억을 생각하게 되고 2021년을 기대하게 됩니다.
먼저 11월 한달동안 감사와 복된 마음이 넘치시길 축원드립니다.
세상은 춥지만 내가 따듯하면 옆에 몇사람이라도 온기를 느끼며 살아날 것입니다.
이번 주에 읽으실 말씀은 요한복음 5- 8장까지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5-6장은 병자를 고치시고 오천명을 먹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생명의 떡과 영생의 말씀에 관하여 자세히 설명하십니다.
요한복음 7-8장은 예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과 음행중에 잡혀온 여인을 용서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오늘 본문은 베데스다라는 연못에서 치유를 기다리던 38년된 병자를 고치시는 장면입니다.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성에는 성 주위로 여러 개의 문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북쪽에 양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드릴 양과 염소들과 같은 여러 가지 제물들을 이 문을 통해 들여왔기 때문에 이 문 이름을 양의 문, 혹은 양문(The Sheep Gate)이라고 불렀습니다..
17m쯤 되는 연못인데 베데스다의 뜻은 은혜의 집, 혹은 자비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베트'가 '집'이라는 뜻이고, '헤세드'는 '은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베트'와 '헤세드'가 합쳐져서 '베데스다', '은혜의 집'이라는 뜻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베데스다 연못에는 한 가지 기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연못이 갑자기 소용돌이 쳐서 물이 솟아오를 때 그 못에 제일 먼저 들어간 사람은 병이 낫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병자들이 이 연못 주위로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38년된 병자에게 주목하십니다.
38년동안 스스로 움직일수 없는 사람입니다. 다리와 손이 다 굳은 사람입니다.
오늘 이 38된 병자의 상태는 본문을 통해 보면 이렇습니다.
1)오랫동안 병으로 눌린 사람입니다. 무려 40여년세월입니다.
2)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방치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감히 묻습니다. 이 사람은 더 이상 살아갈 의미가 있을까요?
경제적인 가치가 없는 존재이고 생산성이 없는 존재이고 밥만 축내는 존재인 것입니다.
사회에서의 대답은 명확합니다. 도태시키라는 것입니다.
진화론의 입장에서 보면 도태 소멸되어야 할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방식은 다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 일어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대학에서 교수가 학생들에게 질문하였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사람은 어떻게 하는 좋을까요?
한 학생이 일어나 말합니다. 차라리 어린 시절에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 그러자 교수가 말합니다. 자네는 지금 베토벤을 죽인 것일세 ...
그렇습니다. 최악의 생의 조건으로 태어난 베토벤은 위대한 음악가로 살아갔고 많은 음악을 남겼으면 그의 음악은 마지막으로 갈수록 생의 환희와 기쁨으로 차고 넘쳤던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생명을 보시고 씨를 보시고 내 존재 그대로를 보십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 2가지의 관점을 붙잡고 모두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첫째는 위로와 용기를 얻으십시오
오늘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되는 말씀은 2가지 동사입니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요5: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보시고 그리고 아시고 라는 동사입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던 그 수많은 병자들중에 가장 소외되고 가장 의미없는 존재인 이 사람에게 주목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이것은 은혜라고합니다. 은혜가 표현되고 실현되는 모습이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심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든지 우리 주님은 보고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아신다고 하십니다. 그 의미는 이해한다라는 뜻입니다.
나를 다 이해하신다는 것입니다. 이해한다는 것은 같은 입장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더 밑에서 본다는 뜻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그 일은 위해 마굿간에서 태어나셨고 가난한 변두리 나사렛에서 자라나셨으며 마침내 십자가의 비참한 형을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우리 주님만큼 우리를 아시는 분도 없습니다.
그래서 돌아온 탕자 둘째 아들의 비유에 보면 아버지는 돌아올 것을 아시고 동구밖에 나가서 한없이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또한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한 마리의 양을 찾아나서시는 것도 어린 양한마리가 당할 고통과 아픔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1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41: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사41:10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둘째로 믿음의 끈을 놓치지 말고 꼭 붙잡으십시오
오늘 예수님은 38년된 병자에게 물으십니다.
요5: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네가 낫고자 하느냐 즉 이미 포기하지는 않았느냐
아닙니다. 주님 다른 사람이 나를 이끌어주지 못하는 순간에도 기어서라도 가보려고 했습니다. 꼭 낳고 싶습니다.
요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왜 물으셨을까요?
천사가 고쳐주시는 것을 믿는냐 하늘의 은총을 믿느냐
더 나아가서 은혜의 사건을 믿느냐 물으신 것입니다.
즉 믿음, 겨자씨만한 믿음, 놓치지 않는 믿음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와 사랑에 믿음과 소망이 있다면 기적은 일어나고 몸은 회복되고 환경은 열리게 될 것입니다.
독일의 한 남작이 자기 성곽의 두 탑의 끝을 여러 가닥의 철사 줄로 연결했다는 이야기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코로나 19의 전염병과 경제적인 위기는 그리고 정치, 사회적인 불안은 거센 폭풍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 걸려 있는 은혜와 사랑은 하프줄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꼭 붙잡고 놓치지 않는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다시 은혜와 사랑의 온기로 따듯해지실 것입니다.
요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눈물의 자리 낙심의 자리 포기의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시길 선포합니다.
이사야 60장 1절-2절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사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사60:2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다같이 오직 예수뿐일세 찬양하시겠습니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호흡 마저도 다 주의 것이니
세상 평안과 위로 내게 없어도 예수 오직 예수 뿐이네
크신 계획 다 볼 수도 없고 작은 고난에 지쳐도
주께 묶인 나의 모든 삶 버티고 견디게 하시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나의 모든 것 다 주께 맡기니
참된 평안과 위로 내게 주신 주 예수 오직 예수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