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꿈이 빌립보 교회로 이어져_행16:9-16_2월 14일
1세기 초대교회 시절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피해 로마 외곽의 지하동굴로 도피하였습니다. 이곳은 시체를 매장하는 곳이었습니다. 땅 굴의 흙이 습기가 없어서 지하 무덤으로 이용되는 곳이었습니다. 바로 카타콤이었습니다.(그림1)
이곳에서 기독교인들은 10대에 걸처 300년동안 신앙을 지키기 위해 교회모임장소로 모이고 심지어는 삶의 터전으로 삼기도 했던 것입니다.
신자들은 카타콤 벽면에 물고기 그림을 새겨 놓았고 물고기 그림을 그려야 통과해서 예배장소에 들어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림2)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는 표시였습니다.
물고기 안에 글씨내용은 익투수 즉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구원자이십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 왜 물고기를 그려놓았을까요?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1)물고기 잡는 어부를 제자로 부르셨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하고
2)베드로가 디볘랴 바닷가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물고기 153마리를 잡고 숯블에 구운 물고기를 먹었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3)물고기는 잠을 잘 때 눈을 감지 않는다고 합니다. 죽을 때에도 눈을 감지 않지요 아마 박해의 시절에 영적으로 깨어있으라고 서로 격려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covid19로 인해 제한도 많아졌고 활동도 조심스러워졌고 마음도 두려움으로 인해 꽁꽁 묶여있는 상태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이 추은 겨울 우리의 믿음을 견고하게 지키시길 바랍니다.
인생의 구원은 정부시책에, 경제 정책에 그리고 내 물질의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에 있음을 믿으시고 다시 영적으로 깨어있으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가지신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 예루살렘의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되어 수리아 안디옥 교회를 통해 확산되어갔음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기독교 역사가 어떻게 유럽에서 꽃을 피우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이유로 유럽으로 건너가게 되었는지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 확산 계획과 전세계의 복음화는 예수님의 비전이었습니다.
이 일을 위해 사도바울은 사명자로 사용되어졌고 오직 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그 길을 걸어가서 마침내 2000년이 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 사도바울의 이름이 널리 알여져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비전을 품으면 우리 인생은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허무한 인생이 아니라 의미있는 인생이요
쥐고 사는 인생이 아니라 나누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갈수록 좁아지는 인생이 아니라 넒고 퍼져 나가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어느 교회에서 주일학교 선생님이 찬양을 신나게 하고 나서 아동부학생에게 물었습니다.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만약 집과 자동차를 팔아서 그 돈을 몽땅 교회에 헌금하면 천당에 갈까요?
아이들은 일제히 아뇨!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만약 매일같이 교회청소를 한다면 천당에 가게 될까요? 또 크게 아이들이 대답합니다. 아뇨!
그럼 동물들에게 잘해준다면 천당에 가게 될까요? 아뇨!!
그럼 어떻게 해야 천당에 갈수 있는 거지요? 잠깐 아이들이 머뭇거리는 순간.
그때 형아 손을 잡고 따라온 5살짜리 녀석이 큰 소리로 대답을 합니다. “죽어야죠”
그렇습니다. 날마다 죽는 연습을 할 때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내 생각이 틀릴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사람을 대하고 내 자랑을 멈추고 남을 섬길수 있는 자리로 내려갈 수 있다면 그 자리에서 우리는 점점 많은 열매를 맺는 능력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바울의 생각의 전환스토리입니다.
세상의 언어로 보면 발상의 전환을 하는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기독교 선교역사의 대 전환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도바울은 수리아 안디옥을 거점으로 1차 선교여행을 잘하고 돌아옵니다.
소 아이사아, 갈라디아 길리기아지역등 오늘날의 터키지역을 돌면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구브로 앗달리아 버가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등 죽을 뻔한 위기도 거치면서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의 열정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2차 전도여행을 준비합니다.
이번에는 아시아 지역을 더 견고하게 세우려고 계획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초를 잘 딲아서 로마로 가려고 원대한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곳곳에 사도바울이 방문하게 되니 교회들이 더 견고하게 되었고 복음의 역사가 커졌습니다.
행16: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얼마나 좋습니까? 더 큰 계획을 세울수 있게 견고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꾸 일이 틀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자꾸 일이 막히는 것이었습니다.
행16: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행16: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래서 8절에 보면 드로아로 내려갔다고 하는데 드로아는 원래 계획이 없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이르러서 낙심하고 고민하던 차에 밤에 환상보게 됩니다.
마케도니아 즉 그리스 위쪽 지방의 사람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행16: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 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이때 중요한 것은 사도바울의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을지 알지도 못하고 거점도 없었습니다. 생소한 유럽땅으로 바다건너 가야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헤아려 보게 됩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이렇게 받아들입니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행16: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원래 자신의 계획은 로마였습니다. 그리스를 거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도 복음이 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주님께서 부르신 것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차선책으로 배를 타고 마케도니아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바울의 이 결단으로 2000년의 복음의 역사가 서구에서 찬란하게 꽃을 피웠습니다.
아놀드 토인비 역사학자는 이 날 사도바울이 타고 간 그 작은 배에 서구 2000년의 찬란한 기독교 문명이 담겨 있었다고 평가합니다.
- 왜 기독교가 서구권로 갔어야 할까요? 여러 논의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게 논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는
1)동구권보다는 서구가 더 역동적이고 동적인 면이 있어서 복음의 확산이 전세계로 나아가기에 효과적이었을 것이라고들 합니다.
2)당시 서구권이 바벨론 페르시아에 이어 그리스 로마로 확장되어 가고 있었기에 문화적으로 훨씬 더 개방적 상황이었다고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마침내 사도바울이 처음 도착하여 거하게 된 곳은 빌립보였는데 빌립보는 알렉산더 대왕 아바지인 필리포스가 건설한 도시로 동서를 잇는 교통의 요지였던 곳입니다.
당시 로마가 다스리는 지역이었는데 수일동안 갈 곳이 없이 다니다. 루디아라는 여성 사업가를 만나게 되었고 그 여인의 집에서 최초로 유럽의 교회가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행16: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며 머물게 하니라
서유럽, 동유럽, 북유럽, 남유럽을 다니면 어디든지 큰 교회와 기독교 유산이 문화가 되어있고, 삶이 되어 있고, 역사가 되어있습니다. 로마의 베드로 성당, 스페인의 가우디성당, 상상도 못하는 규모의 교회건물, 기독교 역사와 전통들..
이 모든 것이 바로 빌립보에서 한 여인이 드렸던 초라한 집에서부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헤아릴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가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믿음으로 순종하였고 하나님은 빌립보 교회를 들어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오늘 우리는 빌립보 교회는 어떠한 교회였는지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1. 빌립보 교회는 차선책의 교회였습니다.
사도바울의 최고의 목표는 아니었습니다. 실패한 가운데 낙심한 가운데 이끄시는대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아니 가정집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실패한 그 자리에 하나님의 뜻이 시작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인간의 원대한 계획, 인간의 높은 이상이 무너진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펼쳐주셔서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를 고치시고 우리를 다시 날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어떠한 형편에 처해있든지 낙심하지 마시고 주저앉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쉽지만 그리고 초라하지만 차선책을 택하셔서 가정을 살리시고 미래를 일구어내시길 기도드립니다.
2. 빌립보 교회는 한 여인의 헌신으로 드려진 교회였습니다.
루디아는 자색옷감장사였습니다. 당시에 자색은 귀한 물감염료었습니다. 아시아에서 유럽까지 장사하러 온 즉 사업하러온 여인이었습니다. 사업을 해야지요 돈을 벌어야지요 그런데 사도바울의 말씀에 감동을 받자 마음을 열어 헌신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선교는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헌신은 남았을 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업에 몰두해야할 상황이지만 교회를 자기집에 세우고 복음전파에 뛰어들었던 것입니다. 만일 마음에 감동이 있다면 그 한사람 그 한사람의 선교를 통해 유럽의 기독교 역사가 시작되었던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3. 빌립보 교회는 온전히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인도된 교회였습니다.
빌립보에 도착해보니 유대인 회당도 없었습니다. 세상말로 비빌 언덕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문밖 창가에 나가 앉아서 모여있는 여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는데 바로 거기에 루디아가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인간의 계획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정확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후서에서 말합니다.
딤후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화려한 계획이 아니라 한 영혼 구원하기 위한 복음전파의 열정이 가장 중요한 것인줄로 믿습니다.
이 열정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높이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기만큼 하나님의 계획만큼 그 공동체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건물을 계획할 때 최선의 방식으로 최고의 건물을 꿈꾸었습니다.
그런데 자꾸 틀어지고 막혔습니다. 얼마나 저와 우리 당회가 힘들었겠습니까?
저는 최선의 방식으로 최상의 건물로 주님께 드리고 싶은데 ....
그런데 어느날 새벽기도중에 깨달았습니다. 교회는 복음적 열망이 중요한 것이지 건물자체가 중요한 핵심이 아니구나 .....
그리고 우리 당회는 차선의 방법을 택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도 차선의 방법을 동의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포인트는 이 점입니다.
교회는 나의 명성, 나의 기대, 세상 자랑을 위해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복음의 확산과 전도와 선교를 위해 세워가는 것입니다.
비록 이름난 교회처럼 대교회, 화려한 교회, 멋있는 건물을 세우지는 못해도 교회의 본질인 전도와 선교의 열정으로 꿈꿀 때 주님은 우리를 복음전파의 무기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전교인이 선교와 전도를 꿈꾸며 일어나는 교회, 수리아 안디옥교회, 빌립보 교회를 모델삼아 선교와 영혼 구원의 열정을 불태운다면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 교회 교인들을 통해 일으키실 것입니다.
사업도 잘되고 자녀들로 비상하게 되고 헌신도 많아지고 소명자들도 많아져서 성령충만한 교회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어려운 COVID 19 시대에 꿈꾸는 저의 기도이고 비젼입니다.
갈릴리 마을 그 숲 속에서
주님 그 열한 제자 다시 만나시사
마지막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가라 저 세상으로
가서 제자 삼으라 세상 많은 사람들을
세상 모든 영혼이 내게 달렸나니
가서 제자 삼으라 나의 길을 가르치라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