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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법과 가는 목표 보는 법_고전10:23-32_11월14일

성문Shalom 0 32 0

사는 법과 가는 목표 보는 법


 

이어령 교수님이 쓰신 책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201112월 출간) 라는 내용에 보면 이런 글이 나옵니다.

영어의 ‘live’는 거꾸로 읽으면  ‘evil’이 되고 ‘lived’는 악마 ‘devil’이 된다우리 삶 속에 악마가 숨어 있다.

착한 사람이 남이 겪지 않을 불행과 수난을 겪었기 때문에 욥은 남들이 미처 알지 못한 절대적 가치의 세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라고 나옵니다.

독일의 자랑인 문학가 괴테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눈물과 함께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의미를 모른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삶은 어른들에게는 짧고 젊은 사람들에게는 길다고 느껴지는 인생인데 살면서 정말 많은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습니다.

감당해야할 짐도 갈수록 쌓이고 해야할 일도 산더미처럼 놓여 있고 뚫고 나가야 할 일도 베를린 장벽처럼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더군다나 아프게 하는 질병도, 낙담시키는 환경도, 그리고 악마처럼 힘들게 하는 사람들도 겪어야 해서 지뢰밭과 같은 시간들이 이 짧은 인생속에 녹아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고독하고 공허하고 그리고 삶을 살고 난후에는 모두가 다 고백하는 말은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물을 많이 흘릴수록 인생의 깊이를 헤아려 보게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저는 4-5년전에 목소리가 안나오는 때가 있었습니다.

긴장과 스트레스와 계속되는 설교와 교육등에 육체가 감당하기 어려웠나 봅니다.

성대에 폴립이 생겨서 닫히지가 않으니까 조금만 말해도 피곤하고 목소리가 새고 쉰소리가 나고 통증이 있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목사는 말하는 것이 생명인데 한양대 병원에 다니면서 반년동안 다시 말하는 법도 배우고 약도 먹고 음식도 신경쓰면서 긴장 속에서 보낸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그동안 말도 많이 하면서 살았는데 나이 50이 되어서 말하는 법, 목소리 내는 법, 다시 배워야 하다니.. 앞으로 목이 이렇게 아프고 수술을 해도 일년동안 말을 삼가라고 하니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런데 하나님을 저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수술을 앞두고 성대의 폴립을 사라지게 하셨습니다. 그때 의사의 말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울고 계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힘든 시간에 생각했습니다. 정말 사는 법을 모르겠다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 모르겠다 ...

 

비단 저만 그렇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처음으로 내 인생을 사는데 사용방법을 모르고 살아가고들 있다고 봅니다.

모두가 자신이 옳고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자기 인생 사용설명서 한번 읽어보지 못하고 출발하는 인생이기에 오류도 많고 실패도 많고 눈물도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대답을 찾고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훌륭한 사람들의 책과 교훈을 참고합니다. 이어지기 위해서 그리고 닿고 싶어서 말입니다.

 

종교라는 영어단어는 religion은 어원이 잇는다.’ 라는 뜻이 들어 있는 단어입니다.

신과의 이어지기 위해 종교를 갖는 것입니다.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들은 사람과 이어짐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기독교 신앙은 참 하나님과의 이어짐, 만남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종교가 말하는 초월하는 어떤 존재가 아닙니다. 편만해 있는 어떤 신비한 존재가 아닙니다. 수행을 하고 고행을 통해 얻어지는 깨달음의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나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으셔서 교제하시고 만나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악이 횡횡한 세상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구체적으로 성육신하셔서 나를 구원하신 구원자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나의 인생의 인생 사용설명서를 알고 계시고 알려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 펜더믹의 현상속에 살고 있고 방역규제가 완화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여오는 제약과 불안과 인생 두려움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으실 것입니다.

 

그럼으로 오늘 우리는 고린도 전서 말씀속에서 다시 우리의 살아가야 하는 모습과 인생의 걸어가야 하는 방향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위로받으시고 힘을 얻으시길 축원드립니다.

 

이번 주에 읽으실 말씀은 고린도전서 9-16장까지의 말씀입니다.

- 고린도전서는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시에 터키의 에베소에 머물면서 고린도교회의 신자들에게 보낸편지입니다. 당시 고린도교회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 당시 고린도는 무역의 요충지였고 번창한 상법과 항구도시였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종교들이 있었고 국제적 항구도시로 도덕적인 부패가 심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러한 배경속에서 교회 성도들은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삶의 방식때문에 고민할 수밖에 없었고 사람을 자꾸 우상숭배시 하는 경향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풀어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읽으신 본문 말씀은 우상숭배 음식, 세속적인 문화를 다루면서 사는 법과 목표하여 가는 법을 정리해주고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두 가지 말씀을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먹는 것, 입는 것, 말하는 것등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는 우리가 행하며 걷는 모든 일의 마지막 목표는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법입니다.

고전10: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고전10: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모든 것이 자유하다는 사실을 먼저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자유의 존재로 삼으셨습니다. 선악과를 상징하는 악을 터치하지 아니한다면 모든 것은 자유입니다.

 

- 일반적으로 자유란 무엇입니까?

행동이나 생각을 제약받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음: 출입의 자유, 자유로운 영혼, 자유롭게 날다 등.

나쁜 것이나 싫은 것으로부터 벗어남 : 빈곤으로부터의 자유, 무지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 등.

개인의 당연한 사회적 권리(기본인권)로서의 자유 : 언론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재산 처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거주지선택의 자유 등.

을 말합니다.

읽어드릴 때 이미 파악하시겠지만 사회에서 언급하는 자유의 의미속에는 자신과 타인과의 소통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흔히 사람들은 다른사람에게 해를 가하면서 자유를 말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음주운정을 하면서 내 자유지... 남에게 가해를 가하도고 내 자유지 말하는 경우를 봅니다. 그런 경우는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고 해악이지요

 

성경에서 악의 개념중에 가장 중요한 점은 행위가 아니고 하나님과의 단절, 즉 빛과 진리와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빛과 진리와 단절이 되지 않는 한 우리는 모든 것이 가합니다. 우상숭배의 음식을 먹는 것도 세상의 방식에 맞추어 사는 것도 가하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자기 양심과 하나님과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그 자유함가운데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법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바로 덕을 세우는 자유를 강조합니다.

- 성경에서 말하는 덕은 스스로의 인품을 쌓아가는 덕이 아니고 남의 유익을 구하는 삶을 덕이라고 합니다.

- 특히 유익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그 의미를 보면 함께 가져가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저 사람과 내가 함께 나누는 마음, 함께 공유하는 마음, 그것을 성경은 덕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모든 삶의 방식을 세상적인 방식으로 하며 살수 있습니다.

그런데 같이 먹고 마시고 함께 욕하고 그러는데 갑자기 주변 사람들이 너는 좀 달라야 하는 것이 아니냐 , 그리스도인들은 좀 나아야 하는 것은 아니냐 이렇게 묻는다면 얼마나 수치스럽고 치명적인 삶입니까?

 

사람들은 모두가 함께 편하게 먹고 마시는 것 같아도 내적으로는 하얗고 정결하고 옳은 삶을 향한 내적 갈증이 있습니다. 더러우면 깨끗하고 싶어하고 추잡하면 정결하고 싶고 악한 행실이면 벗어나고 싶은 의지가 모두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함께 공유할수 있도룩 이 땅에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식이 거룩함입니다. 정결함입니다. 구별된 삶인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함의 목표는 나의 자랑 나의 의가 아니고 목표는 저 사람의 구원이어야 합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고전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즉 가까운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삶의 방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함께 좋은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귀하게 여긴다면 생명의 길, 진리의 길,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삶이 남의 유익을 구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는 절제하는 자유를 누리고 그래서 우리는 거룩한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사람들의 겉모습에 관심을 갖는 것도 소중한 인생 발걸음이지만 그 사람의 영혼에 관심을 가지시길 축원드립니다.

진정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신다면 그 마지막 인생길의 순간에 공허하다 허무하다 하지 않도록 구원의 기쁨, 영생의 감격을 함께 공유하는 영혼 구원에 관심을 가지시길 축원드립니다.

 

둘째로 우리가 행하며 걷는 모든 일의 마지막 목표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임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지난 날의 인간 역사와 세계의 역사를 보면 다 일장춘몽입니다.

대 제국도 사라지고 당대의 영웅들도 허공으로 사라졌습니다.

하물며 보통사람인 내가 이루었다면 얼마나 이루었고 세웠다면 얼마나 세웠다고 알량하게 기념비를 세우고 동상을 만드는 것입니까?

인간의 일생은 바람이고 흙이고 안개인데......

그런데도 인간은 입만 열면 자기 자랑 자식 자랑 돈자랑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신을 우상화합니다.

저도 어느새 보면 내 자랑을 불쑥 불쑥 하고 있는 자신을 봅니다. 또 나르시즘에 빠져서 얼마나 나를 흐믓해 하는지요 그러다가 누가 뭐라고 하면 금방 풀이 죽어서 고개를 떨구고 ...도대체가 일관성이 없는 나 자신을 봅니다.

 

저만 그럴까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만 다를뿐 똑같습니다.

그래서 죄인입니다. 죄인의 특징을 보면 자신의 죄를 모르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안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인간의 유한함을 인정안하고 영원히 오래 살 것 같은 착각속에서 자신이 맞고 자신이 옳고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죄인의 특성입니다.

그렇게 사라지고 없어질 안개가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고 자신을 높인다고 영원한 가치가 더해지겠습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 인생의 정답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생의 마지막은 내 영광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붙잡고 살면 그 분의 삶의 아우라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후대의 많은 사람들은 그 길을 따라 나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우리의 가는 인생길의 끝은 명확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지금부터 나를 지우고 나를 내려놓고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삼으시고 주님의 나라가 우리의 심령이 임하시는 복된 삶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주의 나라가 임할 때 찬양하시겠습니다.

 

주의 나라가 임할 때 하나님 임재하실때

예배가 회복되고 기적은 일어나네

 

전능하신 주 영원하신 능력의 통치자

자유가 선포되어 주백성 돌아오네

 

하나님 나라 임하소서 영광과 존귀 능력과 위엄

놀라운 사랑의 기적의 하나님 지금 이곳에 오소서

 

주높고 위대하심을 크게외쳐 선포하네

만왕의 왕 주 하나님 지금 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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